#’세월호’ 사건과 개념 혁명
세월호 이전의 학국과 이후의 한국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회적 토론이 별로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사건 직후에만 떠들썩하다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망각’이 작동하는 것처럼 이것 또한 그렇게 될까 봐 몹시도 두렵다.
범생이?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바로 이것을 우리의 잘못된 교육이 체계적으로 박탈해왔다. 지금까지 교육은 책을 암기하여 시험을 치는 데는 선수들을 만들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예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능력은 별로 발달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개념 혁명’이 필요하다. 모범생이 무엇인지, 문제아가 무엇인지, 개념 규정을 달리해야 하고,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개념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개념과 실천, 그 모두를 바꾸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300여 영혼이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말이다.
『나부터 교육혁명』. 그 책은 노동력을 길러내는 학교가 결국은 자본주의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 현실을 냉정하게 꼬집어내기 위한 작업이었으면서도, 나와 아내가 아이 셋을 키우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을 ‘줏대 있게’ 극복하려는 몸부림의 흔적이기도 했다.
개념이 바뀌면 실천이 바뀌고 실천이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그래서 ‘개념 혁명’이 필요하고 ‘실천 혁명’이 절실하다.
‘유기농 교육’이란 마치 농작물이 땅심과 퇴비, 비와 햇살의 힘, 그리고 농민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듯, 아이들 교육도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 일어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사랑과 자발성, 공동체 등의 가치로 밑거름과 웃거름을 듬뿍 주는 교육 방식
유기농 농사에서 농민들이 ‘진인사대천명’하듯, 유기농 교육에서도 부모는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지원만 하되 성장 과정 자체는 아이가 스스로 살아내도록 무던히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지켜본다. 이런 것이 유기농 교육이다.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있듯이, 아이들도 그 자체로 ‘우주’이자 ‘우주가 준 선물’이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면,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마음대로 통제하여 아이의 뜻이 아니라 부모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으려 한다…그래서 부모와 자녀는 갈등을 겪는다…아이를 그 자체로 ‘작은 우주’로 보거나 ‘우주의 선물’로 본다면 우리는 아이를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경제적 지지와 정서적 지지. 경제적 지지는 형편이 닿는 만큼, 정서적 지지는 무한정해야 좋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부모들은 대부분 거꾸로 한다.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삶을 존중하되, 함께 가는 삶, 이것이 최선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거나 투자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단순한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사실은 자본의 관점이다. 자본의 관점이 부모를 매개로 가정과 학교에서 관철되는 우회로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정치적 동물이다. 더불어 살고 더불어 행동해야 한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아이들이 핏기 없이 목표 없이 식물인간처럼 가정, 학교, 학원만 왕래하는 것도 사실상 죽음이다.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 알고, 안 것을 일관되게 실천할 줄 아는 생명력과 패기, 활기가 넘쳐야 진정 살아 있는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들, 어른들은 일터와 사회 전체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매순간 살아 있음의 기쁨을 누리며 살자, 더불어 살아감의 행복을 진심으로 느껴보자.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길 바라면서도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다르게’ 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교육 현실, 무엇이 문제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있는 그대로, 온전한 인격체로. 성적이나 외모 따위로 차별하지 않는 것. 그러나 이 쉬운 해법이 통하지 않는 건 왜 그런가? 사다리 질서, 직업 차별과 사회 차별이라는 구속이 있기 때문.
아이들이 갈구하는 것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 아주 단순한 진리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믿지 않는 것은 한국의 학교와 교육 당국이다.
사태의 뿌리는 사회적인 것. 학교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지만, 실은 사회경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교평등화, 대학평등화, 직업평등화가 삼위일체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포가 아닌 사랑의 교육이, 경쟁이 아닌 우애의 교육이 가능하다.
그 출발점은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에 있다. 지금 바로 옆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포옹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어린이·청소년 스트레스 방법이 없나?
스마트폰 중독….그냥 함께 ‘놀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균형 잡힌 인성을 기르게 된다. 실컷 놀아봐야….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돌파구는 있다. 자유와 놀이. 어린이들은 일단 공부는 최소한으로만 하고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생활 속 스트레스도 풀어야 한다…어린이에겐 ‘놀이가 곧 학습’이다. 특히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꿈꿀 시간을 주자. 놀이와 자유의 시공간이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선진국. 비록 하루아침에는 안 된다 할지라도, 개념이 바뀌면 우리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쉽고도 어려운 부모-자녀 관계, 그 해법은? 당장 지금부터 주변의 모든 아이들 ‘우주의 선물’로 보기 시작하자. 그리고 ‘나부터’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자. 그러면서 사회구조의 문제들도 ‘더불어’ 토론해나가자.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아이와의 관계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며 나 자신도 변할 것이다.
#동심의 세계
어른의 세계. 동심의 세계가 연대와 협동에 가깝다면, 어른의 세계는 경쟁과 분열에 가깝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동’
사다리 질서가 아니라 ‘원탁형 질서’를 만들어, 누구나 자신의 꿈에 걸맞게 공부하고 나중엔 그런 방향으로 취업을 하더라도 별 차별 없이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차별에 찬성하는 ‘스펙’ 경쟁의 신세대
경쟁사회의 생존전략은 저항보다는 적응이며, 대안 모색보다는 조직 충성이었다
‘차별의 내면화’. 이제 이들에게 사회적 차별은 거부하거나 지양해야 할 사회적 악이 아니라 재빨리 적응해서 한 단계라도 위로 올라야 할 자연스러운 구조, 지당한 프레임으로 비친다.
차별 또는 차별을 구조화한 위계 서열화, 곧 사다리 질서는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인위의 질서이고 자본의 질서다. 자본은 차별과 경쟁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분엸키고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과 지배를 통해서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효율적으로 짜낸다. 이것이 자본의 본질이고 그에 기생하는 권력의 본질이기도 하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 불안해하지 마라. 오직 현재에 충만하라
#왕따와 학교 폭력_’강자 동일시’라는 뿌리
개념혁명? 사람의 논리는 효율성이라기보다 인간성이며, 경쟁력이라기보다 생명력이다. 효율성과 경쟁력은 자본의 논리이며, 그 자본의 논리를 사회적으로 구현하려는 권력의 논리일 뿐이다.
요컨대, 효율성과 경쟁력 개념, 우리가 이미 굳게 내면화해버린 이 개념들을 하나씩 털어내야 한다.
이제 분명해진다. 사람의 논리, 생명의 논리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하지만,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는 획일성과 분열성을 추구한다.
‘공격자 동일시’
‘공감의 뿌리’?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가 가진 힘’, 갓난 아기를 교실에.
팔꿈치 사회. ‘철학없는 전문가’, ‘백치 전문가’가 되어 세상을 망치면서도 망치는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착각 속에 살아간다. 이런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희망이 없다.
#부모의 트라우마-학부모의 불안감, 무엇이 문제인가?
#생계의 길과 꿈의 길-학부모의 불안감, 무엇이 문제인가?
#’옆집 아줌마’의 현실 인식-학부모의 불안감,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 인성교육이고 자연교육이고 대안교육이고 말은 참 좋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앞으로 아이가 먹고나 살 수 있을까?” 그렇다 역시 생계 문제다.
#’옆집 아줌마’의 인생 인식-학부모의 불안감, 무엇이 문제인가?
#’옆집 아줌마’의 사회 인식-학부모의 불안감, 무엇이 문제인가?
##인생의 내비게이션_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지금 아니라면 언제 행복하리?
인생은 속도나 높이가 아니라 방향과 내용이다. 결과와 비교가 아니라 과정과 느낌이다.
사람은 자본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자본은 사람 없이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우선순위는 지구, 사람, 돈.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살고 있다. 돈, 사람, 자연 순으로 강자 행세를 하면 산다.
#삶의 결, 죽음의 결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갈수록 무뎌지는 우리의 감성이 두렵고 안타깝다. 자본과 권력의 탄압도 두렵지만 모순적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사람들이 더욱 두렵다.
고미숙 『공부의 달이, 호모 쿵푸스』, 정화열 『몸의 정치』,김영민 『공부론』, 고병헌 『책 읽기와 삶 읽기』
#내 꿈의 발견_’산 입에 거미줄 치랴?’
#우린 모두 ‘특별한’ 존재한다
맥스 루케이도 『너는 특별하단다』
“루시아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지 그 딱지는 네가 붙어 있게 하기 때문에 붙는 거란다.”
진보 교육감. 경쟁과 분열의 장치들을 그만두어야 한다? ‘경연대회’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축제로)
그렇다. 대안은 개념이 바뀌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세대갈등, 어떻게 풀까?
문제 해결의 방법은 두 가지.
제주도 방식? 부모 세대와 자녀 부부 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도 위채와 아래채로 나누어 사는 방식
별도의 살림집? 가까우면서도 약간은 거리를 두는 것
#자연은 차별을 모른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지금은 경제가 정치를 지배한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보아서는 안 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업과 은행이 세상을 지배한다.
소비자?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들’
사회와 경제, 정치가 이렇게 야만으로 치달을 때 이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대학, 언론, 종교, 예술이다.(그런데 최후의 보루들의 상태는??)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공허한 개념일 뿐이다. 투쟁이 없으면 진보가 없다.”
##교육 혁신, 우리도 할 수 있다
#참된 혁신_사랑의 패러다임으로 새 집 짓기
왜 자식 교육에 이토록 매달리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철학이 정립되지 않은 채 거의 맹목적으로 달리다 보니 결국은 어른과 아이들 모두가 지치고 만다.
‘교육’과 ‘경제’.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결국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의 문제이기에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대안교육의 원조, 서머힐 이야기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가정, 문제학교, 문제사회가 있을 뿐이다.”
#세상을 살리는 인간적 뿌리-캐나다 ‘공감의 뿌리’ 사례
#작은 학교의 힘, 결코 작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학교 학생들이 가진 특별한 힘이 ‘강한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골 작은 학교는 자연 속에 있기에 아이들은 자연을 닮아간다
“작은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가 교사의 눈에 들어온다.”
#교욱 혁신과 학부모_제천 간디학교 사례
대안학교를 하나의 소비물로 보는 학부모? 같은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과 실천을 보이는 부모의 사례. 요구는 많고 기대 수준은 높되, 정작 자신의 참여나 실천은 빈약하다.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 사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립 대안학교보다 인적,물적자원이 훨씬 풍부하다. 시설만 좋은 게 아니다.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교사도 더 많다. 학생 수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도회지의 일반 학교 한 곳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시골 대안학교 열 곳보다 더 많은 희망을 줄 수 있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산청 간디고 이야기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규칙이나 제도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가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갈 길은 멀다. 그러나….’나부터’ 변하는 순간 이미 세상의 변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나부터’ 소통하기 시작하면 ‘더불어’ 혁명은 시간문제다.
##사회 혁신 없이 교육 혁신 없다
#세월호 참사_사회 혁신을 호소하다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
기존 학교교육은 죽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 특히 가난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상황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더 이상 자본과 권력의 부속품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 현실이 변하지 않는 까닭
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는데도 왜 정작 현실은 변하지 않는 걸까요? 일종의 ‘마피아집단’ 때문
결국은 ‘나부터’ 실천하고 ‘더불어’ 변화를 추구하는 것
더불어 매일 꿈을 꾸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아이를 꿈나무로 키우려면_정치경제의 민주화가 절실하다
#’사회적 부모’가 많아져야 교육에 희망이 생긴다
‘개별적 부모’로 머물러 있기 보다는 ‘사회적 부모’로 거듭나야 한다
##’나부터’ 실천과 ‘더불어’ 실천이 희망이다
#유기농 교육에서 찾은 삶의 행복
아이 역시 그러하다. 겉보기엔 시원찮게 보이지만 속은 꽉 차 있으며, 비바람이 불어도 잘 이겨낼 것이다.
결국, 아이 교육은 물론이고 귀농이나 귀촌의 문제는 단순한 삶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가치관의 전환과 실천의 문제라 본다.
#텃밭의 풀을 베며 삶과 교육을 명상하다
“잡초는 없다’는 게 맞겠지만, 당장 식용으로 쓰는 게 아니면 일단은 ‘제거’ 대상이다
#나도 모르게 내면화된 속도 경쟁
#지도자 또는 일꾼, 과연 누구를 뽑을 것인가?
“사랑하는 쥐 여러분, 도대체 우리가 왜 고양이를 우리의 대표로 뽑아야 합니까? 다음 선거에서는 우리 쥐들 중에서 대표가 뽑혀야 합니다! 절대로 고양이를 뽑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마우스콘신』
#마음에 걸린다, 대학 입시_획기적으로 바꾸자!
대학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초중고 수준에서의 혁신은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라 느껴왔다.
입시제도 변화만으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병든 사회, 아픈 교육_어떻게 바꿀 것인가
“병든 사회는 아픈 교육을 낳는다. 교육의 아픔은 다시 사회의 병을 심화시키고, 이 두 가지는 서로 악순환의 관계를 형성한다…그래서…전환이 필요하다.”-『병든 사회, 아픈 교육』, 조희연
생각컨대, 기득권 시스템이야말로 모든 교육 문제의 ‘몸통’이다
교육 당국이 변해야 하고 직장 세계가 변해야 하고 사회적 시선이 변해야 한다. 한마디로, ‘혁명은 교육의 미래’다…기존의 사다리 질서나 기득권 시스템을 허물고 모두가 둘러앉아 밥상 공동체를 이루듯이 그렇게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이다…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하되 조금씩 일하도록’ 만드는 것.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전략이다…유기농 공무원제. 유기농 농민은 생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 마련…그것이 김구 선생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한 기초가 아닐까 싶다.
#함께 하는 인문학 모임_경제 가치가 아닌 생명 가치
동화 인문학 모임. 『입이 똥꼬에게』, 박경효
녹색평론 독자 모임. 책이나 글로 아는 것과 사람이 직접 말로 이야기해주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세종 연인 모임.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 『경쟁에 반대한다』, 『팔꿈치사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행복한 연대’가 희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