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편해문. p291
#아이들 놀이를 찾아 인도로 떠난 까닭
오늘 우리 아이들 놀이는 게임과 오락에 많은 자리를 내주었다. 마당과 골목이 사라지면서 놀이가 사라지고 담 너머 시끄럽던 아이들 소리도 이제 듣기 어렵게 되었다. 그 많던 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져 어디로 갔으며 놀이와 골목과 마당은 또한 어떻게 된 것일까. 모든 놀이는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속으로 정말 다 들어가 버린 것일까.
이렇듯 놀랍고 무서운 일이 벌어졌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는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과 아이들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 가운데도 아이들이 먼저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책 읽기보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어놀아야 한다는 분들이 적어 나는 외로웠고 스스로 힘을 좀 내야 했다.
놀이는 아이들 삶에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 아닌 아이들 삶에 있어 어떤 것보다 첫 번째 자리에 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디다 말해야 하고 어디에서 실천해야 할지 몰랐다.
인도는 신의 나라라고 하지만 내게 인도는 어른이나 아이 가릴 것 없이 오래된 놀이에 열심인 놀이의 나라였다…인도 아이들이 놓여 있는 현실과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의 현실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ㄱ그그래도 인도의 희망은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도 아이들은 어쨌든 놀고 있고 놀면서 길러진 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라는 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기운 없고 생기 없고 웃음을 잃게 만드는지 모른다. 인도가 우리와 조금은 먼 곳의 이야기이지만 아이들로부터 우리가 빼앗은 것은 무엇이고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돌려줘야 할 것은 또 무엇인지 이 책에서 만났으면 한다.
우리도 어려서 그런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한테서 도무지 이런 생기를 마주하기 어려운 것을 왜일까. 공부하고 남는 시간을 게임에 다 쓰고 밖에서 뛰놀지 않는데, 어떻게 땅과 자연이 주는 생기를 몸에 담을 수 있겠는가.
#소꿉놀이 속으로
인도를 다니면서 이 소꿉놀이에 남달리 마음을 빼앗겼다. 놀이 가운데 소꿉놀이만큼 자연스러운 놀이도 없을 뿐더러 세상 모든 아이들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놀이라, 소꿉놀이를 잘 살펴보면 놀이의 많은 수수께기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이들 놀이 가까이 갈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 스스로 어른에게 어떤 작은 역할이라도 주기 전에는 놀이에 끼어들면 안 된다. 자칫하면 놀이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놀이에서 느끼는 이 지극한 신성함…신성과 놀이가 하나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제의가 바로 놀이라는 말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어른들의 종교와 같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 몰입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 본 사람이라면 저절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놀이가 허구이거나 꾸며 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언제나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들만의 작은 우주를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고 있었다.
진짜 놀이란 이렇게 한 번 또는 하루에 끝낼 수 없는 것이다…한 번으로 끝나는 놀이를 정말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내가 아이들과 했던 놀이가 정말 놀이였을까…
#마당과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학교와 학원과 집. 오늘 아이들에게 학교와 학원과 집은 어느 곳 하나 편안한 곳이 아니다. 이 세 곳의 이름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라는 곳이다.
컴퓨터敎와 텔레비전敎의 착실한 신도…
컴퓨터 게임이 지닌 선정성, 폭력성을 따질 겨를이 내게는 없다.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컴퓨터 게임에 가까이 갈수록 동무와 형제와 부모 같은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게임과 같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은 경험으로 보아 밖에서 많이 놀아보았던 아이들은 게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더란 것이다. 밖에서 땀 흘리며 노는 재미를 한껏 맛본 아이들은 그 이후에 만난 게임과 같은 것들을 이 세상 많은 놀이 가운데 하나로 보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 유난히 게임중독 증세를 많이 보이는 우리나라 현실은 거꾸로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놀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는가를 또렷이 보여주는 셈이다.
놀이라면 마땅히 온몸으로 노는 것이라야 하다. 아이들도 안다…놀이 프로젝트나 놀이 프로그램 개발 따위로는 어림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놀 터가 있어야 놀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놀 터와 놀 틈을 다 빼앗아놓고 어떻게 놀기를 바란단 말인가. 아이들이 놀려면 적어도 놀 틈과 놀 터가 있어야 한다. 놀 틈과 놀 터를 열어주고 놀이를 이야기해야 마땅한 것이다.
백석 시인의 시. ‘여우난골族’은 우리에게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고 동무가 있었던 시절, 아이들이 어떻게 놀았는지 겉과 속을 눈부시도록 환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 집에는 당연히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다.그리고 아이들 방도 따로 없다. 그런데 이 집에는 있는 것도 많다. 먼저 또래가 있고, 놀 곳이 있고, 아이들 스스로 놀 수 있는 놀이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 시간이 있다.
틈과 터,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또래를 먼저 보고 가장 뒤에 놀이를 보아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실 놀이다. 놀이거리가 없어도 놀 틈과 터와 놀 또래만 있으면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잘 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언제 하늘을 보나
하기 싫은 공부와 매일 하고 싶은 게임으로 마음은 메말랐는데 하늘은 웬 하늘이고, 틈과 터가 없는데 놀이를 어디다가 쓰겠는가.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을 때 아이들은 옛날 놀이와 요즘 놀이에 갇히지 않고 자신들만의 놀이문화를 스스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인도에는 놀이터가 따로 없다. 왜냐하면 온 동네가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할 놀이가 없고 놀 방법을 모르는 것에 가슴 아파 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가슴 아파하는 것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틈과 터를 없애고 이 아이들을 모두 학원으로 실어 보내는 우리 모두의 가엾은 모습이다.
#연이 난다 아이들이 난다
놀이가 되려면 이렇듯 여러 사람이 절대적인 시간을 쏟아 부어야만 하는 것을…
#놀이가 똑같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바깥 놀이에 쏟아 붓는 절대적인 시간이 얼마 만큼인가 이다. 놀이의 질은 놀이시간의 양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병뚜껑 딱지. ‘엄마반지’. 우리는 뭐라도 눈에 띄거나 줍게 되면 놀이로 만드는 데는 귀신들이었다.
#가장 척박한 땅에 가장 아름다운 놀이의 꽃은 핀다
아이들 놀이가 가장 활발하게 뿜어져 나오는 환경은 어떤 것일까. 당혹스럽게도 그것은 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이다. 전쟁 직후 폐허로 변한 환경은 어른들을 절망 속으로 깊게 빠뜨릴 테지만 아이들은 폐허에 물들지 않는다. 폐허로 변한 환경은 최고의 놀이터와 놀잇감이 가득찬 세계로 아이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삷도 그렇지 않은가. 삶의 가장 힘든 시기야말로 돌이켜보면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리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니었던가.
무릎이 까지고 넘어지고 구르지 않고 어떻게 놀이와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놀이를 막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을 막는 일이 되고 만다.
바깥 사람들의 눈에는 최악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활짜 꽃 피우고 있었다…나는 새삼스레 아이들이야말로 환경에 굴복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놓여있는 현실과 처지에 파묻히지 않을 힘이 있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꿈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일터는 아이들의 놀이터
어려서 일을 모르는 아이는 노는 것도 어려워 한다
아이들은 철저하게 아날로그로 자라야 한다. 아날로그의 품을 팔지 않는 디지털은 휘황한 껍데기기고 거짓말이고 환영일 뿐이다.
이 나라 교육의 가장 큰 잘못은 아이들에게서 얼마간의 일마저도 빼앗아버린 점이다. 시골 아이들은 제 몸 하나는 부릴 줄 한다. 놀이가 별것인가. 제 몸 하나 건사하고 부릴 줄 알면 그것이 놀이가 아니겠는가. 동생을 돌보고, 밭 매는 어른들 따라 작은 힘이라고 보태다가 장난도 치고, 그것이 다 놀이 아닌가. 아이들의 일할 권리를 빼앗은 것은 아이들 사랑과는 관계가 없다. 아이들은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어른들이 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아이들으 보거나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금은 참 보기 어려워졌다.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는 부모가 적기 때문이다. 김치 담그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없는데, 김치를 담그는 부모가 없다. 다 사다 먹으니까 말이다.

어른들의 일터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때 이와 같은 놀라운 놀이판이 벌어진다. 일터와 놀이터를 한사코 떼어 놓으려는 것은 아마도 자본이고 문명일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가르치지 않아도
#책상 서랍 속, 그 많던 구슬과 딱지를 찾아
#가장 훌륭한 배움터는 천장이 하늘이다
학교라 무엇인가? 건물인가? 시설인가? 교사인가? 무엇인가?
작은 학교 통폐합. 마을공동체의 중심인 학교의 문을 닫고 제가 사는 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차를 차고 학교를 다니며 사이버, 도시 , 세계와 같이 먼 것만을 동경하게 하는 것이 과연 어린 아이들에게 시급한 교육일까.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철저하게 아날로그로 배우고 익혀야 하지 않을까. 아날로그를 넘어서 디지털화된 교육은 좀 더 커서 해도 좋지 않을까.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으면서 배우고 싶은데 대한민국 유치원과 어린이집, 그리고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은 첨단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의 감각을 막고 닫게 만드는 것들로 채우려는 데 매달리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여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천장이 하늘로 되어 있는 교실을 보면서 우리의 학교와 교실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놀이감을 만드는 것이 놀이!
놀잇감과 장난감은 다르다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어 놀아야 진짜 놀이다
프뢰벨이 창안한 놀이 선물인 ‘슈필가베’. 프뢰벨은 가난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상업화된 장남감으로는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가베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프뢰벨의 철학은 어디로 날아가 흔적도 없고 물건만 들어와 이것으로 수학을 가르친달지 머리가 좋아진달지 하면서 학습지에 끼워 파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반가운 도전도 있다. 국내외 뜻있는 분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상업화된 장남감을 모두 치웠던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적인 놀이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좀 지나자 하다못해 빗자루 하나를 가지고도 아이들이 여러 가지 놀이로 바꾸어 한참을 놀더라는 말이다.
심심함이야말로 놀이가 시작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조건이다. 심심해야 이제 한 번 놀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심심해 할 틈도 없이 온갖 장난감을 사서 안기기에 바쁘다…대한민국 아이들은 지금 장난감 소화불량에 걸린 상태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놀잇감은 아이들이 창조해내는 세계이지 어른들이 사다주고 만들어주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일찍이 아이들이 손과 발이 요즘처럼 굼뜨고 둔하게 한 시대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이 아이들에게 주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편리함이 단 하나의 가치인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동무들끼리 사람끼리 만나 부대끼며 노는 놀이를 뒤로 미루고 아이들을 장난감과 놀게 해서는 안 된다. 누라 뭐래도 놀이는 사람하고 만나 어울리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가장 훌륭한 언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놀이의 아름다움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 놀이를 하다 보면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 애들이 왜 저러나 당황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그동안 놀이다운 놀이를 해본 경험이 너무 적다. 여럿이 힘을 모아 하는 놀이를 해보지 못한 탓이다.
#모래를 파헤치고 진흙에 뒹굴고
아이들이 ‘지식’을 만나게 해야 하는 것처럼 ‘놀이’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최근 서울 성미산을 비롯한 몇몇 동네에선 아이들의 골목문화를 되살리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반갑다.
#거리의 아이들
#아이들은 굴리고 싶다
#숨고 찾고 쫓고 쫓기고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웃음’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웃으려고 논다는 말이다. 웃음이 없는 놀이는 가짜 놀이다.
아이들은 글동무도 있어야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들동무, 놀동무가 있어야 한다. 애들 공부 좀 그만 시키자!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아이들이 세상에 온 까닭은 뭘까/ 꽃들은 말한다네/ 웃기 위해서라고/별들은 말하지/ 꿈꾸기 위해서라고/….’애들아,/ 너희들은 웃고 꿈꾸고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단다’ 라고…
#어릴 때 놀았던 힘으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
놀이는 가르칠 수 없는 것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서로 오래도록 하다 보면 생기고 쌓이고 오고가는 따뜻한 사랑과 이해와 우정이다.
놀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자란다. 그런데 놀이를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 보조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놀이를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은 장사꾼들이니 속지 말아야 한다. 놀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관계와 우정이 빠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놀이와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비석치기와 볼링의 차이? 비석은 나의 다른 이름이지만 볼링 핀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반듯하고 단단한 비석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아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다.
비석은 나의 분신? 비석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러지는 셈이다.
딱지 따먹기 할 때/…가슴이 조마조마 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어려서 놀던 힘은 바닥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 불, 바람, 흙 속에서 비로소 해방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놀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들과의 원시적인 만남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렇게 잘 놀아본 아이라야 행복을 찾아 나설 힘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오로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자, 놀자! 아이들만 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놀자. 우리 또한 놀기 위해 세상에 왔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