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로 살다. 뉴레프트리뷰·프랜시스 멀헌.p640
좋은 삶을 고민한 문제적 인간들
#100년의 시간, 20여 개 나라, 16인의 좌파를 만나다_장석준(노동당 부대표)
인류 역사에서 권력과 불의에 맞서는 저항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정권뿐만 아니라 자본 역시 이러한 저항의 함성에서 비껴날 수 없다. 한 동안 곳곳에서 외롭게 전개되던 노동자 투쟁들은 이제 ‘희망 버스’와 같은 시민 연대를 통해 무관심과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저항운동이 계속될 뿐 아니라 또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흐름들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무명의 운동이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익숙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게으른 관성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상관없다는 게 아니다. 이것은 분명 민주화의 후퇴를 막고 그것을 더욱 심화하려는 운동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민주주의의 ‘심화’를 표상하게 해줄 어떤 이름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추상명사 하나 생각해내는 문제가 아니다. 이름은 구별하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맞서 싸우는 이 체제에는 엄연히 이름이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다. 더 정확히 말해 신자유주의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저항운동에는 이름이 없다. 고작해야 ‘반-독재’니 ‘반-재벌’이니 ‘반-신자유주의’니 하는 임시 명칭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저항운동이 자신의 적에 대해 자신을 뚜렷이 구별 짓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구별 짓지 못한다는 것은 곧 적대자를 대체할 자신의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대안적 세계관과 변혁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운동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수많은 전투에서 이기고 질 수는 있겠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산발적인 게릴라전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승패를 가늠할 정규전에 착수할 수는 없다.
사실 이름이 본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없지 않다. ‘좌파’,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코뮌주의’ 등등이 그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들 이름 위에 숱한 회의와 재검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 이루 지구 위에 어디에서나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한반도는 분단의 족쇄와 북한 체제의 처참한 현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름이 필요하다. 절실이 필요하다. 상처 입은 과거의 이름들을 어찌어찌 계승하든 아니면 새로운 이름을 발명하든 아무튼 ‘반反’의 운동, 무명의 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 『좌파로 살다』는 다름 아니라 이러한 과거의 이름들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라 할 수 있다. ‘좌파’ 혹은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이름 아래 치열하게 이뤄진 고투들을 되짚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운동들이 쟁취해야 할 새 이름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인터뷰 선집. 재료는 『뉴레프트리뷰』의 과거 인터뷰 기사들이되 이들의 의도적 선별과 배열을 통해 이 책은 나름대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세계 좌파 지성사를 제시한다.
#아직은 아닌, 이제 더는 아닌, 아직은 아닌_프랜시스 멀헌
인터뷰의 커다란 장점은 기동성과 광범위함에 있다…여기서 이야기하는 인터뷰는 무엇보다도 일종의 초상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화상이기 때문이다…이런 여러 인터뷰의 시간적 복합성은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각각의 인터뷰를 하나씩 일어보면 더 할 나위 없이 간단하다.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짜 맞춰진 회상과 발언과 기대의 특정한 조합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순서대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류하는 식으로 읽으면, 인터뷰마다에 담긴 함의가 더욱 증폭되어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특히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각 개인의 역사가 서로 공유하는 연대기적 시간을 가로지르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의 설명이 갈라지며, 앞선 세대가 품었던 기대와 젊은 세대의 회고가 어정쩡하게 공존한다. 그리고 이제 어찌 됐든 시간이 흘러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특권을 지닌 독자는 이 사람들의 기대와 회고를 확인하게 된다.
이 인터뷰 모음집에서 말하는 열여섯 명은 모두 좌파의 서로 다른세대에 걸쳐 있으며, 각기 다른 사고와 실천의 계보에 속한다…이 열여성 명이 한데 뒤썩인 상황은 눈길을 사로잡는 집단 초상화를 이룬다. 대다수가 상당한 학문 연구 경험이 있는 각기 다른 종류의 지식인들이 모인 그림이다.
지난 100년 동안 좌파를 지배한 중요한 이야기가 ‘아직은 아닌’에서 출발해 ‘이제 더는 아닌’에 도착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왕후이는 반자본주의 정치에 역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도래한 현실에서, 자신이 옹호하는 입장은 ‘신좌파’라고 명명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질문을 던진다…다른 한편 아리기는…자본주의를 넘어선 실현 가능한 좋은 사회를 가리키기 위해 새로운 명칭을 찾을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들은 기력을 다했다는 징후가 아니다. 지금은 몇 시일까? 확실히 이제 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조르지 루카치 1885~1971_오류와 단절하기
저는 언제나 최악의 사회주의고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오류나 잘못된 방향을 발견했을 때, 언제나 기꺼이 그런 점을 인정하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어요.
#헤다 코르쉬 1890~1982_칼 코르쉬의 추억: 좌파로 살다
#이르시 팰리칸 1923~1999_’프라하의 봄’에 대한 복잡한 기억
#K. 다모다란 1904~1976_식민지 공산주의자의 우여곡절: 인도의 경우
인도에는 비록 온갖 기형과 오류가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싸우면서 모든 고난을 겪은 수많은 공산주의자가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농민 투쟁과 노동조합을 위한 투쟁, 반제국주의 투쟁을 수행한 것은 다름 아닌 가장 뛰어난 공산주의 투사들이었어요. 비극이라면 지도부가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이유들 때문에 이 투사들의 재능과 활력을 혁명적인 방향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에르네스트 먼델 1923~1995_어느 정신 나간 젊은이의 행운
#도로시 톰슨 1923~2011_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우리가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아마 누구나 비슷한 깨달음을 얻을 텐데, 학생들이 얼마나 평범한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 수많은 기술자나 간호사, 공장 노동자 등은 우리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가르치는 사람이 오히려 여러 면에서 줄곧 배우는 입장이 되는 겁니다…이런 사람들과 함께 견해와 경험을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엄청나게 풍부하고 소중한 성과였지요.
#루초 콜레티 1924~2001_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인터뷰: 마르크스주의의 고민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위기에 처했으며, 이 점을 인정함으로써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든 시시한 마르크스주의자든 간에 사실상 모든 이들이 의식적으로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1929~_『선언』과 이탈리아 신좌파 운동
#아돌포 힐리 1928~_”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20세기는 계몽의 세기가 아니었고, 진보의 세기도 아니었습니다. 20세기는 그렇게 번쩍이는 섬광의 세기였고, 지근 눈앞에 놓인 위험한 순간을 비추려면 이 세기의 기억과 경험을 되찾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_어떤 사유의 여정
즉각적으로 전면적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유토피아입니다. 우리는 이미 미래 혁명의 한계와 제약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구실로 삼아 혁명을 하지 말자고 하거나 지금 싸우지 않는 사람은 반혁명 분자일 뿐입니다.

#노엄 촘스키 1928~_언어학자의 싸움
우리는 가능한 곳에서 새로운 맹아를 세워야 합니다. 이 사회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사람들이 깨닫도록 만들고, 또 새로운 사회의 의식적인 전망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 뒤에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행동 강령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적 혁명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지지할 때, 곧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왜 그렇게 하는지 알며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알 때 일어날 겁니다.

#데이비드 하비 1935~_지리학의 재발명: 마르크스주의와 지리학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1953~_땅 없는 자들의 운동
아마 가장 큰 성공은 ‘땅 없는 농업 노동자 운동’에 속한 농민들 스스로가 존엄성을 얻었다는 점일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자존감을 느끼며 고개를 치켜세우고 걸어 다닐 수 있어요.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압니다.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어떻게 해서든 답을 얻어내고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승리지요. 이제 어느 누구도 계급의식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아사다 아키라 1957~_전후 일본 좌파 운동의 역사적 재구성
저는 엄밀한 의미의 들뢰즈 철학, 곧 잠재적인 것의 존재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보다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일본의 스탈린주의자들에 비해 한결 권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보여준 사례에 관심이 있었지요. 저는 마르크스를 새롭게 공부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일본과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습니다.
#왕후이 1959~_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인 경험을 단순히 모방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건 편견 없는 지적 호기심입니다.
#조반니 아리기 1937~2009_자본의 파란만장한 여정
세계-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스스로 변신했으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결정적인 변신들을 보지 않은채 자본주의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입니다. 이 모든 적응을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남아 있으면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화폐-상품-화폐M-C-M’ 정식에서 포착할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산 열여섯명의 집단 초상화
20세기의 굴곡진 역사를 헤쳐나간 20세기 좌파의 집단 초상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가 뭐라 해도 하나같이 지식인이다. 삶의 어떤 계기를 통해 그들은 인간의 잠재력을 억압하고 정의를 가로막는 사회 체제의 현실에 눈을 떴고, 기득권을 내팽게치고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약했다. 때로는 소심하고 때로는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향해 그야말로 온몸을 던졌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식은 다를지라도 이론과 실천을 통일하기 위해 현실을 분석하고, 실천 활동에 참여했다. 다분히 20세기적인 지식인 상이라고 할 만한 이런 모습은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점점 희미해진다. 어느새인가 지식인이라는 호칭 자체가 어색해지고, 지식인 스스로가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경멸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버린 지금, 이 책을 통해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최악의 사회주의도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결연하게 단언한 루카치와는 정반대로, 이즈음의 사람들는 최악의 자본주의도 최선의 사회주의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사회주의 자체는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이미 사회주의의 역사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과거로 떠내려갔다. 그렇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이상까지 깡그리 잊어야 할까? 인간이 타고난 처지 때문에 기회와 가능성에 제약을 받지 않고, 노동이 소외의 근원이 아니라 긍지의 원천이 되고, 터무니없는 불평등과 불의가 사라지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이 책에 실린 인터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충분하며, 열여섯 명의 삶과 사고와 실천의 궤적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