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p245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
글쟁이의 입장에서 볼 때에, 비판은 쉽고 지지는 어렵다. 법적인 명예훼손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비판엔 책임이 따르지 않는 반면 지지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악마의 변호인’? “경영자는 칭찬을 받으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상반된 의견을 듣고 토론을 나누고 여러 대안을 모두 고려해야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의사결정의 첫 번째 규칙은 반대 의견이 없으면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피터 드러커
드러커의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아 망한 회사가 많은데, 그 대표적 사례로는 지금은 파산해 사라진 미국 은행 리먼브라더스를 들 수 있다. 이 은행에는 반대 의견을 입 밖으로 냈다간 경력 단절을 면치 못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풀뿌리 건설’만이 살길이다
엘리트들끼리 돌아가면서 해 처먹는 정치
“…직업이란 하나의 커다란 가면에 지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직업에 돈벌이꾼들이 숨어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못말리는 염세주의자인 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이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정치혐오증을 낳는 건 정치의존증이다. 그것은 먹고살기 힘든 세상을 정치가 해결해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 거듭 기대는 무너지고, 실망이 누적되어 기대가 혐오호 바뀌는 것. 본질적으로 정치혐오증은 경제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경제혐오증이라는 말은 없다. 국가혐오증이나 체제혐오증도 없다. 정치가 나머지를 지배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혁명적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평소의 정치란 경제적 생산양식에 걸친 갑옷이며, 정치가는 자본가의 보디가드다. 자유주의 언론이 만들어내 정치혐오증이라는 말은, 정치와 정치가에게 혐오의 화살을 돌림으로써 정치만능주의를 유포하고 경제적 지배계급의 책임을 덮게 한다. 정치혐오증은 경제혐오증을 방어하는 허위의식이다.”-박남일, 『어용사전: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그렇다면 누가 정치판에 뛰어드는가?…이들에게 필수 덕목은 비판과 비난에 초연한 ‘맷집’이다. 뻔뻔함은 기본이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마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먹을 것에 침 뱉기’ 경쟁?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는 정치판의 이런저런 풍경에 대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괜한 시간낭비다. ‘먹을 것에 침 뱉기’로 이해하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다…정치혐오증의 수혜자? ‘기득권세력’? 우선적 수혜자는 ‘정치인’. 대중이 정치에 침을 뱉고 돌아설수록 잠재적 경쟁자의 수는 줄어든다.
“새정치연합의 집단 기억력은 유효기간이 2주다. 그 기간엔 당원부터 원로급까지 ‘바꾸자’, ‘안 그러면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2주가 지나면 파벌의 특수이해가 고개를 들고 결국엔 계파 간 담합으로 마무리된다.”
“도대체 국민의 준엄한 경고를 몇 번이나 받아야 정신 차리고 뼈를 깍는데. 이명박 때부터 깎았으면 지금쯤 뼈가 이쑤시개가 됐어야 하는 거 아냐.”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교회 모델’ 제안, ‘서비스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제일 큰 역할은 바로 ‘생활 공동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정당의 모습을 고민하는 이들이 주목해야 할 한국형 교회의 성공비결입니다.”
“저는 결혼식, 장례식 때 교회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본 적이 없어요. 신도나 그 가족이 아프면 교인들이 와서 간병까지. 친척보다 더 낫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의 ‘대가족제’를 유지합니다…정당은 왜 교회처럼 못합니까? 무료 법률상담, 문화학교, 영화 학교, 댄스 학교 등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어요…지금 한국의 정당은 재미를 주나요, 정보를 주나요? 아니면 새로운 네트워크에 참여할 기회를 주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월 1만 원씩 내라고 하면 누가 선뜻 내겠어요? 재미, 정보, 네트워크를 준다면 1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도 선뜻 낼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바로 한국형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정치적 원인 규명은 과학적 원인 규명과 달리 객관적 입증이 어려워 누군가의 과오를 지적하고 책임을 물을 경우 계파 간 이전투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원인 규명하다가 공동 파멸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계파 간 타협과 화합이 진보의 집권을 가능케 하는 기본 조건이라고 본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부터 바꿔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듯이, “변화가 없다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는 안 바꾸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다.
적대와 증오가 정치의 본질임을 간과한, 너무 순진한 주장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 (輕敵必敗之理)”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이 말 이상 민주당과 진보에 좋은 말이 없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 새누리당과 보수를 존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