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흙으로. 이도원. p210
생태 에세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살며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어설픈 모습들은 감당해야 할 인연이다.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있는 낙엽은 정녕 행복하지 않으리라. 불타다 남은 생명의 씨도 할 일은 있고, 큰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어린 나무와 키가 작은 풀도 자기 할 일과 몫이 있다. 남의 땅에 남아 있는 정겨운 모습을 부러워하고 옛 조상이 짜 두셨던 큰 그림을 이제야 들추어본다.
#도시에 살며
도시란 무엇일까? 정보는 흩어져 있는 것보다 모여 있는 것이 실천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데 모여 책을 이루며, 또한 정보가 모여 힘을 발휘하기 위해 도시를 이루니 도시와 책은 유사성을 가진다.
나는 인간 활동에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소비가 생산보다 많은 곳을 도시라 정의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골은 생산된 에너지를 쓰고도 남아 도시에 제공하는 곳이다. 유기물의 생산과 소비 과정은 도시와 시골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다. 다만 시골에서는 유기물 생산량이, 도시에서는 그것의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다.
도시가 시골에 의지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에너지 수급에 관한 측면만 고려하면 도시는 시골을 파먹고 사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다.
만약 기생축이 숙주를 쓰러뜨리면 자신도 결국 쓰러져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도시 스스로 자구책을 구할 경우에는 시골과 공생 관계를 이룰 수 있다…여기서 시골을 대표하는 것은 광합성을 하는 나무와 풀이니, 곧 자연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도시는 허망한 꿈이다.
그러한 구호 아래 진행되는 운동은 도시가 시골에게 일방적이고 지나치게 지고 있는 신세를 줄이는 정도일 것이다. 지속 가능성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주체와 이웃이 조화를 이룰 때 보장된다. 따라서 도시의 지속성을 도시라는 계 안에서 해결하려는 태도는 도시와 시골의 관계에서 함의되는 공생을 아우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을 어설픈 접근이다.
도시는 시골이 먹여 살린다
그러나 주고받는 관계가 지나치면 서로가 부담스러워진다. 전에는 도시의 똥을 사 와서 논밭에 뿌렸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시골도 막대해진 도시의 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느 시골도 도시의 똥인 생활 쓰레기와 방사능 폐기물을 받아 가려 하질 않는다.
순환 과정의 일부를 도시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시골은 식탁과 폐기물 처리장 기능을 동시에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문제는 도시가 자기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음식물(에너지원)을 공급하며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배설물을 처리해 주는 시골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에 걸맞은 보살핌을 베풀지 않을 때 나타난다.
우리가 식탁과 화장실을 돌보아야 생활이 영위되듯이 도시가 시골을 돌보지 않으면 공생 관계는 무너지고 자신도 병들 수밖에 없다.
도시의 낙엽
가을이면 도시의 은행나무는 슬프다.
은행 잎의 색이 변하기도 전에 공연히 열매를 생산한 나무는 뭇사람들로부터 고초를 겪는다. 이 사람 저 사람 달려들어 공공의 자산을 남들이 먼저 가져갈세라 나무를 두들겨 열매을 갈취해 간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아니라 무주지목(無主之木)의 신세는 애처롭기만 하다.
낙엽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며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냥 방치된 낙엽은 행인의 발길에 밟히고 질주하는 자동차에 딸려 가루가 된다. 그러나 도시의 낙엽은 진토가 된다 하더라도 왔던 흙으로 되돌하가지 못하는 가련한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런데 왜 도시의 모든 낙엽을 쓸어 내야 하고, 운반하거나 태워야 하는 것일까? 운반하자니 차량이 필요하고, 차량을 움직이자니 화석 연료를 태워 공기를 더럽힌다. 거둘어들인 낙엽은 그냥 두자니 쓰레기가 되고 태우자니 다시 공기를 더럽힌다. 더구나 낙엽을 태움으로써 땅으로 돌아가야할 영양소를 하늘로 날려 보내니 토양은 점점 척박해진다. 그런 과정으로 척박해진 도시 공원의 토양에는 개선 처방으로 비료를 주도록 했다니 그 또한 한심하다(순환의 단절->불필요한 낭비의 악순환)
뿌린 비료는 식물이 흡수하여 필경 낙엽이 되고, 낙엽은 썩어서 뿌리 곁의 흙으로 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 이것이 토양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 결국 강으로 하늘로 가게 된다. 필경 강과 하늘로 옮겨 갈 구조 위에 뿌릴 비료를 구하기 위해 힘쓰고 돈을 들이니 국민의 세금은 그만큼 더 많이 필요하다.
길게 보면 하루빨리 물과 공기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세금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겨울이면 우리나라 곳곳에서 머리 잘린 가로수를 본다. 자연의 생산과 인간의 필요성이 알맞게 궁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제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시는 분들은 좀 더 많은 낙엽들이 토양으로 되돌아가도록 배려하면 좋겠다. 그것이 비록 내가 사는 땅으로 성가신 벌레를 불러오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이 있을 것이다. 낙엽이 썩어서 토양으로 보태지면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토양미생물들이 공기를 더욱 정화시키는 데 공헌한다. 그렇게 하여 토양이 더욱 푸석푸석해지면 더 많은 빗물들이 땅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된다. 땅속으로 빗물이 스며드니 비가 오면 가로로 넘치는 빗물이 줄어들고, 점점 더 고갈되고 있는 지하수 충원에도 공헌할 것이 분명하다(선순환의 복원)
이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천덕꾸러기가 되니 그것이 바로 환경오염이다.
그러나 도회의 나무는 자기 마음대로 살 위치에 놓이지도 못할뿐더러 한 뼘 허용된 땅마저 몸으로 경험할 수 없다.
#불탄 숲과 논둑
산불 사후 관리? 방치가 차라리 낫다!
불탄 숲에도 생명의 씨가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불에 타다 남은 유기물을 베어 내고 어린 나무를 심는다. 그 베어 낸 나무를 어디에다 쓸까? 그것은 도회지로 가면 폐기물이 되거나 소각되어 또 물과 공기를 더럽히는 것은 아닌지? 그 죽은 나무들은 이미 손상되기는 했지만 땅을 보호하는 옷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떨어진 옷마저 벗겨 내면 땅이 더 쉽게 침식되고, 숲의 재생은 더디게 된다. 더구나 나무를 베어내고 처리하는 과정에는 분명히 국민의 귀중한 세금이 낭비될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 비용과 자연 손실을 보상하는 것 이상으로 베어낸 나무를 유용하게 쓰는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불필요한 인위!)
불탄 지역의 나무를 베어내는 이유? 귀중한 숲 자원을 태웠으니 아마도 해당 기관의 공무원은 문책을 받았으리라. 이제 그 공무원은 무언가 가시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으리라. 그런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는 불탄 나무들이 베어져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베어 내느라고 사용된 인력 및 예산과, 베어 낸 나무가 사용되어 얻어진 편익을 비교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논둑 태우기는 과연 좋은 일일까? 어쩌면 하나의 타성인지도 모른다. 해충의 알들을 없앨 생각으로 논두렁을 태우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는 이런 행위들에 대한 생태학적인 비교를 통해 득실을 따져 봐야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시대가 달라졌다.
태움은 해충을 선택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로운 생물들도 무자비하게 해치운다.
#숲에 닿은 손길
산을 잘라서 맥을 끊고 동물의 통로를 없애는 행위는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못된 나라들이 은근히 바라고 있는 바가 아닌가?
모든 숲을 가꾸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사람의 손이 닿는다고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기만 해도 좋은 숲이 많이 있다. 때로 선의에서 시작한 숲 가꾸기가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참나무 아래 심어 둔 잣나무 유모? 천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바라보면 잣나무와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는 참나무와 같이 그들에서 잘 견디는 음수 아래 자랄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참나무 아래 자리잡은 잣나무의 신세는 처량하다. 그런 자연의 섭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식목일에는 나무를 심어야 하는 관행 때문에 그날 나무를 심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했던 어떤 분이 그런 상황을 연출해 둔 것이다.
식목일의 의의? 숲을 가꾸다는 뜻이 들어 있지 않다! 나무 ‘목(木)’자가 강조되어 키가 작은 식물을 .잡목과 잡풀로 우습게 보는 경향을 낳았다. 숲은 큰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떨기나무와 풀이 함께 어우러질 때 크고 작은 동물과 미생물이 모여 생물 다양성을 이룬다. 이제 시대에 걸맞은 숲 가꾸기의 날을 기리는 멋진 이름을 생각해 볼 때. 그냥 순수한 우리말로 ‘숲돌보기날’이나 ‘숲가꾸기날’이라고 하면 어떨지?
대가족? 어른과 아이가 함께 있어야.
골프장 난립이 우리네 지형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이라면 스키장 난립은 우리네 기후를 무시하고 따르는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돈에 눈이 어두워 못된 짓은 모두 따라하려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생태학적 득실을 가름할 수 있는 환경측정분석. 이러한 과학적 분석 없이는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목장이 수혜를 받는 사람과 환경 보호를 내세우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괴리는 영원히 좁힐 수 없다.
생각해보라. 주변의 자연환경의 질이 악화된다면 골프장과 스키장이 유지될 수 있을까? 모든 계는 자신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유지비를 투자해야 한다….따라서 공신력 있는 비영리 기구가 환경 장기 조사를 맡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믿는다.
#이 땅의 축산과 환경 문제
대규모 집약적인 목장과 수입 사료에 의존하는 축산이 우리 땅 우리 기후에 맞는 처사인지 따져 봐야 마땅하다. 사료를 사서 소를 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히 먹이사슬을 따라가며 에너지 낭비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소고기를 사 먹는 것이 인류의 에너지 사용 효율 면에서 훨씬 경제적일 수도 있다. 에너지가 농축된 소고기 대신 희석된 사료를 사서 들어오니 본질적으로 축산이라는 농축 과정에 엔트로피가 이 땅에서 발생하게 된다.
축산업로 인한 심각한 환경 오염. 네덜란드 학자들이 문제를 지적하지만 돈을 가진 축산업자들이 로비 활동으로 정치가를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 병폐라고 했다.
한때 소양호의 부영양화에 크게 기여했던 가두리 양식장은 육상에서 이루어진 축산과 비슷한 상황이다. 물고기 사료를 물에 보태면 일부는 물고기의 생물량으로 전환되지만 상당한 양의 영양소는 물에 축적된다. 다행히 소양호에서는 장기적인 수질 측정 자료 덕분에 가두리 양식장이 수질 악화의 주범으로 가려질 수 있었다. 덕분에 가두리 양식작은 10년의 허가 기간이 지난 다음 더 이상 조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양식업이 중단되지 소양호의 수질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백두대간 조사 계획? 회원들의 구간별 조사 참여.협업으로. 실패의 원인은 문외한들이 따라 할 수 있는 표준 조사 방법을 마련해 두지 않은 데 있었다…이 일이 언젠가 남북한 산악인들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각각의 구간을 여러 사람이 일시에 산행하며 조사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조상들의 우리 땅 보기
일제 시대 고토 분지로가 사용하기 시작하여 우리 교과서를 점령한 산맥 개념과 달리 대간과 정맥 개념은 물길을 바탕으로 우리 땅의 지리를 살펴보고 있다.
대간과 정맥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는 물을 건너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간과 정맥은 유역을 나누는 분수령이기 때문. 대간은 한반도를 연결하는 지리적인 축이며 동시에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동식물의 이동 축이 될 수 있다. 백두산 호라이가 지리산 나들이 갈 때 백두대간을 따라 평행하게 가는 것이 가장 수월한 이동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 이동로는 곳곳에서 잘려 분수령의 축을 따라 야생 동물들이 이동한다면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좁은 구역에 내몰린 야생 동물들은 근친 교배를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우리 행정 구역의 한 단위는 동(洞)이라는 한자로 표현된다. 동은 사용하는 물(水)이 같은(同) 곳을 의미하니 그 동리가 하나의 유역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뜻한다.
#모두를 모아서
재밌게도 일반적으로 비옥한 토양보다 어는 정도 척박한 토양에 다양한 생물이 깃든다.
먹이그물, 생태계 구조. 생물을 매개로 일어나는 에너지의 흐름과 물질 순환, 정보 교환 양상은 생태계의 기능이다.
먹이사슬을 통해서 에너지와 물질이 이동하는 것은 각 영양 단계에서 얻고 잃는 과정의 연결이다
생물농축. 방사능물질, 독성 수은, 납 화합물은 호흡으로 손실되지 않는다…배설물로 손실되는 양이 상대적으로 적어 생물체에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
산업혁명 이루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 하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화석 연료의 소비량, 다른 하나는 숲과 초지가 파괴되면서 생물체와 토양에 유기물 형태로 존재하던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변하고 있는 탓이다.
생태다리. 오히려 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 없이 설치된 생태 다리는 쥐와 같이 약삭빠르고 해로운 동물에게나 도움이 되는 이동로를 제공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나침이 문제로구나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의 공통점? 물질, 에너지, 정보의 정체 또는 잘못된 흐름이 곧 문제의 발원. 이 원활하지 않는 소통은 과도 또는 과소의 원인이 된다. 여기서 잘못되었거나 과하다는 평가는 순전히 사람의 잣대로 내려진다. 요컨대 사람의 잣대로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가름하는 환경 문제는 에너지와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나 생물의 편중에서 비롯된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