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알고 있다. 김병소. p247
꽃의 신비스러운 디자인…그것은 수학이었다.
물리학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수학이 많이 사용되지만,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폴포기나 나무를 볼 때에는 수학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 보통. 식물은 그저 우리 주변을 녹색으로 장식하고 있는 조용한 존재일 뿐.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 식물들에서 수학적 문제를 끄집어 낼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식물이 가진 어떤 특이한 수학적 형태-꽃잎, 꽃, 잎 등의 배열을 결정하는 어떤 각도-의 문제인데, 식물학에서는 ‘개도(開度)’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것이 가진 특이한 수학적 질서 때문에 자연의 오묘한 수학적 질서의 대표적인 경우나 수비학적(數秘學的) 호기심의 대상으로 자주 인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수학? 수학은 자연 질서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는 신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연에 접근하는 창문인 것이다.
이 책에서 주변에서 자라는 여러 종류의 풀과 나무의 형태가 등장한다. 이제까지는 이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하잘것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친숙하고 소중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있다.
#풀잎
한 아이가 두 손 가득히 풀을 가져오며,
“풀은 무엇입니까?”
라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윌트 휘트먼, 풀잎
미지의 세계는 은하계 저편 무한히 깊은 경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 손이 미치는 풀잎에도 끝없이 깊고 복잡한 세계가 있다.
자연은 간직한 비밀을 결코 쉽게 열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처음 다가서는 것은 오히려 서정적인 감성이다…시인이야말로 진리가 감추어진 곳을 찾는 가장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인 것이다. 식물학자들이 그 진실의 깊이를 알아차리기 전에 어린아이나 시인의 예민한 영감은 그들이 속삭임을 가장 먼저 듣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영원하고, 더 고귀한 그들로부터.
나무나 풀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그들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에 이들은 스쳐 지나가는 나무이고, 일상적으로 보는 푸른 풀밭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과 모습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풀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까지 눈에 보이지 않던 이들의 특징과 표정이 다양한 모습으로 눈에 띠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천천히 보아야 보인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뒤러, 풀(세밀화). 1503년에 그린 풀은 그 싱그러운 풋내음이 5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살아 있는 듯하다. 질경이, 민들레, 오리새, 조개나물의 질박한 모습이 지금도 풀밭 모퉁이에서 마주칠 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자연의 법칙이 방해받지 않는다면, 많은 식물의 경우 6번째 잎은 언제나 첫번째 잎의 위에 나온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에서. 화가라는 직업상 그는 식물의 사실적인 특징은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개도는 흔히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2, 1/3, 2/5, 3/8, 5/13,…..233/610…

개도와 함께 항상 언급되는 것은 식물에서 관찰되는 나선들이다(솔방울, 해바라기,…)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이 나선들의 숫자들이 앞에서 나열한 개도의 분모 또는 분자로 사용한 숫자들이라는 것. 그 숫자를 크기 순으로 나열하면, 1,2,3,5,8,13,21,34,55,89,144,233,377,610,987,… 피보나치 수열. 이것은 토끼의 번식 문제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식물의 개도가 이런 수학적 규칙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 피보나치는 ‘황금비’와의 관계 때문에 더욱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1.618033988…)
솔방울이나 코스모스 꽃 안의 나선의 개수는 7개나 9개가 아니고 하필이면 8이나 13과 같은 피보나치 시리즈의 숫자들 중에서만 나타나는가…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현상. 이에 대한 해석 중의 하나는 피보니치나 황금비가 자연에 대하여 작용하는 불가사의한 힘이나 원리에서 찾는 것이다(고대 수도사들의 ‘신성한 비례’, 케플러의 ‘소중한 보석’, ‘황금비’라 불리게 된 것은 19세기부터)
요컨대, 식물에 존재하는 숫자가 우연치 않게도 신성한 비례, 황금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혹적인 대상이 된다…그러나 신중한 사람들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해석에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더 합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들꽃 산책
당신는 매일 아침 20여 미터나 되는 높이의 미의 장관을 몇 년식이나 아무 관심 없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을 가지고 나뭇가지의 형태를 살펴보라. 그 가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갈라져 나왔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노라면, 당신은 거리의 모든 나무에서 무한한 감각적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식물학자나 수목학자도 아니고 심지어 정원사도 아니지만, 한 작가로서 나무로부터 창의력과 경외감과 만족감을 찾는다.- 휴 존슨
개도에서 나타나는 숫자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해석에도 불구하고 정작 식물학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떤 식물학자는 단지 의미 없는 수학적 추상에 불과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개도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으며, 개도가 어떤 식물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된 책도 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부터 산과 들로 나가서 직접 조사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가한 마음으로 산과 들을 거닐면서 풀과 나무를 보며 이것을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지 않더라도 즐거운 일이다. 네잎 클로버를 찾을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솔방울의 나선 수가 5개, 8개 혹은 13개가 아니라 7개나 9개인 솔방울을 찾아볼 만하지 않을까. 또 이런 기회를 통해 식물의 세계에 좀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들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에서처럼, 그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까지 초록 일색의 하찮은 잡초들도 비로소 모습과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 때부터 각자의 풀은 유사하게 보였던 다른 풀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우리 주위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풀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를 테면 이제까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쇠무릎, 물통이, 진득찰, 중대가리풀, 애기땅빈대, 깨풀들이 우리 주변에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식물에서 1,2,3,5,8,13,21,….과 같은 숫자들은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일부러 식물원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 주변에서 흔하게 자라는 잡초, 아무 쓸모도 없이 이름과 모습조차 관심 없는 풀에게도 이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피보나치수는 대체로 어긋나기 잎차례를 가진 식물에서 관찰된다.
해바라기의 꽃은 꽃잎과 암술이 소복이 모여 있는 하나의 커다란 꽃송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러 개의 꽃이 모여 있는 것. 꽃 복판에 노란색 암술이 소복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암술이 아니라 하나 하나가 독립적인 꽃들이다. 이들은 모양이 왕관과 비슷하다고 하여 관상화라고 부른다.
꽃 가장자리에 꽃잎으로 보이는 것들도 모두 꽃들인데 이들은 혀모양과 같다고 하여 설상화라고 부른다
두상꽃차례.대부분 국화과 꽃들은 모양이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여러개의 꽃이 모여서 한송이의 꽃처럼 보인다
파피루스는 명백히 나선형 잎차례이지만 피보나치수와 전혀 무관한 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종류로 방동사니가 있다.
#식물과 수학
식물은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미세한 접촉에도 반응하고 아주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 있다(파리지옥!) – 데이비드 에튼보르,『식물의 사생활』
수학은 놀라운 특징을 가진 세계. 여기에는 그 자체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질서가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이 간직한 질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불가사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수학을 알기 시작했을 때에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사실이다.
피보나치 수열의 제곱 합은 맨 뒤의 피보나치수와 그 다음의 피보나치수를 곱한 것과 같다. 다름 도형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과학에 있어 수학의 커다란 효율성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수학을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되기도 한다는 점이다…소립자 같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론은 직관적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수학을 통해서 설명된다.
“자연에서 수학이 그렇게 방대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것에 가까운 것이며, 그것은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생명의 질서
인간이 발견한 불변의 자연법칙들?
‘자연은 그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불변의 법칙에 따라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류 문명에서 가장 주목되는 발견일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바뀐 것이 우리에게 꼭 행복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적어도 옛날사람이 믿었던 아름다운 꿈을 잃어버렸다…그 시대에는 산과 들이 정령과 생명으로 가득 한 세계였다. 그리고 삼라만상은 각자 살아 있는 존재였고, 이들은 아름답고 시적인 의미로 표현되었다…따라서 그들은 자연의 마음과 속삭임에 귀기울였고 이들과 대화함으로써 자연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신비가 사라진 자연? 과학기술을 이용한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한 자연)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앞에 펼쳐진 생명체의 경이로운 모습. 생명체는 정교하다. 이곳에는 미세한 구조를 아무리 확대하도라도 그 안에는 정교한고 정돈된 구조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나타날 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아무꺼리낌없이 죽이는 성가신 모기 한 마리? 모기가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근육, 신경망, 소화기관,…-는 우리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점보 여객기를 위해 사람들이 쏟아 부은 모든 지성과 정보는 모기에 비할 때 간단한 장난감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디자인
풀잎 하나가 별들의 운행이 못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개미 역시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러하다고 나는 믿는다.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땅에 뻗은 딸기 덩굴은 천국의 응접식을 장식할 만하다…그리고 한 마리 새앙쥐는 몇 억의 무신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기적이다.-윌트 휘트먼, 『한 마이 새앙쥐의 기적』
생명현상의 가지 지향적 특징은 그 형태에 디자인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마치 지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남긴 흔적과도 비슷하다.
생명의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는 단지 수학공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비눗방울과는 달리 디자인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도꼬마리 씨앗에 끝이 꼬부라진 가시들은 분명히 동물에게 잘 달라붙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데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식물은 최고의 수학자이자 최고의 디자이너!)
#덩굴식물
덩굴식물은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리고 왼쪽 아니면 오른쪽 중 어느 한쪽 회전방향을 택한다
#황금의 장미
부분도 전체와 비례 관계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사고를 모든 식물과 동물에 적용한다. 그것은 조화로운 비례를 가져야 하고, 이 비례로 된 그림의 모든 부분은 상호작용하여 전체적인 구도와 개별적인 성분 모두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전체와 부분이 모두 똑같아야 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꽃이 우리의 의식에서 차지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는 아름다움이다…꽃이 유혹하고 있는 대상은 꽃가루받이를 도와 줄 곤충이지만, 인간의 감각에도 역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바로 이곳에 아름다운 비례라고 알려진 황금비가 있다.
식물의 황금비는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개도…햇빛을 최대한 받기 위한 지혜?)
식물들은 각도를 균등분할하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어떤 각도를 균등분할한다는 것은 자와 콤파스만을 사용할 때 우리 인간들에게도 어려운 기하 문제에 속한다. 그러나 식물들은 임의의 정다각형을 자유자자료 만든다…어저귀 열매의 바퀴살 모양의 분과(分果)는 개수는 달라도 열매 전체 모양은 모두 정다각형에 가깝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 즉 높고 날카로운 것과 깊고 둔중한 것은 어떤 비례에 의해 조절되고, 그들사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조화가 탄생한다.-플루타크, 『윤리론집』
산록에서 자라는 매발톱꽃을 보면 꽃이 이토록 묘하게 디자인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해바라기
“이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놀라운 2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하나같이 로그나선(대수나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정말 신기한 일인데, 그것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 나선의 수효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나선의 수효가 피보나치 수열에서 나오는 연속된 두 항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이 나선이 수많은 자연물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달팽이 껍질이다.”-아르망 에르스코비치, 『수학 먹는 달팽이』
#햇빛을 향한 디자인
식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햇빛에 잘 노출되어야 한다는 점. 식물의 형태는 이런 중요한 기능을 빠뜨리고 디자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식물이 가진 특이한 각도는 보다 많은 햇빛을 얻기 위하여 계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나뭇잎은 서로 가리는 일이 없도록 엇갈려 나오는데 이것은 담을 덮은 담쟁이덩굴을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

달맞이꽃, 쑥, 망초, 엉겅퀴 등은 어린시절에만 로제트 형태로 있다가 줄기가 성장하면 로제트 모습을 벗어난다. 봄에는 주변에 다른 풀들이 햇빛을 가릴 시기도 아니기 때문에 줄기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고 로제트 형태로 있으면서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열주의 풍경
#새로운 황금비
혼돈 속의 질서? 프랙탈.끝없는 자기복제.
식물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수학에 관한 문제뿐 아니다. 식물의 작은 잎새 하나에조차 그 안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무한한 세계가 펼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