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다윈씨. 데이비드 쾀멘. p283
찰스 다윈의 진면목과 진화론의 형성 과정
찰스 다윈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 아니다…비록 그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썼는지 대다수 사람들은 부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이지만…다윈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
“…찰스 다윈의 삶과 그의 명저 『종의 기원』을 둘러싼 인물들과 사건들, 지적 및 사회적 분위기에 관한 핵심을 콕 찍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도록…다윈의 생애와 업적을 빠르고 수월하게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아마존(www.amazon.com) 독자 서평
종의 기원? 생물학의 지동설
진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목적성이 없는 우연성. 종교와 신의 의지에 정면 충돌!
인간은 만물의 영장? 우연성의 결과물!
#서문
찰스 다윈(1809~1883)은 과학과 사회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이름은 친숙한 데 비해 그의 사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는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널리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계가 지폐를 발행한다면, 거기에 다윈의 얼굴이 새겨지리라는 것은 확실하다….그가 무엇을 했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 누구나 웬만큼 아는 듯하다. 특히 대다수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가 ‘진화론’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생각은 조금 혼란스럽고 부정확하긴 해도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단히 독창적이고 위험하고 전율을 일으키는 다윈의 연구에 관해 몇 가지 점들을 놓치고 있다.
다윈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린네, 찰스 라이엘, 그레고어 멘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프레트 베게너, 프레더릭 허블,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과 달리 영웅이자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그가 이렇게 여겨지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척도는 ‘다윈주의’와 ‘다윈주의적’이라는 용어가 대중 담론에서 부주의하게 쓰인다는 점이다…다윈주의는 잊어라.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윈 자신이 결코 언급한 적이 없는 방식으로 임의의 조건을 달아서 정의하지 않는 한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그는 운둔한 채 저술을 한 생물학자였다….
위에 말한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코페르니쿠스는 끼친 영향 측면에서 다윈과 가장 비슷한 인물이었다.
다윈이 코페르니쿠스가 시작한 혁명을 이어받아 인류에게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니다. 다윈은 그 인식을 우주론에서 생물학으로 확장시켰다….그는 결코 인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경이로움을 느끼는 대상은 호모 사피언스의 뇌가 아니라 방향성을 찾고 집을 짓는 꿀벌의 본능이었다.
자연선택…그의 가장 큰 개념, 단순한 진화 개념보다 더 큰 개념은 너무 크고 너무 거칠고 위협적이었다…다윈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목적이 없지만 효과가 좋은 과정이다. 냉정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며 목표도 없고 결과만 중시한다. 자연선택의 평가 기준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에 성공했느냐 여부이다. 그것은 산발적인 변이들을 추리고 늘려서 실용적인 형태의 질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의 추진력은 과잉 다산성과 치명적인 경쟁이다. 그것의 산물과 부산물은 적응, 복잡성, 다양성이다. 그것은 지구의 생물들, 그들(인간은 포함)의 능력, 그들의 역사, 그들의 토착성, 그들의 상호관계가 모두 신이 미리 정한 어떤 계획을 나타낸다는 개념과 반대되는 심오한 우연성을 구현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정치 강령에 따르는 창조론 전도자들이 그것에 질색하고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창조론(지적설계론). 1982년 갤럽 여론조사. 진화가 아니라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쪽에 동의한 응답자는 44퍼센트였다. 1999년 47퍼센트로 최고였고, 44퍼센트 이하로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 여론 조사를 신뢰할 수 있다면, 미국 대중의 거의 절반이 마치 찰스 다윈이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 우리 종의 기원을 이해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을 택한 사람은 37~40퍼센트…미국인의 81~87퍼센트는 다윈의 인간 진화를 거부한다.
그 모험들 중 최고는자연선택의 발견이다. 거기에 함축된 모든 의미들을 통해새롭게 살펴볼 때 그 개념은 경이롭고 충격적이고 불길하게 다가온다. 그 개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몹시 신중한 사람에게서 그토록 급진적인 깨달음이 나왔다니 말이다.
“한 죄 없고 선한 사람이 나무 밑에서 서 있다가 번개에 맞아 죽는다고 합시다. 당신은 신이 이 남자가 죽도록 설계했다고 믿나요? 많은 아니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습니다만, 나는 믿을 수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린네학회의 다윈-윌리스 발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즉각적인 파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그들의 발 밑에서 과학의 토대가 바뀌었지만,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린네학회 회원들은 대체로 다윈과 윌리스가 대답하고자 한 그 의문-종이 어떻게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는가?-을 품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핵심을 놓친 또 다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종의 기원』은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인쇄물 중에서 범위와 영향이 그 책을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
성경, 코란, 마하바라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심과 피를 요구한 기타 몇몇 경전들이 그러할 것이다. 같은 범주에 속하는 책들은? 아마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와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그럴 것이고, 학술지 논문을 꼽는다면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을 다룬 아인슈타인의 1905년과 1916년 논문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른 위대한 과학책들과 달리, 『기원』은 평이한 일상 언어로 쓰였고 저자가 경청하는 모든 독자에게 말을 하고자 의도한 것이다…대체로 그는 가장 경이로운 이야기들 중 하나를 상냥하게 설명하고 해설하는 사람이었다.
『기원』에는 몇 가지 눈에 띄게 누락된 사항들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거기에는 ‘진화’라는 단어가 없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다윈이 가장 중시하고 가장 고심한 개념인 자연선택이 50~60년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의 냉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른바 다윈 혁명이 19세기 말에 비교적 빠르게 확산되어 대세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는 전투가 있었다.
변위가 무작위적이라면, 목적성은 생물 세계에서 사라진다. 펑하고 완전히 사라진다…그 수많은 삶과 죽음에 아무런 숭고한 목적이 없단 말인가?…이런 것들이 다윈의 19세기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의미들이었다. 지금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그것은 자연선택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은 아니다. 그 이론의 또 하나 필연적인 결론이 있는데, 그것은 훨씬 더 통렬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 종인 우리가 신이 선택한 자라는 특별한 지위를 상실한다는 점이다.
변이는 조준 사격이 아니라 무차별 사격이다. 그 점은 대단히 중요하며 그가 아주 까다로운 말로 설명했기에…진화론은 인간이 거룩하다는 생각을 문제 삼는다.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우리가 영적으로 고상하며, 신의 총애를 받고, 영생을 얻을 가능성, 신이 예정한 특별한 지위, 지구에 대한 특별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는 것 같은 비물질적이고 영속적인 본질을 지닌다는 확신 말이다. 다윈은 바로 그 부분에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아마도 이 행성에 있는 대다수 종교와 충돌한다.
과학적 깨달음과 종교 교리가 그처럼 직접적으로 충돌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원숭이가 공통 조상을 지녔는가보다 더 큰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과 원숭이가 바닷가재와 민들레를 비롯한 다른 생물들처럼 신에게 특별한 약속을 안 받았나 하는 문제였다. 더 쉽게 말하면 영혼은 있나 없나? 사후 세계는 있나 없나? 인간은 닭과 소와 달리 불멸의 영혼을 지닐까, 아니면 잠시 살아 있는 또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할까?
오늘날 우리는 다윈의 개념에 함축된 섬뜩한 도전 과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유신론적 진화라면 모든 신앙인들은 아마도 그 이론을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마 자연선택이 충격적인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당시에는 다윈의 관점에 깊이 배인 유물론을 그렇게 쉽사리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감정을 상하게 했다. 그것은 수용을 방해했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1882년 다윈이 사망할 당시에, 그리고 두 세대가 더 지날 때까지 그의 설명 메커니즘이 심하게 의심을 받았고 저항을 받았으며 전반적으로 거부되었으며, 그 사이에 지화론자들이 거부감이 덜한 대안을 찾으려 애썼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허버트 스펜서. 스펜서는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언론인이었다가 나중에 대중철학자로 명성을 떨쳤고…특히 자유방임적 개인주의를 진화적 진보 개념과 연관 지어 옹호할 때 그러했다. 그리고 그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진화는 스펜서의 정치철학 및 사회학 저술에 들어간 부글거리는 성분이었다.
도약진화론, 진화가 도약을 통해 진행된다? 다윈은 『기원』에서 자신이 믿을 만한 격언이라고 본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를 인용하면서 그 개념을 명백해 거부했다…자연선택은 ‘가장 짧고 가장 느린 걸음을 통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