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한의학원론. 조헌영(윤구병주해). p291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한의학 명저
내가 한의학에 관한 저서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30이 되어서 한의학 서(書)를 처음 펴 보게 된 것은 그때 우리의 처지가 남달랐고, 대중 의료가 실로 비참한 상태에 있었으며, 이 대중 의료에 관하여 가장 공헌이 많고 위대한 공효(功效)가 있는 한의학이 날로 쇠퇴해 가는 것이 애석하고 우려되어 그 부흥에 미력을 보태려고 한 것이며,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책은 1934년에 첫 출판이 되었지만 그 내용은 아직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책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의료 현실이 오늘날까지도 그만큼 열악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민간 의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거의 자생적으로 싹트고 자라 왔다. 질병의 위협은 어디에 사는 누구나 받는 보편적인 것이고, 그 위협에 대처하는 우리 개개인의 슬기가 민간 의학의 형태로 응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자생적인 민간 의학을 보편적인 원리에 의해 의식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동양 의학이다
#이 책의 특징
한의학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도록 애썼다/ 설명 방법으로는 과학적인 태도를 취했다/ 상식적이고 취미삼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쉽고 간단하게 했다/ 논리는 모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세웠다/ 한의학 여러 학파의 학설을 비교하고 비판했다/ 한의학과 서양 의학을 비교하여 조화시켰다/ 대중의 치료법을 개발하기에 공헌했다
#일반론
현대병이니 문명병이니 하는 결핵·당뇨·암·신경쇠약·소화기 계통의 여러 질병들이 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 의학이 이런 질병들을 치료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서양 의술과 동양 의술이 맡고 있는 임무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우지하기 위해서 법률과 도덕이 맡고 있는 임무에 견줄 수 있는데, 이 둘이 보완되지 않으면 질병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도덕은 근본적이고 법률은 응급적이듯이 동양 의학은 근본을 치료하는 의학이고 서양 의학은 두드러지는 증세를 치료하는 의학이다.
동양 의술은 종합적이요, 서양 의술은 국소적이다.
동양 의술은 자연 치료 의술이요, 서양 의술은 인공 치료 의술
열병에 얼음찜질? 이 방법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1)기화열이 용해열보다 7배 이상의 열량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미 물리학이 증명하는 바이다/ 2)인체의 해열을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이 땀을 흘리는 것인데 얼음찜질은 도리어 땀나는 것을 방해한다/ 3)전체는 뜨거운데 일부분만 차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불면증에 마취제를 쓰는 것은 현대 서양 의학의 자기 기만 외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서양 의학은 조직 의학, 동양 의학은 현상 의학. 서양 의학은 정체(靜體) 의학이요, 동양 의학은 동체(動體) 의학이다. 서양 의학은 해부학을 토대로, 동양 의학은 징후학을 기초로 한다. 서양 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생체 조직 내의 이상에서 찾으려고 하고 동양 의학은 생리 현상의 부조화에서 밝히려고 한다.
동양 의학은 근본을 다스리는 치본 의학이요, 서양 의학은 두드러진 곳을 다스리는 치표 의학이다. 근본 치료에는 동양 의학이 능하고 응급 처치에는 서양 의학이 능하다
서양 의학은 획일주의에 기초를 두고 동양 의학은 응변주의를 택한다.
서양 의학도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병리학이란 독립된 부문을 정하여 질병을 관찰할 때 항상 어떤 보편 타당한 병리적 법칙의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며, 치료에 있어서도 보편 타당한 방법을 택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다면 의술의 운용산 크게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곤란하다.
가령 같은 감기라고 해도 땀이 나는지, 가래가 끓는지, 기침이 나는지, 코가 막히는지, 식욕이 있는지 없는지..등의 증세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이것을 일률적인 처방으로 치료하려고 하면 효과가 없다. 감기뿐 아니라 폐병이나 신경 쇠약도 마찬가지로 그 증세가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치료법도 일정하지 않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동양 문화는 큰 숲과 같고 서양 문화는 벽돌집과 같다고 한적이 있는데 이것을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벽돌집은 아무리 크더라도 벽돌이 갯수까지 능히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큰 숲을 대할 때는 실로 광막하기 짝이 없어서 그 안에 어떤 종류의 식물이 몇 그루나 있는지 알수 없거니와 나무 모양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복잡한 차별상 속에서도 우리는 자연계의 일정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으니, 습지에 번식하는 실물은 습기가 있는 곳에 있고, 음지 식물은 음지로 양지 식물은 양지로 가고, 가지 하나 잎 한쪽이 법칙에 벗어나는 일이 없다. 요령부득인 것 같은데 요령이 있고 광막한 가운데 묘한 이치가 있다. 한의학은 보편타당한 획일적인 법칙의 존재를 부인하는 가운데 보편 타당한 법칙에 따라 치료의 방법을 개발해 낸 것이다.
서양 의술은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의사에게 독점되지 않을 수 없고, 또 거액의 의료비를 받지 않을 수 없으니 현대 의술은 돈이 많이 들어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널리 혜택을 미치기 어려운 의술이나, 동양 의술은 가정에서 누구나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서민적이다.
한의술이 치료는 자연적이기 때문에 의료 효과의 정도가 극히 애매해서 병자가 많은 보수를 치를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한방 요법은 지극히 간단해서 돈벌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치료 방법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물욕과 권위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간단한 것을 감추고 일부러 어려운 것처럼 가장하는 일이 많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재래의 한의학에 미신과 전설과 비법 등 불순물이 많이 섞이게 된 것이다.
한의학의 당치 않은 비밀주의는 모두 이런 사라들 때문에 생긴 좋지 않은 습성이다…누구든지 배우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치료법에다가 허무맹랑한 미신과 전설을 붙여서 그것을 어려운 것으로 꾸며 기술을 높이고 병자를 많이 끌어서 돈을 모으려고 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 한의학의 미신과 전설의 옷을 벗기고 그 원리를 대중에게 알려서 대중을 구제하는 진정한 인술이 되게 할 시기가 왔다…한의학의 장점은 대중을 위하고 숨어서 덕을 베푸는 데 있다.
체질과 개인차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동양 의학의 특징이다. 체질과 병 증세의 차별상이 각 방면의 생활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이것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 개인차를 바탕으로 한 치료법과 건강 유지법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 의학은 증후학이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영양학은 인체가 건강하게 유지도려면 이러이러한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현대인 가운데 다소 넉넉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것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서 영양 부족보다는 영양 과다로 병이 드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은 하나에 둘을 보태면 셋이 되는 식으로 수학적 공식으로 간단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단지나 동이와 같은 그릇이 아니요, 소화 작용이라는 것을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생명 활동의 신비. 인체처럼 정교한 기계는 자연계에서도 다시 없다. 먹을 것을 보면 침이 나오고 위액이 분비되며 차차 다른 소화기가 활동할 준비를 하는 것 같은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구역질은 해로운 음식이나 지나치게 섭취된 음식물을 거부하는 것이요, 설사는 해로운 장 내용물이나 지나치게 흡수된 수분을 빨리 몸 밖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한방 치료에 임하는 사람들의 폐단?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몰두하여 한의학의 학문적 이치를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묘한 처방을 처방집에서만 구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떤 처방을 얻으면 그저 그것에만 의지해서 약을 쓰려고 하니 거기서 올바를 한방 치료를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음양#
한의학을 배우고 한의술을 이용하는 데는 ‘음양’을 구분하면 그만이다. 체질에도 음양의 구별이 있고, 증세에도 음양의 구별이 있고 약의 성질에도 음양의 구별이 있으니, 체질의 음양을 분간하고 증세의 음양을 살피고 약물의 음양을 맞추면 병적 현상은 자연히 제거되는 것이다.
오행설은 다원론이요, 음양설은 이원론이요, 태극설은 일원론이니, 다원론은 이원론에 통제되고, 이원론은 일원론으로 돌아가는 데 동양 학문의 진면목이 있다.
음양과 심리 현상
인간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몸과 마음, 다시 말하면 정신과 육체를 합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병리적 변동에는 반드시 그에 관련된 심리적 변동이 따르며, 심리적 변동도 또한 생리적 변동을 수반한다. 생리적 변동과 심리적 변동은 도저히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니,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현상을 두 방면으로 관찰한 데 불과하다.
모든 병의 원인은 과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과로했을 때는 저항력이나 치유력 같은 모든 생리적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질병이 생기기 쉽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휴식이 늘 균형을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장부학#
사람의 내장을 맡은 일에 따라 장(臟)과 부(腑)로 분류. 장은 사람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데 반해서 부는 필요에 따라서 때때로 일한다.
장에는 심·폐·비·간·신의 오장이 있고 부에는 소장·대장·위·방광·담·삼초의 육부가 있다
동양 의학의 장부론은 시체 해부에 바탕을 둔 학문이 아닌 살아 있는 몸의 생리적 현상과 증후를 기초로 한 학문이다.
때문에 장기의 해부학적 위치를 무시하는 듯이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해부학 지식이 없어서라기보다도 현상을 더 존중한 까닭이라 할 수 있다.
장부 오행설. 사람의 오장을 오행(五行)에 맞춰서 설명한 것이 한의학상의 오행설이다. 이 오행설로 역학적 견지에서 우주 만물의 생성 변화의 원칙을 설명하려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선다.
오행설은 물·불·나무·쇠·흙(水火木金土)의 오상의 상호 억압 조장 관계에 의해 우주의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설며하려는 일종의 사상 체계이다
천체의 운행, 계절의 기후, 생물의 성장과 쇠퇴 등 모든 것이 영원히 순환해서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것을 오행의 상생 상극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증후학#
한의학은 전체가 증후학이다
맛. 맛은 한의학상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약성학의 기초가 맛과 기인데 증후학에서도 이 맛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각의 변화와 좋아하는 음식물의 맛의 특징으로써 그 사람의 체질과 증후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계의 현상은 실로 신비롭고 미묘하다…사람이 청춘기에 웃음이 많고 특히 열 일고여덟 살의 처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봄에 꽃이 피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기쁜 감정은 심(心)에 속한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웃음이 헤픈 때가 청춘기요, 그 중에도 특히 처녀 때 웃음이 많다. 사춘기 소녀는 말똥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음을 터뜨린다는 말이 있듯이 17,8세 된 처녀들은 모이기만 하면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생리적 이유를 따지면, 청춘기에는 성장 발육을 위해 남녀를 막론하고 심장의 활동이 왕성해진다. 특히 여자는 월경이 시작되고 어린애를 낳고 기를 준비를 하기 위해 한층 더 왕성한 심장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 웃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급성 전염병은 거의 전부가 땀을 내서 풀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 한의학에서 상한(傷寒)이라고 하는 것은 땀을 내서 치유될 수 있는 병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오한과 발열이 있는 뒤에 땀을 많이 흘림으로써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발한할 때 병독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경락학#
경락은 한의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 경락을 모르고 한의학을 논한다는 것은 어떤 나라의 지리를 전혀 모르고 그 나라의 모든 정세를 이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락은 질병을 공고하는 게시판인 동시에 없애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질병을 진찰하는 데 경락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의사들이 담이라고 해서 담을 다스리는 약을 쓰는 일이 많은데, 원래 담이라는 것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의사가 되려면 직접 담을 다스리는 약을 쓰지 않고 담을 고쳐야 한다.
담이라는 것은 괴어 있어서는 안될 물질이 조직 안에 괴어 있을 때 일컫는 증세이다. 그러므로 가래침도 담이요, 결리는 것도 담이다. 어떤 부위에 혈액 순환이 잘되지 못해서 나쁜 피가 되어서 그 부위의 신경 유독성 물질의 자극을 받아서 통각을 느끼는 것이 곧 담통(痰痛)이다.
#맥학#
한의사가 맥을 짚어 보고 오장 육부의 어디에 병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사물을 관찰할 때는 늘 냉정한 머리로 편견과 감정을 버리고 대해야 한다
맥의 종류는 16, 24 27, 그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맥의 차이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맥의 상태도 다 다르며 한 사람의 경우도 시시 각각으로 얼마간 변화가 있으므로 이것을 세분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분석적 태도로 맥을 연구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맥학의 원리를 알면 응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다양한 맥의 상태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약리학_본초학 원리#
한의학에서 약성학과 증후학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증후를 알고 약맛을 맞추면 치료는 저절로 된다. 그런데 본초 연구는 무척 까다롭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활용이 복잡해서 실제로 치료에 이용하려고 하면 어느 병에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 때가 많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적혀 있는 약의 종류가 1천 8백여 종, 조학민의 『본초강목습유』에 9백 종, 거의 3천 종이나 되는 것의 성질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넓은 의미에서 병을 치료하는 물질은 모두 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말할 때는 그 대부분이 약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음식물이라는 것이 타당하다.
한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식물적 부분, 다른 하나는 약물적 부분이다. 그런데 이 식물적 부분을 진정한 한약으로 볼 수 있으니, 현명한 한의사는 약물성 한약은 안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한약을 ‘약이(藥餌)’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약석(藥石)이 무효’라는 말은 어떤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말. 이때 ‘약석’이라는 말은 약물성 한약을 포함할 때의 명칭이다.
‘석(石)’은 광물성 곧 무기물을 대표하는 것이고, ‘이(餌)’는 동식물성 곧 유기물을 의미한다. 진정한 한약은 유기물이어야 한다. 우선 ‘본초(本草)’라는 명칭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식이와 약물의 경계? 식이는 병자에게 치유의 효과를 주는 동시에 건강한 사람에게도 유익한 것/ 식이는 노동의 보수와 같고 약물은 빚과 같다
한의학의 두 가지 연구 방법. 하나는 분석 과학적 방법, 또 하나는 종합 관찰적 방법. 전자는 서양식이요, 후자는 동양식이다.
분석 과학적 방법. 이 방법은 현대 의학도의 한약 연구 방법이니, 한약 중에서 어떤 유효한 성분을 추출해서 실험적 방법에 의해서 약물적 효과를 규명하려는 방법. 과학자로서의 연구 태도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목적으로 삼는 치료의 효과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약물을 구하는 데는 적당하지 않은 점이 여러가지 있다.
유기 화학이 아직 유치한 단계에 있다. 현재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고 하더라도 유기 화학 분야에서는 이제 겨우 문턱을 넘어선 정도에 머물고 있으니 지금의 유기 화학으로는 유기물인 한약을 화학적으로 충분히 분석하고 실험할 만한 능력이 없다.
분석이 현대 과학의 특징이요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단점이 되는 때가 있다. 금강석도 탄소로, 흑연도, 석탄이나 목탄도 모두 그 성분이 탄소. 그러나 모두 제각각. 분석의 폐단은 본성을 잃어 버리는 것에 있다!(분석과잉 통찰부재)
유효 성분 추출의 불합리성. 한약의 주요 성분을 추출하여 그 약성을 연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다름과 같은 불합리성을 초래한다. 인산의 효능은 특정 성분이 아니라 인삼 전체의 작용 효과다.
기미론적 분류법. 이것은 기(氣)와 미(味)에 의한 분류법으로 본초학 약리에 가장 적합한 분류법
한약은 여러 약소의 복합체. 한 가지 약에 여러 가지 약물적 성분이 들어 있다는 말.
한약은 자연이 처방하여 자연 스스로가 조재한 일종의 종합적 약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처방학#
의술의 목적은 치료에 있으며 치료의 방법은 처방에 있다. 질병의 증세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거기에 따르는 치료의 방법도 가지가지이므로 증세를 일일이 기억하고 특효 처방을 하나하나 암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처방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약리적 원칙을 모르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되어 별로 소용이 닿지 않아서 모처럼 애쓴 것이 말짱 헛것이 되고 만다!
그보다도 약리를 이해하고, 약성을 판단하고, 증후를 관찰하고, 처방의 원칙을 깨달으면 갖가지로 변하는 질병 증세를 대해도 그 질병의 원인을 환히 알게 될 것이고, 증세에 임해서 처방을 하는 것도 자유 자재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경험한 처방은 기성복과 같으니, 서투른 양복장이에게 맡긴 주문품보다는 숙련공의 기성품이 훨씬 더 나을 때도 있으나 숙련공이 만든 주문품과 기성품을 견주면 문제가 달라진다. 요컨데 숙련공을 만날 수 있느냐, 고명한 한의사를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비방(秘方)’? 누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이니, 누구의 수제자니, 어느 산에 들어가 기도를 해서 신이 가르쳐 준 비방을 얻었느니 하여 한약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으로 팔거나 고액의 돈을 받고 처방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동양의 모든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에 공통된 폐단으로서 자기가 지닌 지식이나 기술을 공개해서 널리 보급하는 대신 숨기고 독점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술은 인술(仁術)이라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는 학문인데, 거기에 독점이니 비전이니 해서 혼자만 간직하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진단과 치료
한의학에서 질병의 대상은 질병이 아니고 질병 현상이 나타난 생명체, 곧 사람이며 치료의 대상도 국소적인 질병이나 이런저런 병적 증세의 제거가 아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잃은 생리 상태에 있는 인체를 정상적인 생리 상태를 가진 건강체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단도 종합적 진단이어야 하고, 치료도 종합적 치료여야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순수한 국부적 질병이라는 것은 없다…하물며 내부적 원인으로 발병한 질병이야 어찌 국소적 관찰로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생체 각 기관 사이에는 뗄 수 없는 연쇄관계가 있으니, 한 기관의 기능 장애는 곧 다른 기관의 기능에 이상을 일으킨다…이와 같이 장기간의 연쇄 작용이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것이므로 진정한 원인은 체질에서 찾아야 한다.
증세는 천태 만상이지만 치료에 필요한 것은 음양을 분간하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차고 더운 것, 허하고 실한 것, 안팎 그리고 질병으로 이상이 생긴 장부를 판단하면 그만이다.
병 이름과 치료
서양 의학에서는 병의 이름이 결정되어야 치료를 할 수 있다. 서양 의학에서 진단의 목적은 병의 이름을 결정하는 데 있고, 병명이 결정되면 치료 방법이 그 안에 있으니, 무슨 병은 어떻게 치료하면 된다는 것이 실험에 의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병 이름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치료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병 이름을 몰라고 잘 치료할 수 있고, 병 이름을 안다고 하더라도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은 때도 얼마든지 있다.
서양 의학에서는 치료하는 데 병명이 필요하지만 한의학에서는 병 이름을 몰라도 치료에 조금도 불편이 없건만, 요즘에는 서양 의학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일반 병자들이 모두 자기의 병 이름을 알고 싶어서 설명을 해주기를 바라며, 그 요구에 따라 한의들도 대개 병 이름을 대게 된다.
그러나 그 병 이름이라는 것이 ‘풍(風)’ 아니면 ‘화(火)’요, ‘화’ 아니면 ‘담(痰)’이요, ‘담’ 아니면 ‘습(濕)’이요, 떄로는 ‘풍담’, 때로는 ‘습담’,때로는 ‘담화’, 그렇지 않으면 ‘더위’니 ‘냉’이니, ‘체’, ‘적’, ‘기부족’, ‘혈허’니 하는 것들이다.
풍·화·담·습의 새로운 해석
처방이라는 것은 증후에 알맞도록 약맛을 조합하는 것. 이미 증후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약성학을 정확히 배웠으면 그 처방은 그 가운데서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