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숲. 레미 사바르. p266
이뉴잇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인류의 탄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존재는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그려 내는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로이 윌리스, 『세계의 신화』
이뉴잇의 설화와 유라시아의 창조 설화를 관련짓는 것이 억지스럽다고 여길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문명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문명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지닌 예술적, 철학적, 법적 전통과 동일한 상상의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이란 모든 문명들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전체 속에서 차이를 생각할 때, 일단 그 전체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비교의 토대가 되는 어떤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두 가지(예컨대 잉크병과 자유의지 같은 것)는 결코 대립할 수 없다’-음운론 창시자 트루베츠코이
유목 생활이란 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유목 생활을 통해 이뉴잇의 영토는 구성원들이 나고 자나난 강 연안을 넘어 더욱 확장되며, 다른 지역의 이뉴잇들과 함께 개척한 강 연안 전체로 대표되는 광활한 대지로 발전하는 것이다.
통치권이 고도로 분권화되어 있다는 점, 전문화된 사회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이뉴잇 사회를, 영토를 분할하고 있는 지역 부족들을 한 데 묶는 혈연적 유대의 공고함과 유연성에 의해 유지되는 하나의 총체로서 파악하게 해 준다.
‘여기(이뉴잇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구별될 만한 어떤 경제체제나 통치 체제가 없다. 단지 여러 집단들과 다양한 기능에 따라 그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경제적 행위, 정치적 행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산사람’, ‘아메리카 인디언’?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진정한 이름이 무엇인지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이뉴잇’이다. ‘이뉴잇’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이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이 이름을 가진 여러 집단들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 거대한 이뉴잇 종족의 일부분이다.
#이뉴잇의 구전설화
‘목소리는 하나의 의미이며, 삶의 표현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런 설화들을 글로 기록해 인류의 재산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는 그릇된 것이다. 목소리 혹은 구전적인 성질은 그 자체로 텍스트에 구체적인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언어가 배제된 목소리는 충분히 분화되지 않아서 그 복합적인 특성을 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배제된 언어 즉 글도 그렇다. 이처럼 우리의 목소리는 언어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스스로 완벽한 자유를 구가한다. 노래는 바로 그 결정체이다.
선교사들의 경쟁자? 원주민들 사이에 큰 호응을 받던 이야기꾼들을 경쟁자로 보며 ‘어릿광대’로 규정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야기꾼. 프랑수아 벨플뢰르
#첫 번째 설화_하늘이 내린 고아: 생활양식의 탄생
차카페슈Tshakapesh
카취투아스쿠Katshituasku에게 잡아 먹히고 남은 자궁, 나무로 만든 단지를 박차고 나온 차카페슈
#두 번째 설화_버려진 아이: 여름의 기원
아이를 버린 엄마, 아이를 구한 할아버지 미스타페우Mistapeu
#세 번째 설화_남편의 며느리: 여름의 끝
아이아쉐우Aiasheu
아들을 버린 아버지, 아이를 구한 할아버지 우테슈칸 마니투스Uteshkan-manitush
#네 번째 설화_아들의 사위: 지옥으로의 추락
체쉐이Tscheshei, 손녀에게 흑심을 품은 늙은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직 불교와 유대교, 그리고 다른 여러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들의 미치지 않는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미 유라시아 대륙에는 2천 년이 넘게 인간들이 살고 있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 전까지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에게 공백으로 남았다. 이 공백의 시간 동안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는 자신들이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종교들의 영향 아래 기록된 자료들 속에 그 전까지의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대한 화석화된 파편들을 구해 낼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정착한 시대와 장소가 어떠하든 간에 태평양의 두 연얀은 오랫동안 모든 종류의 교환의 무대가 되어 왔으며 마침내 인류학자들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일컬을 만한 문화를 건설했을 것이다.
4만 년전에 아메리카 대륙 정착. 호주는 5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고고학 발굴지 발견
우리가 콜럼버스가 당도하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와 문명에 관해서 아직 초보적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장에서 전개된 자료들에,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 유럽에서 발전된 자아도취적 시각인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이 모든 것은 사회정치적인 부흥이 서구 사회에만 가능하며 그것을 주도하는 것도 서구 사회여야 한다는 것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하고, 정복하고, 복종시켰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서구 사회의 기술과 권력 구조가 낳은 전체주의적이고 개량적이며 대량 생산과 속도에 사로잡힌 생활양식에 대한 대안적 정치 사회적 모델이 나오는 것이다.- Certeau, 1974
#법, 주권 그리고 나무들
유럽의 전통적인 법률가들은 그들 자신의 것 외에 진정한 법체계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일설에는 유럽인들이 당도하기 전에는 원주민들에게는 법이 없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원주민들은 구전되는 관습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법이라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인류학적 연구들은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법은 모든 인간 사회에 존재하며 그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모든 절처와 규범을 포함하는 것이다...원주민들 사이에 구전되는 설화와 전설은 성문화된 법만큼이나 규범적이다...오늘날은 원주민들이 진정한 법체계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Grammond, 2003
“좋아! 그렇지만 그건 법이라기보다 역사가 없는 사회에서나 통하는 영원불변의 이데올로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원주민들이 처한 개탄할 만한 상황을 초래한 체제 유지적 편견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원주민의 전통적인 법체계가 그들 사회로 하여금 역동적 역사가 초래하는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어울리는 규범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는 생각은 무지의 소산이다. 첫 번째 설화는 그 좋은 예이다.
#알콘킨 문화와 언어를 가진 민족들
“이뉴잇 언어는 역사적으로 가장 잘 정리된 알콘킨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Malihot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