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에 숨은 약초. 김형찬(@healthguider) . p436
어려서부터 밭에서 놀고 때로는 일도 거드는 게 일상이었지만, 정작 제가 밭의 소중함을 알아가기 시작한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진안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부터입니다.
밭에서의 제 생활은 갈수록 풍부해졌습니다…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밭 식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풀’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하나둘씩 제 이름을 알려주기 시작했고,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녀석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제까지 늘 곁에 있었지만 모르고 지냈던 세상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좋은 의학이란 뛰어난 치료술이나 시설 그리고 처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잘 다독거려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이란 것이 결국 삶의 시간이 쌓여온 결과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그 증상도 중요하지만 치유의 초점은 그가 살아오고 살아갈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이른 결론은 지극히 단순한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내용을 ‘생활한의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래 전부터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었습니다.(오래된 미래)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보니 요즘처럼 뭔가 특별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길 원하는 시대에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지요.
텃밭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저 또한 그러한 유행에 휩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밭의 식구들과 뒷산과 바람과 하늘에게 큰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의 일상적인 이야기. 특별한 것 없은 이 작은 기록을 통해 제가 뒷밭 식구들에게 받은 선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상추
상추를 먹으면 졸린다? 치아를 희게 하고 머리를 총명하게 하고 졸리지 않게 한다. 뱀한테 물린 데도 쓴다
#가지
어릴 때 날로 먹은 가지? 늘 뭔가 먹고 싶었던 어린 시절, 많이 먹으면 꼭 배탈
#감
술을 마신 뒤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가슴이 아프고 취하기 쉽다. 게와 같이 먹으면 배가 아프며 토하고 설사한다.
#옥수수
인디언 농사법 따라하기? 땅속에 열리는 것은 보름달이 뜬 밤에, 옥수수처럼 땅위로 열매를 맺는 것은 달이 없는 밤에 심어야 한다
한 밤중 손전등 켜고 옥수수 심는 진지한 아들, 그런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부모님
#쇠무릎(우슬)/오이/상수리/살구/감자/강낭콩/(미국)자리공
공해식물이 아니라 환경조건에 민감한 지표식물. 쇠뜨기나 수영은 산성 땅에 잘 자란다
쓸모없는 자리공? 자리공 천연 살충제

#은행/익모초
“저 담 밑에 있는 것이 뭔지 아냐?” “구절초에요?” “너 한의사 맞아?”
겉 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구나…새삼 느꼈습니다.

#생강/개구리밥
벼 포기 아래 빽빽한 개구리밥. 논을 덮고 있으면 논물의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피부가 가렵고 열이 날 때 개구리밥 끓인 물로 그 부위을 씻어주면 증상이 가라앉는다

#석류/팥
팥은 정말 노랑나비의 날개처럼 밝는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미나리/민들레
오래된 일종의 천연항생제
#매실/개나리
약재로 쓰는 열매껍질은 옛 기록처럼 오래된 나무에서만 열리고, 열에 한 그루 정도 열릴 정도로 귀하다
#들깨/두릅
수렵채취를 생존수단으로 한 사람이 필요한 땅 10제곱킬로미터(300만평). 서울은 경우 60여명이 살기에 적합!
농업의 발전으로 한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땅이 500제곱미터(151평)으로 혁명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5000년 전 농지에 물을 대 농사를 짓게 되면서 100제곱미터(30평)으로 더욱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봉선화/부추/결명자/뜰보리수/노란콩/쑥갓/오가피/자두
자두는 한자로 ‘李’라고 씁니다. ‘오얏나무 이’자인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을 세울 즈음 갑자기 땅에서 오얏나무들이 올라와 왕 씨 나라가 망하고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될 거라는 도참이 나돌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오얏나무가 바로 자두나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이야기를 읽고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고들빼기/땅콩/더덕/산약/산수유/유채/목화/복숭아/자귀나무/뽕나무/자운영/뱀딸기/인삼
인삼은 씨앗을 맺고 그 주위에 작은 흰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자라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습니다.

#쌀
모든 것을 경제와 경쟁의 눈으로 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점차 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지켜야 할 게 있는데, 우리 쌀도 그런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논에서 모내기를 하거나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의 벼들이 바람에 서로 비비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겨울이 되어 하얗게 눈 쌓인 논에서 뛰어 놀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쌀 또한 가게 진열대의 과자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습니다…땅조차도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가만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작지만 이러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은 반도체나 자동차가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러한 작은 흐름에 있는 게 아닐까요.
#고추/쑥
봄의 생기를 머금고 돋아하는 봄나물. 어른들 말씀에 봄에는 독새기풀도 먹을 수 있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들은 대부분 독이 없고 우리 몸에 이롭습니다.
#둥글레/돌나물/시금치
겨울 시금치는 유난히 달고 맛있습니다
#구절초/애기똥풀/구기자/소나무/국화/차조기/대추/쇠뜨기/모란/차나무/모과/토마토/냉이와 진달래/야콘/쇠비름/맥문동/수박/마늘/앵두/무/으름/배추/머루/홍화/백합/호박/멍덕딸기/도라지/동백/포도/수세미/울금/대나무/반하/작약/쥐눈이콩/아욱/천마/아주까리/질경이/목련/참깨/당근
가게에서 파는 당근은 잎이 없기 때문에, 조카아이들은 잎을 보고는 당근인 줄 모릅니다. 씨앗을 뿌리고 자라 거두는 과정을 겪는 일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어떠한 일을 전체적으로 생각하기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미허물(선각)
두충나무에 붙은 매미를 자주 봅니다. 애벌레 때부터 어른벌레가 되어서도 수액을 빨아먹고 살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전부터 약재로 써왔습니다.

#취/칡/토란
토란은말 그대로 땅의 알이란 뜻입니다. 사람에게 이만한 먹을거리가 또 있을까요!
#파/두충/양파(100)
양파의 효능을 살펴보고 나니 여행 중 겪었던 일들이 하나 둘씩 더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어설픈 지식으로 아는 척했던 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지식이 경험과 결합해야만 실제 효용이 있는 지혜가 됨을, 내가 배운 지식이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을 양파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