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장일. p229
기쁨 농장 기쁨 농부
이땅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앞으로 가장 오래 전해져야 할 ‘농부’라는 직업은 조금 못한 직업이 되었고, 사랑스런 우리의 자녀세대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름다웠던 그 시절 추억을 고도경제성장의 기치아래 침묵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없이 낮아져야 함을 수시로 느끼는 직업을 선택하여 일곱 해를 살아 보니 대자연이 베풀어주는 많은 선물을 가슴 한 켠에 켜켜이 쌓아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절에 장단 맞추듯이 일을 준비하는 농부의 여유있는 삶,
수세식 화장실이 많아서 집집마다 기웃거리다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우리집에서 다섯 식구를 먹여살리는 작은 참새,
누가 뭐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옷을 벗어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
언제 밟힌지도 모를 조그마한 곤충들의 생태,
밭둑과 창고 한 켠에 아무렇게나 놓여지곤 하는, 그러나 매끈한 손잡이를 지닌 농기구,
듣도 보도 못하고, 그저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져 오는 법칙들,
이 모든 것에서 느끼고, 감동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농민의 삶에 대한 자연이 베풀어주는 최고의 선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해질녘 저수지의 물고기 비늘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생명에 대한 외경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생명이 살아 있는 삶 속에 녹아있는 여러가지 생활의 참맛을 나누고 싶어서 꼭꼭 숨겨놓았던 선물 보따리를 조심스레 열어보입니다.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봄
분명한 것은 인류가 재배하는 주요 곡물과 그 밖의 작물들은 수십 가지에 국한됩니다. 사회에는 수만 가지의 직업과 직종이 있는데 비해 농부들이 할 수 있는 농사는 수 십 가지가 전부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동네 축구처럼 여기저기 몰릴 수 밖에 없는데,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다른 작목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통상정책을 반대하고, FTA를 반대하는 농민과 농업단체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꼴 조아타!”
그 해 올라온 것들을 남김없이 베어주지 않으면 그 다음해에는 이렇게 꼴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억센 대궁과 얼기설기 밑둥치 부분이 새 순과 얽혀서 베기도 힘이 들고, 베어서 먹일 때 일일이 골라서 먹일 수도 없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됩니다.(억세로 뒤죽박죽 덮여버린 개울)
맞춤 닭둥우리.
아버지가 기억속에만 남기 전에, 아버지 머릿속의 기억을 제 둔한 머리로 새기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봄나물에 향기가 없는 이유
예전에 시장에 나온 나물들은 억센 겨울 동장군과 한판 싸움을 하고, 봄에 납작 엎드려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 스스로 자란 봄나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 사람에게 그것을 팔아 상인들이 돈을 벌고부터는, 농민들에게 들에 가면 지천인 나물을 재배하도록 자꾸 권하였지요.
‘귀한 일’을 하는 ‘귀한 분들’
2002년, 들판을 녹색으로 바꾸는 귀한 작업을 하는 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못줄 넘기는 소리도 없고, 일꾼들의 분주함과 주전자 가득 받아놓은 농주도 없이 기계가 윙윙거리고 아무 흥도 없이 필연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무덤덤하게 진행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도시 흉봐야 농촌도 공동작업이 사라져서 이젠 같은 꼴이 되어 갑니다.
힘든 노동연대의식은 사라지고 어느 집 기계가 몇 마력이니, 어떤 성능이 있니 하는 소리가 속닥속닥 퍼집니다. 들판으로.
#술래잡기하다 보낸 여름
벼꽃을 아시나요? 벼에도 꽃이 있답니다. 벌도 날아오고 거미와 친구로 지내기도 하지요.
왜 미국, 케인즈 그룹, 우루과이 라운드, WTO 협상 등에서는 이 조그만 쌀시장 개방을-곡물은 부피에 비하여, 가격이 낮아져서 무역에서는 어떤면에서는 매력없는 상품입니다-개방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자기들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는 공산품 그리고 가격이나 품질에서 별 경쟁력없는 한국산 수출 주력품들을 사준다고 하는 것일까요?
미국 농부의 자포니카 쌀 생산이 과잉되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미국의 자포니카 쌀은 남한 정도 되는 땅덩이에 재배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왜일까요? 네, 식량의 무기화입니다.
남한같은 조그만 나라에서 기계화도 안 되는데 보조금 주면서 쌀농사 짓지 말고, 우리의 조방농업으로 비행기로 약 살포하면서 일사량 풍부한 지역에서 맛있는 벼를 생산해줄테니, 쌀농사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머리 아프시지요?
쌀수매? 정부가 수매하는 쌀은 WTO의 눈으로 봤을 때 감축되어야만 하는 보조금 지급에 해당합니다. 보조금을 해마다 감소하기로 억지로 약속을 해버렸으니 수매가를 인상하였으면 수매량을 줄여야 합니다…국내 쌀값의 5~10분의 1의 가격으로 동일 품질의 쌀이 들어왔을 때, 얼마만큼이나 많은 국민들이 국내쌀을 소비할 것이며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재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추 한 개 따서 콧구녕에 넣어봐, 들락날락해? 그럼 모심기 안 늦었어.”
#자연, 궁금해도 참았으나
이젠 참지마세요.
한국인이세요? 원산지규정? 수입사료를 먹여서 키운 사슴의 녹용은 국산일까요? 중국산일까요? 호주산 송아지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한국소가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소에게 수입사료를 먹여 키우면 수입소가 됩니다. 그렇지만 한우도 되고, 육우도 되고 원산지는 한국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사료를 실컷 먹인 사슴의 녹용은 원산지를 중국으로 해야 맞습니다!
하루 세 끼를 드실텐데, 그 중에 두끼는 완전한 외국 농산물입니다. 국산농산물의 자급율은 30%정도인데, 그 비율이 점점 낮아집니다. 싸고 겉보기에 깔끔해 보이는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도 점점 늘어나고, 그것을 학교 등에 공급하는 사람들도 돈을 잘 벌고 있습니다…일본은 법까지 개정하여 국산 농산물로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는데 한국은 국회의원들이 상정도 못하게 합니다.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데서나 잘수는 있지만, 아무음식이나 먹어서는 안됩니다!
땅에 묻는 포도농사
“고추 농사보다 포도농사가 재미가 좋은가 보지요?”
“고추 한 근에 4천원 갈 바에야 포도 10Kg에 5~6천 원만 가도 할만하지. 포도는 심은 다음 해면 한 나무에 한 상자 정도는 딸 수 있거든. 그래서 가격파동이 심하기는 해도 마땅히 할게 있어야지.”
…갑자기 태풍에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던 선주 생각이 납니다. 자기의 목숨과도 같은 배가 태풍에 의해 부서지면, 어차피 사는 인생 허무해서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매한가지이겠지 하면서, 배를 지키기 위해 닻을 올리고 태풍을 바다 한 가운데서 맞이하여 유일하게 배를 지킨 그 선주 말입니다.
저는 이 농가가 무모해 보인다기보다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밭 바깥쪽 작황이 좋아보이는 이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좀 우스개 같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밭을 보기 때문에 경쟁심에서라도 길가 주변에는 좋은 모를 심습니다. 그러니 좋을 수 밖에요.
살면서 배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장작은 이른 아침(새벽)에 패야 쉽다!
#반은 거저, 반은 겨우 얻어낸 가을
‘도토리’ 풍년이면, ‘나락’ 흉년
도토리 보관법? 커다란 항아리나 플라스틱 용기에 꿀밤을 넣고 소금을 한 줌 쳐서 휘휘 저은 다음 그냥 두면, 벌레가 끼지 않아서 몇 달을 보관해도 끄덕없다고 합니다
한 되에 이천오백원. 이렇게 싼 가격인데도 수입이 됩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이천 원 정도에 파는 중국산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업자는 몇 백 원에 들여왔겠지요…결국 수입 도토리묵으로 겨울밤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서글퍼집니다…그럼, 그 많은 중국산 수입도토리는 어느 다람쥐가 먹었을까요?
자연농법, 유기농법, 친환경농법을 실천하시는 농장을 찾아가면 농장이 그리 깔끔하지 않다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농사의 기본바탕은 공존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겸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묘길 귀가길에 웃자란 피가 보이시면, 게으른 농부라고 면박주지 마시고, ‘너! 자연과 공생하는 훌륭한 철학을 가진 농부구나’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기계 때문에 농업이 망할까?
마늘심는 기계? 오랜만에 돈값을 하는구나 탄성이 나왔습니다…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내기를 사람이 하지 않고 이앙기가 한 다음부터는 ‘농산물값 폭락’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왜일까요?
기계는 분명히 사람의 몇 배 몫을 합니다. 그 몇 배만큼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하지만, 그만큼 농사가 쉬워졌습니다. 예전에 하루에 10명이 논 두마지기(200평, 4인기준가족 1년 먹을만큼 소출)에 모를 심었는데, 요즘에는 2시간만 혼자서 일하면 됩니다. 농산물값이 반의 반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마늘 심는 기계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늘을 쉽고, 더 많이 재배할 수 있겠구나. 그럼, 가격도 어찌될지 뻔하구나. 올 봄에 중국산 수입마늘 때문에 불 싸지르고 시위하고 그랬는데, 이젠 중국산이 아닌 스스로 올가미를 씌우는구나.’
외국의 분유회사가 다른 나라에서는 GMO 첨가된 분유를 못 팔면서 유독 한국에서는 잘 팔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려할만한 일입니다. 국민의식을…
또한 농가소득을 위해 이런 농산물을 개발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생산량이 두배인 농작물을 개발하여 보급하면 농가소득이 두 배될까요? 유전자조작으로 인한 기능성 작물을 재배하여 고부가가치를 올리는 농민이 몇이나 될까요? 일부 발빠르고, 관련기관과 돈독한 관계를 가진 집단이나 개인은 이득을 보겠지만, 묵묵하게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던 사람들은 또다시 소외받게 될 것입니다.
농사는 기술이 있어야 짓는 것입니다. 하다하다 안되어서 ‘에잇, 농사나 지으러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시골에 오시는 분들은 농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입니다…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배울 수 있고 당장 따라 할 수도 있지만, 남이 저렇게 하는 것을 보지 않으면 평생 농사지어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바퀴 없는 달구지
‘이름은 무슨 이름…’ 경험에 의해서 알고 계신 농사지식이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셨을뿐 강의시간에 배운 것과 틀린 바가 없습니다.
#거기까지는 겨울
그렇게 어려우면 귀농할 수 있을까?
부러진 도끼 자루? 도시에서는 아마 새것을 구입하는 방법을 가장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농촌에서는 산으로 갑니다. 그럼 서툰 농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주변 어른들께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도끼가 부러졌는데도 돈 안 들이고 해결할 방법을 여쭈면, 톱 한 자루, 낫 한 자루를 들고 산으로 동행해 주십니다. 이것이 도시와 농촌의 삶의 방식 차이입니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돈으로써 모든 것을 치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버리는 것, 그것이 작지만 큰 차이입니다.
다만 문제의 해결방식이 한가지가 아니고 여러가지인데, 시골에 와서 살게 되었을 때 도시에서의 해결방식만 고집하면 귀농 후의 삶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크면 된다??!!
알 수 없는 작두콩? 유전자 혁명의 산물인지, 종묘회사의 신품종 판매용인지 농민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농민 또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 차가 나오고, 새 컴퓨터가 나오면 업계는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서 광고를 하는데 비해, 농민에게 공급하는 기계, 종자, 농약 등은 값에 비해 초라한 정보가 제공됩니다. 아마 글자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고, 그런 것에(매뉴얼) 애초에 관심 없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생산, 판매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삶
가격 무시하고, 교환해서 먹어요
뭐하는 거냐구요? 농민들끼리 물물교환하는 것입니다.
시장의 논리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고, 농산물이 폭락, 폭등을 하는 것이지 농민이 생산하는 양은 해마다 거의 일정합니다. 농산물이 폭등을 하든, 폭락을 하든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모두다 소중한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해마다 농사를 짓지요.
농민들끼리 자기 자식같은 농산물을 바꿔먹으면서 또한 情도 나누었습니다.(경북 사과 제주 감귤, 남원골 배,..)
일하기 싫으면 인터넷도 못해!
아이들끼리 내일 또 오자고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그 뒷모습에 왠지 모를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배우고자 도시로 보내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사라져가는 농촌의 아이들이 그리워지고,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이 막막해집니다.
‘시골 인심’이라는 것도 예전에 기계가 없었을 때의 말이지요. 요즘은 기계가 사람 몇 십 곱의 일을 대신하니, 마을이라 해도 주거의 역할을 할뿐이지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주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한솥밥을 먹지 않으니 인심이 마르지요.
녹슨 가마솥? “돼지 비계로 문질러봐!” 지혜를 빌려주는 인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얀 희망? 밤새 아이가 흐질러놓은기저귀를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오고가는 할머니들께서 발걸음을 잠깐 멈추시고 한동안 쳐다보시며 한 말씀씩 하십니다.
“사람 사는 집 같고, 사람 사는 동네 같으네.”
아기를 위해 모기야 가라, 누리장나무!
아기 모기장 위에 누리장나무잎 두 개 올려놓았는데, 파리와 모기가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고 환경 친화적이면서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시골의 모기, 파리 구제를 소개해 봤습니다. 덧붙여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 누리장나무 잎을 넣으면 구더기가 안 낀다고 합니다(고삼이라는 식물의 잎을 말려서 넣어도 같은 효과가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