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조건 Home Economics. 웬델 베리. p240
사람을 노동시장의 필수품으로 보는 천박한 관점에 반대한다
가격으로 규정되는 가치란 항상 미래의 유용성을 기준으로 결정될 뿐 그 자체로는 평가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만일 우리가 평생을 바쳐 소중히 여기는 집과 일 그리고 사람의 가치까지 그런 식으로 규정한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쓰레기 더미 위로 내던져지고 말 것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자연보호운동이 산업혁명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시 말해 청정한 공기, 맑은 개울, 야생의 숲, 사막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다.
자연은 변화의 총합?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연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다
매와 나의 사소한 만남? 만일 내가 100에이커쯤 되는 옥수수밭에서 트랙터를 몰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만남은 생물과 야생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또다른 산물이다.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것에 매혹된다. 그것은 야외 작업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보상이며 농사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이다.
“적절한 규모는 자유와 편리를 주고…두말할 것도 없이 장수와 건강을 선사하네.”
요즘 농부들은 조합이나 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하지만 이런 의존성은 농부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도시의 소비자에게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농장을 편하게 사용하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산업경제의 가장 기묘한 특징 가운데 하나를 꼽는다면, 생산비용에 신경을 쓰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생산성만 지속적으로 증대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외부비용,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웨스 잭슨에게 보내는편지
현대의 과학 프로그램은 이런 경우 그 영향이 가장 광범위하게 증명되고 있으므로 일반적이라고 가정되는 지식, 그것을 중심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네. 하지만 우리가 정작 미스터리에 직면할 때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잡다한 지식은 보잘 것없어지고 무지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고대의 방식이 오히려 옳은 것이 되고 마네.
#아일랜드에서 쓰는 일기
#고학력자와 고향 지키기
흔히 그런 대립 상태에서는 어렵고 냉정하게 말할수록 옳고, 솔직하고 감정적으로 말할수록 그르게 보는 분위기가 흐르게 마련이다.
교육기관이 학생들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가르친다면 그들은 교육을 ‘취업 준비’로 인식할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가치를 따질 수 없기 때문에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두 가지 경제
화폐에 기반한 경제보다 에너지에 기반한 경제가 더 포용적이다
(표토, 화석연료, 화석수,…등 자원을)’이용’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에서 훔쳐옴으로써 결과적으로 미래를 축소시키고 있는 셈이다.
어떤 자원이든 산업적으로 이용하면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실종
대학의 무수한 학과 사이에는 서로 대화가 없다. 도를 넘어선 전문화 때문이다.
만들 때에는 범위를 좁혀 집중해야 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과 비평의 범위는 가능한 한 넓어야 한다
#국토, 애국심 그리고 국방
인간은 지금껏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알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올바른 결과를 얻으려고 잘못을 무릅쓰는지도 모른다.-새뮤얼 존슨,『라셀라스』
#공통의 기반을 찾는 남성과 여성
가정에서의 즐거움, 일상적인 가사나 가업, 건물은 환상이 아니다…모두 나름의 무게와 형태와 장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에 관한 여섯 가지 오류
1)농업은 하나의 산업이다? 농업은 생명체를 다룬다. 반면 산업은 죽은 생물을 다루며 그 과정도 기계적이다.
2)수출을 해야 농업경제가 건실해진다?건실한 경제는 그것이 관여하지 않는 어떤 시장에도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3)자유시장이 농업을 보호할 수 있다? 통제되지 않는 경제력이 활동하는 영역은 농업에는 좋지 않다. 농업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4)생산성은 생산의 측정기준으로서 충분하다? 농업에 드는 진짜 비용(토양, 오염, 공동체의 쇠퇴 등)은 계산되고 있지 않다
5)농부들이 너무 많다
6)수작업은 나쁘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
만약 경제를 ‘가정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의 국가회계 체계는 국가경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소비 현황을 보여주는 도표이기 때문이다.
수익은 거의 손실을 자각할 압력이나 의무를 느끼지 않은 사람들, 즉 잃어버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한다
#야생의 보존
#어느 훌륭한 구식 농부
다른 농부들처럼 랜시도 한때 말 대신 트랙터를 사용했다….그가 말을 다시 사용한 또 다른 명분을 경제적 이유에서다. 트랙터는 연간 6천 달러의 연료비 사용, 말을 부리는 데는 약 2천 달러가 먹힌다…”즐거움도 이유랍니다.” 매일매일 말과 함께 일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좋아서이다!
#가족농장 지키기
가족농장의 보호는, 권리장전이나 산상수훈 또는 세익스피어의 히곡을 보호하는 것과 다름없다
훌륭한 농부가 운영하는 소규모 농장은 훌륭한 장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처럼 높은 수준의 노동 품질과 품위를 제공한다
산업주의는 양심의 가책이란 게 없는 정신이다. 산업주의는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물건으로 취급하며, 물건은 궁극적으로 쓰레기로 취급하는 개념을 단순히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날 농장이 급격히 감소하자 우리는 “농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웨스 잭슨의 주장처럼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사실상 농부들을 이용하여 농업 관련 기업들의 돈을 세탁해 주고 있을 뿐이다. 기업들은 물품과 시장을 조정할 수 있지만 농부들의 과잉 생산은 오로지 시장의 흐름에 좌우된다. 그 결과 수백만의 농부들은 몰락을 면치 못하는 반면 농기업들은 번창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농업국의 여러 부서들과 같은 토지 양도 기관들이 농부들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 아니라 농업에서 탈피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곳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노동력 절감 수단’으로 농부들에게 기계와 화학약품과 대출금이 이웃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웃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봉사 차원의 노동을 제공하는 반면 기계와 화학약품과 대출금은 이웃이 아닌 사람들이 정한 비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런 공적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농산물 생산을 조절해야 한다. 공급이 수요에 맞게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왜 중요한가?
공동체를 착취와 파괴로 이끄는 미끼는 언제나 지역민들 눈앞에 흔들어 보여주는 현찰다발이었다...유일한 예방책이자 구제책은, 외부 투자자들이 제공하는 보상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안을 지역민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역 공동체는 스스로를 공동생활과 공동의 터전에 공동으로 의존하는 이익의 공동체로 이해해야 한다. 공동체는 어떤 장소를 발판으로 삼기 때문에 그곳의 성공은 그 장소의 성공, 그리고 토양, 삼림, 초지, 동식물, 물 ,햇빛, 대기 등의 자연적 환경의 성공과 무관할 수 없다. 자연과 인간, 이 두 경제는 서로를 부양한다. 각자가 영구적이고 살기 좋은 삶을 추구하는 서로의 희망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