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강신주&지승호.P599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세상에 맨얼굴로 당당히 맞서기 위해
진정한 인문학의 길은 굉장히 아파요? (돌직구!)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서럽기 때문에 기다림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기다림을 포기하면 행복도 함께 없어집니다.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은 인간의 즐거운 사랑을 긍정하고 옹호하려는 정신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인문학의 위기란 결국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위기에 다름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삶이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
강신주와 인터뷰를 하면서 배운 원칙?
‘정직하게 맨얼굴로 돌파하자, 비겁해지지 말자, 최선을 다한 후 결과가 나쁜 것은 어떨 수 없는 일 아니겠나.’
‘모두에게 좋은 결정은 없겠지만, 비겁하지 않은 결정을 하려로 노력했다’
인문학적 정신의 소유자는 타자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고, 또한 반대로 타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그는 타인이 나에게 건네주는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속내를 해독할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은 때로는 끔직한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강신주를 통해 배운 인문학적 감수성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인터뷰집을 세상에 내보낸다.
#인문정신은 당당하다
“모든 인문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문학자가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학문을 만드는 거예요. 강신주가 철학자라면 강신주의 철학을 만드는 거예요.”
김수영과 인문정신? 권력과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정신. (김일성 만세)
한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다른 사람을 알게 된다(중식업계의 자폭? 짬짜면? 짜장면 먹으러 다음날 안 와요! 중국집 아저씨들이 인문학을 안해서 그래요. 신자유주의만 배워서.)
디테일은 다르지만, 공명할 수 있는 보편성. 그것이 인문학의 가능성이고 민주주의의 기초죠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어야지, 자유로워야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요. 자유와 사랑은 결과적으로 같이 가는 거예요.”
#철학적 시읽기와 김수영
“김수영은 중요한 시인이에요. 왜 중요하냐면 한국에서 인문학 하고 철학 하는 강신주라는 사람이 자신의 계보를 김수영에게 연결시킨 거예요. 랑시에르가 아니고 마르크스가 아니고 김수영이에요. 우리말로 우리 시를 쓰려고 했던 사람. 김수영은 그저 시인 중 한 명이 아니라 한국말로 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던 사람이에요.”
‘김일성 만세’라는 시금석
마찬가지로 김수영도 시적인 면에서는 어찌 보면 투박해요. 세련을 가장할 틈, 화장할 틈이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니까요. 반면 동시대 시인들 보면 화장할 틈이 없는데도 화장을 너무 짙게 하고 나와요. 김수영 시인이 그걸 너무 싫어했어요. 김수영이 모더니즘을 비판했던 이유도, 김춘수나 박인환을 싫어했던 이유도 그거예요.
김수영의 산문? 산문이 살아 있다는 것은 지성이 살아 있다는 것. 이성복, 황지우 시인의 산문도 좋다
언어 이전의 고통? 자신이 자유롭고 당당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부딪칠 때 느끼는 고통이에요. 그 고통 때문에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언어의 고통이 생기는 거예요. 자유롭고 당당하지 않은 인간이 글을 쓰면 쓰레기가 돼요. 김춘수만 봐도 언어의 고통만 있는 거예요. 김수영의 자신감은 이거예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언어 이전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 그건 김수영이 자유로웠다는 거예요.
#제가백가를 통하라
“처절한 절만 속에서 꿈꾸는 희망의 폭이 곧 그 사유의 깊이를 말해준다면 제가백가의 사유에는 깊이가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이 절망에서 어떻게 벗어날까에 대한 꿈을 제자백가가 제시해 줄 수 있는 거예요.”
혁명가와 시인? 혁명가는 철학자이면서 시인이고 인문학자예요. 모든 혁명가는 시를 쓰죠. 왜냐하면 시라는 것의 정의가 ‘나니까 쓸 수 있는 글’이거든요…내가 새로우니까. 혁명가는 기존에 통용된 생각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하죠. 시인이 꿈을 꾼다면 혁명가는 그 꿈을 실현하는 거예요.
모든 시인이 혁명가가 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혁명가는 시인이에요.
#유가를 넘어서
맞아요. 출세욕이 좌절되자 철학자로 대변신하는 거죠. 원래 제자들이 공자를 따랐던 이유는 딱 하나예요. 그 당시 객경 제도라고 있어요. 손님 객 자에 벼슬 경 자…어떤 제자백가 사상가를 재상으로 등용하면 그 사상가를 따랐던 제자들이 다 내각에 참여하는 제도예요…그러다가 공자가 나중에 변해서 ‘우리는 벼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철학을 한다’고 뻥을 치는데, 제자들은 황당하죠. 지금까지 벼슬을 하려고 쫓아다녔는데….그것에 속았던 제자가 안연인데요. 그래서 공자가 안연을 좋아해요..
#길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장자]를 읽으면서도 ‘도행지이성’이라는 구절을 놓쳤어요. 도는 걸어가야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마치 눈이 쌓였을 때 눈길을 걸어가면 뒤에 길이 생기는 것과 같은 거예요. 길이 나중에 만들어져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유교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 유교문화의 특징이 조폭문화? 학연, 혈연, 지연 다 조폭문화인데, 배타적이잖아요.
조폭에 내부 고발자가 생기면 어떻게 있겠어요? 그랬다간 끝까지 가서 응징하는 거죠. 그래서 삼성이 응징하잖아요. 빵집 열면 빵집 안 되게 하고.
어쨌든 김용철 변호사의 일만 봐도 우리나라의 조폭문화가 보이죠. 그리고 우리는 조폭에 들어가려고 해요.
#철학, 한국사회를 보다
“사람들은 매번 저 사람이 나를 구제해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서 스스로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이 구조 자체가 보수적이에요.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조건들을 공격하고, 그렇게 만드는 인간을 지탄해야 해요. 개개인 스스로가 처절하게 노력해서 주인으로 서지 않으면 이 구조를 극복할 수 없는 거예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요. 인간한테만 관심이 있죠.”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주인인 거지 대표자를 뽑는 게 아니에요. 그게 벤야민의 입자이에요. 직접민주주의, 그러니까 정치의 소멸이죠.
유인촌이 김제동보고 정치하려면 연예인 그만두라고 했잖아요. 이게 분업의 논리거든요.
정치의 분업, 전문화? 모든 억압의 기초는 분업에 있어요. 분업의 논리를 붕괴시켜야 해요.
선거? 4년동안 노예로 사는 거예요. 자발적 노예. 어떻게 나의 정치적 권리를 양도해요? 일체의 정치가 억압이라고요. 정치가 개개인의 삶에서 분리되면 억압이 되는 거예요. 대표자난 국회, 대통령 같은 억압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어떻게 회수해올 것인지에 사활을 걸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전쟁같은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거예요.
새누리? 짐승은 자기 생계를 유지하려고 해요. 밥만 챙겨요. 인간은 인간을 사랑해야 인간이에요.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
정의란 무엇인가? 분배적 정의? 자본주의를 은폐하는 분배 정의일뿐!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는 사회에서 타인을 의식하느냐 의식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어요.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라고 보면 돼요.
짧은 스커트, 지하철의 애정행각, 문화적 충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아끼고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자발적 노예로 만들어요. 사람들이 제 발로 와서 일을 하겠다고 해요. 자본이 없으면 못 살게끔 조건을 만든 거예요.
자발적 복종은 이미 형식적으로는 자살과 마찬가지예요. 자기 부정의 형태죠. ‘자발’이라고 하면 자기가 주인이어야 하는데. 그 귀결이 ‘복종’이에요. 그게 자살이잖아요.
소유의 관계를 그대로내버려두고 분배만 얘기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 다 사기꾼들, 마르크스는 일체의 소유 관계를 없애자는 거예요!
그래서 박근혜를 공격 못 해요. 망령이니까 실체가 없잖아요.
체제의 철학? 사람이 자기의 미래를 염려하게 되면 타인과 관계를 못해요. 사랑을 못 한다고요…경쟁 논리의 바닥에도 미래에 대한 염려가 깔려 있는 거예요. 여기에 맞서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느낌이 주는 강한 현재성이 있어야 해요. 현재를 잡아야 해요. 현재를 잡아야 인간을 잡아요. 미래를 염려하면 사랑하기 힘들어요.(카르페디엠!)
결혼의 공식은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에요!…극단적이 원리지만, 사랑의 원리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거예요.
원리주의자는 애정 결핌에서 나오는 거예요.
통합진보당은 이념의 정당? 이념이 낡은 가치라면 보수인 거고요. 마르크스를 들먹인다고 다 진보가 아니에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미래를 보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진보가 없어요. 진보는 사랑이에요. 자기 기득권을 보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까지 봐야 하는 거예요.
종북론? 색깔론을 가지고 글을 쓰면 같이 휘말려버리는 거죠. 중요하지 않으면 저는 무시해야 돼요.(프레임전쟁)
#자본주의에 맞서라
“쫄지 말고 당당해져야 해요. 그래야 자기 상처라든가 비겁함, 남루함에도 직면할 수 있어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굽실거리다가 죽지 말고 빳빳하게 들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책에 사인해줄 때도 이렇게 써요, ‘항상 당당하세요!’”
소유 형식의 극복을 고민해야 한다?
“소유는 타자가 소유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원천적인 폭력이다. 소유는 곧 권력이라는 사실에서 지배와 복종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 소유가 철폐되면 권력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주의? 우리는 자기가 가진 소유물을 더 아끼기 때문에 사랑을 못해요. 집요한 이기주의죠. 그래서 공동체가 와해돼요.
냉장고가 없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굶어 죽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이 생길까요? 집에 놔뒀다간 썩고 냄새나니까 빨리빨리 나눠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냉장고가 있으니까 그냥 썩히잖아요. 냉장고만 없으면 다 해결돼요. 깔끔하고 좋은 음식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먹어요. 그리고 지금과 같은 과도한 소비와 소유가 지양될 거예요.
스펙터클의 사회? 대중매체? 결국 우리는 여가 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이었다.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는 많이 읽어봐야 해요.(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책!)
특히 진보세력이 더 스펙터클을 원해요. 마땅한 구경꺼리가 없으니까 구경꺼리를 만들려고 하고, 그래서 안철수를 구경거리로 삼는 거예요.
시각문화는 스펙터클을 가능하게 하고, 관조하게 만들고,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그 위험성이 있어요.
촉각의 회복? 애를 잘 키우려면 촉각의 세계로 돌아가야 해요.
우선 도로를 다 뜯어내야 해요. 흙 밟게 하고, 손으로 만지게 하고, 먼지가 날려야 한다고요.
알량한 시각문화만 없으면 자본주의는 무너진다고요…시각에 집중하느라 다른 감각은 죽이고 있어요.
자본주의에 대해 많이 숙고해야 돼요. 자본주의를 우회라면 안 돼요. 그게 우리 삶에 고통과 고민을 안겨주는 근본적인 원인이니까요…체제가 기만적이에요. 장밋빛 꿈을 미래로 연결시키죠. 자꾸 저축하고 보험 들고 미래를 꿈꾸게 함으로써 현재의 세계를 영위하지 못하게 해요. 미래를 염려하게 하는 사회죠.
민주주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과두정치예요.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다들 알 텐데도 그걸 안 보려고 해요. 협소한 시각으로만 봐요. 투표할 때만 보고, 그리고 정치인들이 표달라고 구걸할 때만 보고는 ‘내가 주인인가 보다’ 하죠.
자기계발은 자기를 서서히 죽여가는 거예요? 서서히 죽이다가 자기계발에 실패하면 죽어요!
#음악이 필요한 시간
“철학자로서 제가 음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음악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언어가 달라도…바벨탑 이전에 음악이 있었을 것 같아요.”
대학이 생기고 논문을 쓰면서부터 대중적 글쓰기와 거리감이 생긴 건데요. 루소 책만 봐도 대중적이에요. 자기 문체를 가지고 동시대 사람들과 강력하게 교감하면서 쓴 책들은 몇 십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바래지 않고 나중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거예요…대부분 고전이 대중적이라는 점을 알아야죠. 고전은 읽기 쉬워요. 오히려 고전에 대한 해설서가 어렵죠.
어부 대담집은 왜 안 내나요?
교수들은 경험을 못 해봐서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해져요. 뭐서워하고, 그런데 어부들은 진짜 여유 있고 당당하거든요. 다만 이분들의 단점은 말을 못한다는 거예요.
김수영. ‘너는 언어의 고통 이전의 고통이 충분하냐?’
인문학은 직구 승부를 해야 해요. 그래야 충실한 독자들이 많이 생겨요. 그래야 스테디셀러가 생기고, 저자들도 강해지고.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는 건 경험에서 얻은 통찰이에요. 20대 때는 너무 비겁했고, 제 감정에 충실하지 않았어요.
왜 너만 그러냐? 나니까 한다!
겁 많은 사람의 특징? 안 해본 것은 무서운 것이고, 무서운 것은 나쁘고 저주스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백척간두진일보? 자기 상황에서 벗어나고 자기를 극복하여면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떨어져 죽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면 평지라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못 하니까 계속 거기에 사로잡혀서 무섭다, 무섭다, 하는 거예요.
시를 소리 내서 읽어야 그 시인의 리듬을 알게 돼요.
옳다고 해서 사람이 하지 않아요. 옳다, 나쁘다, 하는 척은 할 수 있어요…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채 머리로만 바뀌어야 한다고 하면 결국 자기는 안 움직여요.
책은 유리병 편지!
인생은 만나고 마주치며 지내는 시간이 반, 그리고 그것을 추억하는 시간이 반이에요.
김수영을 볼 때 받는 위로가 그런 거예요. 잘 살고 있다는 게 아니라 ‘더럽게 힘들구나, 나보다 더 힘드네, 난 별거 아니네, 충분히 살 수 있네, 충분히 글 쓸 수 있네’ 이런 느낌, 그런 위로예요.
부유하고 행복한데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안타깝죠. 고통의 깊이에서 글이 나와요. 어떻게 보면 그 고통을 넘어가려고 글을 쓰는 거니까 글 쓴다는 행위 자체가 역사의 진보이기도 하고요. 아무도 글을 안 써도 된다면 우리 사회가 편해지겠죠. 그냥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김수영이 그랬나봐요…시인이 무용해지는 사회를 꿈꾼다는 김수영의 말이 그런 의미인거죠.
#인간을 위하여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예요.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거죠…”
위대한 문인들 보면 기인이 많잖아요.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하는데, 그게 다 발악이에요. 위악의 행동을 하니 기인으로 보이는 거예요. 겁 안내고 위악적인 행동, 기괴한 행동을 해요…인문학은 고유명사라고 했잖아요. 나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들,…자기를 찾으려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죠.
애들 경험시킬 때 돈으로 쳐바르면 안 돼요. 돈이란 게 묘해서 순간의 고통을 줄여주지만 경험은 안 생기게 해요. 그걸 여행이라고 착각한다니까요. 여행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이에요.
산의 매력? 대통령이든 누구든 희열을 느끼려면 똑같이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맨얼굴로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예요. 그런데 우리는 권력자 앞에서 자기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잖아요. 억압 사회예요.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게 억압의 척도예요. 군인 사회에서 가장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죠.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굳어 있어요. 페르소나만 써야 하는 사회죠. 광대처럼.
가면을 벗고 어린아이가 돼라!
“무릇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실한 마음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그렇지만 동심은 왜 갑자기 없어지는 것일까?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자라나서는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서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이러기를 지속하다 보면,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많아지고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나날이 넓어진다.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동심은 가면 벗은 얼굴, 맨얼굴
인문학은 화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정직하려는 데 도움이 되는 거예요. 정직한 사람만이 뭐든지 배우니까. 정직하다는 것은 맨얼굴이고, 동심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아요.
힘들다고 가면을 쓰지 말자고, 자기 검열 하지 말자고 매번 결심하죠.
남 흉내 내지 말고, 가면 쓰지 말고, 정직하게 자기답게 살아라.
“미성숙이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상태을 말한다..자기에게 책임있는 미성숙이란 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미성숙에 머무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알려고 하라! 그대 자신의 시정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칸트
우리 스스로 주인되자고, 오직 그럴 때에만 민주주의는 간신히 가능할 것이다
위대한 인문정신? 자기만의 목소리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