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알 속의 우주
5월은 우리에게 숱한 역사적 기억들이 얽혀있는 달이다…이 신록의 계절 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별세한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선생에게 붙여진 공식적 명칭은 늘 서예가였고, 때로는 그저 막연히 사회운동가였다. 생애를 통해서 선생이 한 일은 언제나 그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한 일에 골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행동으로 일관해 있었지만, 그러한 행동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어떤 형태의 일이든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거나 눈에 뜨이게 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일순 선생은 노자가 말하는 세 가지 덕목 중의 하나 “세상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不敢爲天下先)”라는 구절을 즐겨 인용하였다. 이것은 물론 처세술에 관한 언급이 아니라 비폭력주의 행동의 원칙을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모든 목숨붙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저마다의 타고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자기중심적 배타적 권력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우리가 장일순 선생을 우리 시대의 큰 스승으로 기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런 대목에서 분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십여 년 전 어느 초겨울 저녁이었습니다. 술 한잔을 걸쳐 약간 취기에 찬 선생님과 나는 좀 쌀쌀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갑자기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보시는가 했더니 군고구마를 파는 포장마차였습니다. 이 양반이 고구마를 자시려는가 해서 “군고구마 자시겠어 요?”라고 여쭈었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시더니 잠시 후 걸음을 멈추고 보고 계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군고구마라고 쓰인 글을 보게. 초롱불 아래 저 글씨를 보게. 저 글씨를 보면 고구마가 머리에 떠오르고, 손에는 따신 고구마를 쥐고 싶어지고, 가슴에는 따뜻한 사람의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 결국 어설프게 보이지만 저게 진짜고 내가 쓴 것은 죽어 있는 글씨야. 즉 가짜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글씨는 장난친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김영주─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회장)
선생의 가르침에는 현학적인 데가 전혀 없다. 이것은 선생의 가르침이 관행의 지식과 학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道)와 영성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 자신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스승은 길가의 이름없는 풀 한포기였다. 선생은 자주 “지식을 위하는 사람은 이익에 대해 생각하지만, 도를 위하는 사람은 손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곤 하였다. 그러기에 선생의 시선은 언제나 밑바닥 풀뿌리 민중의 삶에 가 닿아 있었고, 그 마음은 보이지 않는 우주자연의 섭리에 늘 떨리는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해월 최시형과 무위당 장일순의 가르침
그러한 철저한 소박성, 근원적인 겸허함 탓에 오랫동안 우리의 현대사에서 잊혀져 왔던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의 행적과 사상이 장일순 선생에 의해 새롭 게 조명될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사상가로서의 해월 선생을 우리들에게 소개한 것만으로도 장일순 선생의 업적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세상만물이 먹고 먹히는 순환적인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치 를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라는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 드러낸 해월 선생의 ‘이천식천’이라는 개념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비할 수 없이 심오한 종교적 감수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경제성장과 개발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와 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가 극에 달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비폭력주의의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월 선생에서 장일순 선생으로 이어지는 비폭력 사상의 흐름은 한국의 근현대 정신사에서 참으로 희귀한 사상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피와 잠적의 생활 가운데서도 풀뿌리 민중을 하늘처럼 섬기고, 생명의 존귀함과 평등성을 소박한 말과 행동으로 정성을 다하여 가르쳤던 해월 선생의 삶이나 그 삶 속에서 진정한 사표(師表)를 발견한 장일순 선생의 생애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지극히 겸허하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영혼이다. 이러한 영혼에 깊이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에 우리의 구원 가능성이 달려 있을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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