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p246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과 용감히 맞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가라앉게 해달라고 청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내는 마음을 청할 수 있게 하소서.
인생이라는 싸움터에서 아군을 찾지 말고
스스로의 힘을 찾아낼 수 있게 하소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지 말고
자유를 쟁취하는 인내심을 갖게 하소서.
내 자신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속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타고르,[기도]
“난 워낙 바보라서 언젠가는 될 거라며 멧돼지처럼 냅다 돌진한 것뿐이야.”
기적의 사과, 사과재배의 역사를 바꾼 도전
농약을 쓰지 않고 사과를 기르는 것.간단히 말하면,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백 퍼센트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긴 꿈이었다.
#1 한가지에 미치면 반드시 답을 찾는다
오늘날의 사과는 옛날 사과와는 전혀 다른 과일이다? 무농약 사과를 재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품종 개량 때문이다
그 말은 기무라씨의 인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죽을 마음을 먹을 정도라면 그전에 한번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아. 똑같은 생각을 품어 본 선배로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제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농약의 발명? 오늘날의 사과는 야생의 힘을 잃어버렸다. 농약의 도움 없이는 병충해와 싸울 수 없는 매우 나약한 식물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사과는 농약에 크게 의존하는 현대 농업의 상징적 존재다.
#2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 농법
자연은 그 자체로 완결된 시스템이다. 사람의 도움 같은 게 없어도 초목은 무성하게 잎을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시스템에 손을 댐으로써 인간에게 편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하는 행위가 곧 농업이라고 후쿠오카는 말한다.
비료를 주면 보다 큰 열매를 맺는다. 해충을 죽이면 보다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비료를 주고 해충을 없애는 방법을 발달시켜 왔다. 그것이 거듭된 결과, 농작물은 자연의 산물이라기보다 일종의 석유 화학 제품이 되어 버렸다.
방제 달력에 따른 농약 살포, 사과의 잔류 농약 제로?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과 농가 사람들은 매일 농약에 노출되는 것이다
관행농, 과학영농? 그렇게 농약을 많이 쓰면 무슨 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나야 뭐, 철들 무렵부터 부모님이 그렇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 자랐으니 당연한 줄 알았지. 사과는 그렇게 키우는 거다. (농약으로 인한) 화상쯤은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어…”
‘아무것도 안 하는, 농약도 비료도 전혀 안 쓰는 농업’?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 농업], “책이 닳을 때까지 읽었지”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자연은 완결된 시스템이다?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을 번민하는 것도, 생에 집착하는 것도 인간 지혜의 작용이다. 욕망을 충족하려는 지혜? 욕망에는 끝이 없다(문명의 역사는 인류 욕망의 비대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노자가 설파한 무위자연은 문명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욕망을 채움으로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이 문명의 방향이라 한다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반대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문명을 부정하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후쿠오카의 자연 농법,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 문명은 뭔가를 덧붙이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하지만 그는 그와는 반대인 뺄셈을 되풀이하면서 최종적인 이상, 즉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업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아마 후쿠오카의 책을 안 읽었다면 그런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한 종류의 곤충의 수는 얻을 수 있는 먹이의 양과 그 곤충을 포식하는 다른 생물에 의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제한된다. 생태계는 일종의 피드백 기능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 사과 밭에서는 그런 피드백이 작용하지 못한다. 마이크를 스피커 방향으로 돌리면, 마이크에 모인 스피커 잡음이 계속 증폭되어 하울링 현상이 생긴다. 그와 유사한 현상이 생태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농약을 대신할 만한 식품
독특한 제초법? 모심기를 끝내고 일주일쯤 지나 모가 안정을 찾았을 때쯤 모 사이로 타이어체인을 끌고 걸어 다녔다. 그것을 일주일 간격으로 3,4회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논에선 잡초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5 사과나무에 말을 건네다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을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 주세요.”
사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사과나무에게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야
숲속 나무에겐 농약이 필요없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땅에는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 발이 빠질 정도고 깊었다. 흙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그렇게 부드러운 흙을 만져 보는 건 처음이었다…바로 이거다. 이런 흙을 만들면 된다!
자신은 지금껏 사과나무의 보이는 부분, 즉 지상에만 신경을 썼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나무의 지하는 안중에도 없었다. 퇴비를 주고, 양분을 뺏기지 않게 잡초만 깍아 주었다. 잎의 상태만 신경 썼을 뿐, 사과의 뿌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드러운 흙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의 합작품이다.
사과를 지키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퇴비를 뿌리고 잡초를 깍으며, 사과나무를 주변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다. 사과나무의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았어도 농약으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벌레나 병은 오히려 결과였다(증상). 사과나무가 약해졌기 때문에 벌레와 병이 생긴 것이었다…건강한 도토리 나무? 식물은 본래부터 농약 같은 게 없어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의 본모습이다. 그 강력한 자연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과나무는 벌레와 병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자연을 되찾아 주는 일이었다…마침내 답을 찾아낸 것이다!
#6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봐라
잡초를 깍는 건 사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아무리 잡초를 깍아 줘도 사과나무는 건강해지지 않았어. 아니, 잡초를 깍았기 때문에 더 약해졌던 거야.
우리 밭 흙은 그런 냄새도 안 났고, 역시나 단단했어. 풀을 뽑으면 도중에 뿌리가 끊어질 정도였지. 사과나무 뿌리는 형편없어. 굵기도 보잘것없고, 잔뿌리도 없고, 살짝 검게 변한 느낌에 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 도토리는 잡초투성이 속에서도 뿌리를 그렇게 깊이 뻗었는데 말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에만 정신이 팔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려는 노력을 잊었던 것이다.
개척자는 고독하다!
그것은 기성관념을 깨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때, 개척자는 늘 질서를 파괴하는 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그 모든 뿌리에는 변화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바레 아르바이트. 자기의 꿈이 아니더라도, 꿈은 꿈이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밤낮으로 일만 하는 기무라 씨는 자신들의 영우이었다.
병도 벌레도 자연의 일부다? 벌레는 없애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해충을 바라보는 시건에도 변화가 생겼다? 잎을 황폐하게 만드는 얄미운 적이라고만 여겼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그 모습을 보고 나니까 미워할 수가 없더라고? 알면 사랑한다)
현대 농업은 자연의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실패하길 잘했다? 농약과 비슷한 정도로 벌레나 병에 효과가 있는 식품을 발견했다면, 설령 그것이 인간에게 아무리 무해한 것이라 해도 결국은 농약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도토리나무를 사과나무로 착각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흙의 소중함도 꺠닫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농약을 안 쓴 뒤로 깨달은 게 있어. 농약을 쓸수록 사과나무가 병이나 벌레와 싸울 힘을 점점 잃어버린다는 거지. 약을 주는 게 잘목이야. 자동차만 타고 다니면 하반신이 약해지잖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야…”
자연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투성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갓 태어난 벌레만큼도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다
#7 자연, 사과나무, 인간의 합작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야….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것 정도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간신히 그걸 깨달았지. 그걸 알아채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농사는 하늘과 땅이 짓고. 농부는 오직 거들 뿐!)
사과나무에게 가을을 알려주기 위해 풀베기를 한다
학자와 농부의 차이? 왜냐고 묻는 건 자기 일이 아니란다. 뿌리를 관찰하고 잎을 관찰한 결과, 그렇다고 직감한 것이다.
난 농민이니까 그래
“농민을 뜻하는 ‘백성’이라는 말은 백 가지 일을 한다는 의미야. 백 가지 일에 훤하지 않으면 백성 노릇은 못 해.”
자연을 따로 떼어 낼 수 없다. 자연 속에 따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생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을 아무리 정교하고 치밀하게 분석한다 해도 사람은 사과 한 알 창조할 수 없다…과학자가 하나의 부품으로 분해한 자연이 아니라 무수한 생명이 서로 연결되면서 얽히고설켜 존재하는 살아있는 자연 전체와 마주하는 것이 농부의 일이다. 때문에 백 가지 일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농약 재배를 해오면서 기무라 씨가 발견한 것이 있다? 비료는 그것이 화학 비료든 유기 비료든 간에 사과나무에 여분의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충을 끌어들이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료를 주면 사과 열매는 손쉽게 큰 모양으로 열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나무로 보면 쉽게 영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땅속 깊이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다. 운동도 안 하는데 먹을 것만 풍족하게 주는 어린이와 마찬가지다.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면역계 질환이 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비료를 너무 많이 준 사과나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그 결과 자연적인 저항력을 잃어 농약 없이는 해충이나 병을 못 이기는 게 아니냐고 기무라 씨는 말한다.
#달 착륙보다 더 소중한 인류의 미래
알면 알수록 자연은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 자연을 도와주고 그 은혜를 나눠 받는 거지. 그게 진정한 농업이야. 그게 농업이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이고,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농업은 그런 모습에서 벗어났어. 그 말은 곧 언제까지고 이 방법을 계속할 수 없다는 의미야…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없어. 그렇잖아, 인간 자체가 자연의 산물인걸. 인간이 진심으로 자연의 조력자로 생각하느냐 않느냐, 난 인간의 미래가 거기 달렸다고 생각해…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정도뿐이야..”
이집트도 메소포타미아도 고대 문명이 번성했던 곳은 모조리 사막화되었다. 삼림을 벌채하고 모두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고대인의 얕은 사려를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웃을 수 있는 것는 단지 화석 연료를 쓰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게 지나지 않는다…언제까지고 그런 일은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석 연료가 먼저 고갈될지, 아니면 환경이 먼저 회복 블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어 버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그렇게 되면, 현대 농업이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생태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은 식물의 기생충인 셈이다. 농업은 사람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뿌리다. 그 뿌리가 말라 버리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마, 뿌리가 이렇게 야위고 가늘어졌는데도 아무렇지 않는 표정을 짓는 게 현대인이 참모습이다.
“내 배에 타시오.”
대자연 속 생명의 이치를 엿 본 기무라 씨의 발견. 그것은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그 깊은 뜻과 이치를 알기 위해 인류는 몇십 년 혹은 백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농약을 뿌리는 것은, 밭의 생태계를 우격다짐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기무라 씨의 사과에서는 ‘사과 본연’의 맛이 난다.
약에 절어 버린 무균 상태에서 영양제를 공급받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 문명인의 모습이 아닐까.
#내 눈과 손이 곧 농약이고 비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기적이란 절대 불가능이라 여겨진 사과의 무농약 무비료 재배의 성공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상식을 뒤엎는 과정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고난의 여정 한가운데는 아오모리의 ‘돈키호테’라 부를 만한 기무라 아키노리 씨가 우뚝 서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를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대상으로 우러러보게 하는 것은 그런 힘겨운 성취를 자신만의 이익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주위로 넓혀감으로써,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의 은혜를 나누며 공존해 나가려는 더 큰 뜻을 품었다는 데 있다.
“바보가 되면 좋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어.” 그릇된 상식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쯤이나 가장 중요한 뿌리와 흙으로 시선을 돌리고, 진정한 바보에게만 보인다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사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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