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글, 미카미 오사무 그림. p232
잡초(생태)학! 일본대학에는 얼마 전부터 드디어 잡초학이라는 학문이 자리를 잡게 됐다 한다. 이 책은 그 연구 성과를 지은이가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다.
같은 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잡초라는 이름의 부족. 그 이웃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전략보다 우선하는 잡초의 생존전략이 있으니 이는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이다. 수만 년동안 생명을 이어오면서도 다른 생명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가장 평화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해온 잡초가 인간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풀들의 전략’은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를 굽혀 지구 위의 가장 낮은 풍경을 살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연약한 잡초? 뜻밖에도 본래 잡초는 결코 억센 식물이 아니다. 억세기는커녕 오히려 연약한 식물이라 불러 마땅하다.
약한 그들이 굳세게 살고 있는 비결? 그 키워드는 놀랍게도 ‘역경’, 곧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잡초들의 삶의 환경은 그저 열심히 일만 하면 될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밟힌다거나 차인다거나 뻡힌다거나 베인다거나 하는 온갖 곤란한 일이 뒤를 이어 그들을 덮쳐 온다. 그래도 잡초는 그것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그것이 아무리 좋지 않은 환경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마쳐야 한다.
그런 숙명을 안고 잡초는 살아간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도인처럼 잡초는 살아간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도망치지 않는다.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는 역경 속에서 아름답게 자신을 꽃피우는 방법을 몸에 익힌다.
이름 없는 풀? ‘이름 없는 풀’이라며 사람들은 잡초를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는 모두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징을 갖고 있다. 다양하고 또 생기에 차 있다.
잡초의 특징? 무엇보다도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서는 강인함이다. 잡초는 돌봐 주는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한다. 돌보는 사람은커녕 핍박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잡초는 말하자면 식물 세계의 하층민이다. 버려져 있는 풀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잡초의 삶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역경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것은 결코 잡초만이 아닌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50가지 잡초
#제비꽃
발 없는 제비꽃 씨앗? 씨앗에는 젤리 같은 ‘엘라이오솜‘이라는 물질이 붙어 있다. 이것을 개미가 좋아한다. 아이들이 ‘덤’으로 주는 예쁜 그림 카드에 눈이 팔려 꼭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사듯 개미 또한 엘라이솜을 먹기 위해 제비꽃 씨앗을 통째로 집으로 물어간다. 그 덕분에 발이 없어도 제비꽃 씨앗은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봄이 지나면 꿀벌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제비꽃은 꽃망울만 맺은 채로 있을 뿐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꽃잎을 열지 않고 씨앗을 맺는 이런 꽃을 식물학에서는 ‘폐쇄화’라고 부르는데, 폐쇄화는 처음부터 필 생각이 없는 꽃이다.

#큰개불알꽃
재미있는 이름? 꽃의 열매가 뒤로부터 보아 개의 불알과 비슷한 탓에 붙여진 이름
학명은 Veronica persica, 베로니카? 예수의 얼굴이 비치는 꽃!
#별꽃
줄기의 비밀? 줄기를 조심스럽게 비틀며 잡아당겨 보라. 가는 가닥이 보인다. 강하기만 한 줄기는 밟히면 꺾여 버리기 쉽다. 그런가하면 부드럽기만 한 줄기는 갈라져 버리기 쉽다. 부드러운 잎 속 단단한 실 줄기를 함께 갖고 있음으로써 별꽃은 사람의 발에 밟히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비가 내려 벌레가 올 수 없는 날에는 아예 꽃잎을 닫은 채 꽃 안에서 저 혼자 가루받이를 해 버리는 일도 있다.
씨앗 돌기? 신발 바닥 따위에 붙어서 멀리까지 이동해 가는 데 한몫을 한다.
#광대나물
#둑새풀
삐삐풀? 줄기 피리
자가수분, 타가수분? 식물은 모두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어느 쪽이 유리하냐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식물은 각자 자기 판단 아래 씨앗 크기나 자가수분과 타가수분의 밸런스를 조정하고 있다

#쇠뜨기
뱀밥? 보통 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기관
원시적인 식물? 3억년 전 일세를 풍미했다
원자폭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싹을 틔운 것이 쇠뜨기였다고 한다
#냉이
긴 발아 시기? 한꺼번에 싹을 틔우면 순식간에 다 죽어버릴 수 있다. 발아 시기를 늘려가면서 위험의 분산을 꾀한다
밭은 잡초에게, 경운기로 걸리거나 제초제가 뿌려지는 등 바로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주거 환경이다. 비록 지금 현재 순조롭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냉이는 봄만이 아니라 여름에도 계속해서 싹을 틔우는 것이다!

#민들레
재래(토종)민들레는 봄밖에 꽃을 파울 수가 없지만 서양민들레는 일년 내내 언제라도 꽃을 피울 수 있다
#개망초
꽃집에서 쫓겨난 개망초의 별명? ‘가난뱅이 풀’, 몰락한 집 정원에 돋아나는 풀이라는 말이 퍼지며 사람들은 개망초를 마치 ‘가난뱅이 신’처럼 꺼리기 시작했다.
식물에 나타나기 어려운 농약에 대한 저항성? 이 정설을 뒤집어엎으며 마침내 금단의 돌연변이를 탄생시켰다
인간을 향한 잡초들의 이러한 저항은 현재 다른 잡초로도 널리 퍼져 가고 있다!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외래식물? 그러나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그들은 인간한테 강제로 붙들려 와서 낯선 땅에서 열심히 살 길을 찾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생태 질서를 파괴하는 자는 결코 그들이 아니다. 진짜 범인은 피해자인 양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다. 개망초의 성공 스토리를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광대수염
#클로버
네 잎 클로버가 생기는 원인? 생장점이 상처를 입는 데 있다. 네 잎 클로버는 길가나 운동장과 같이 사람에게 자주 밟히는 곳에 많이 난다!
#새포아풀
코스모폴리탄 잡초? 뜻밖에도 성공의 비결은 머리 높이에 있었던 것이다? 풀베기 높이에 맞게 이삭을 피운다
#참나리
백합? ‘자폭(!)’하는 수많은 껍질 비늘로 이루어진 덩이뿌리.
#질경이
#괭이밥
황금 풀? 벌레에 먹히지 않기 위해 잔뜩 머금고 있는 수산! 100원짜리 동전을 닦아보면 마법처럼 깨끗해지고 ‘황금’처럼 빛난다
#타래난초
#쇠비름
맛이 비름과 비슷해서 쇠비름
#방동사니_아스팔트를 뚫는 힘
식물의 세포 압력은 5내지 10기압(자동차 타이어 압력은 2기압)
#땅빈대
#닭의장풀(달개비)
틀림없이 달개비 꽃은 한나절 피었다가 지고 만다!
#바랭이
#피
나무를 숨길 때는 숲이 숨겨라? 의태 잡초! 피인 줄 사람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개구리밥(부평초)
#메꽃
나팔꽃은 재배식물이지만 메꽃은 잡초
#칡
낮잠 자는 식물
#쑥
국화과 중에서는 드물게 풍매화
#망초_자연계의 위대한 수학자
‘이름 없는 풀’의 대표 격
잎 배치의 놀라운 규칙? 식물의 황금률! 모든 잎이 효율적으로 빛을 받기 위함이거나 줄기의 밸런스를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함
#새삼_놀고 먹는 생활
뿌리도 잎도 없는 잡초? 기생식물
뿌리를 버린 새삼, 황백색의 흡혈귀? 배수의 진을 치고 사는 셈!
#물옥잠_잡초가 모두 죽는 날
잡초는 인간과 한 공간에서 살도록 태어난, 본래부터 공생할 수밖에 없는 식물. 그 잡초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돼 버린 세상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잡초가 잡초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으랴.
정해놓은 평가 기준이 따라 좋다 나쁘다 분별하기보다 다양성이 풍부한 쪽을 선택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물옥잠의 삶의 방식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리라.
#물달개비_백만 달러 잡초의 소원
워터 하이신스
백만 달러 잡초? 놀라운 번식력, 물달개비를 없애는 데 억 단위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물이 깨끗한 연못애서는 물달개비가 전혀 자라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새 사라져 버리기까지 한다…까닭은 인간에게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더럽힌 물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인류가 더럽힌 대지의 덕을 정화하는 식물?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꿈꾸며 물달개비는 물 위를 가득 퍼져가고 있는 셈이다. 누가 감히 이 물달개비의 번식을 질책할 수 있으랴.
#고마리_자기를 닮은 자식을 가까이 두는 이유
메밀과 비슷, 그런데 왜 ‘개메밀’이란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기근 따 구황식물로 재배되었던 적이 있다!
꽃은 땅속에 있다? 땅속의 꽃은 자신의 꽃가루로 가루받이를 하는 폐쇄화다!
#부들
35만 개의 꽃이 모여서 틈 하나 없는 이삭을 이루고 있다!
#갈대_속을 비우라
물가에서는 갈대가 극상(최종단계의 식물 군락)을 형성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파스칼
갈대는 인간처럼 생각이 많지 않다. 쓸데없는 생각은 다 버리고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그것이 갈대의 성공 비결이다.
#향상심이 없는 생명은 없다
더 나아지려는 의욕과 에너지? 모든 것이 있는 함을 다 쏟고 있다
아주 조그만 잡초에 마음을 둬 보라. 한 포기 잡초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무한하게 열린다. 잡초의 시점에서 잡초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면 늘 보던 주변 풍경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숲에서 보내는 편지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잡초다.
“잡초는 지구의 건강에 긴급 사태가 생기면 달려가 처리하는 식물계의 적십자다. 다행히 지구가 위급한 상황을 넘기면 잡초는 성장 속도는 자기보다 느리지만 보다 크고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알프레드 크로스비
“잡초는 가이아의 백혈구이자 부스럼 딱지이고 반창고이자 항생물질이다.”-짐 놀먼
멀리서 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에 상처를 내고, 잡초는 그 상처를 쉼 없이 봉합한다. 작물에 사로잡혀, 혹은 인간 중심주의에 빠져 인간은 잡초의 이런 면모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잡초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