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p307
결론을 내렸다. 수도사나 은둔자처럼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아가기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고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많이 감탄해라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산책을 자주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새장에 갇힌 새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단지 실행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 없는 놈 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잘하고 있고 햇빛을 받으 때면 꽤 즐거워 보인다.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절대 안 된다”?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익사할 위험이 크다고 말하지만, 나는 부인한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위험의 한가운데에 안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 책을 쓴 작가가 사물을 더 넓고 더 관대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바라보고, 현실을 더 잘 알기 때문에 배울 것이 있어서이다.
위험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흥미를 위한 작품은 할 수 없다
돈에 쫓겨서 잠시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끄는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 결과는 늘 불쾌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직접 손으로 작업한다는 의미에서의 ‘수작업’보다 더 견실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절과 교양을 숭배하는 너희 신사들에게 물어보고 싶구나.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있고, 더 자상하고, 더 남자다운 자세냐?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그러니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화가의 의무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어쩌면 위대한 스승 밀레가 말했듯 그들이 ‘그림에 모든 것을 다 걸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나는 황야와 소나무를 보면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는 여인, 모래를 나르는 가난한 농부 같은 초라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소박한 것들 속에는 웅대한 바다에 맞먹는 무엇인가가 있다.
내가 낭만적인 환상에서 벗어난 후에 그림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다행이다…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꼭 필요하고 즐거운 일이 되려면, 무익한 환상에서 깨끗이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평온을 찾을 수 있다.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이라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자연을 떠난 자는 머릿속이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다보면 더 이상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러고는 결국 애초에 원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버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문명화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울증과 비관론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
#화가 공동체에 대한 구상
화가들이 연합해서 자기 그림을 공동체로 소유하고, 그림 판 돈을 나누어 가지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 공동체가 회원들의 생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예술은 예술가들에게! 이건 위대한 혁명이다. 그게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면 할 수 없지.
#영생의 예술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않고,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나에겐 그림밖에 없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결론을 내렸다. 수도사나 은둔자처럼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아가기로.
우리가 화가라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친 사람으로 보든지 아니면 부자라고 볼 것이다. 1프랑을 주고 우유 한 잔을 마시고, 2프랑을 주고 버터 바른 빵을 먹는다. 그런데 그림은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늙은 수도승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기를
돈 문제는 거대한 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게 분명해. 그러니 돈 문제에 부딪힌다면 그걸 천연두 같은 걸로 치부할 필요가 있어.
#내 영혼을 주겠다
우리는 모두 한 사슬에 연결된 고리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저런 것을 그리고 싶다” 라고 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항상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던, 기본적으로 아주 다른 시골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
#서로 다른 단편들을 흥미로운 관계
사람들은 자연의 서로 다른 단편들이 서로를 설명하고 강화시켜 주는 흥미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그 관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