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홍세화.p244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성숙한 사회? 지배세력이 지배하기 까다로운 달갑지 않은 일!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주체적 자아, 진정한 자유인을 형성하는 데 있다면 학생들에게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로지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한국의 제도교육은 윤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은 자유에서 나오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
#학습
너무나 익숙한 반인권적 폭력? 시험 등수 매기기? 지적 인종주의!
더 심각한 것은 학교와 교실이 차별과 억압을 ‘익히는(습)’ 곳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배움만으로는 부족하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려면 익히고 또 익혀야 한다.
‘지적 인종주의’를 내면화하여 경쟁과 차별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에서 우리 학생들은 좋은 가치에 관해서는 어쩌다 ‘배울(학)’ 뿐이고 일상 속에서는 그 반대를 ‘익힌다(습).’ 우리 학생들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 연대의식을 어쩌다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혼자 이기는 것을 ‘익힌다.’…
#사형제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중3이나 고1 교실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너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사형제도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물음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의 교실에서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생각과 논리를 물어서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도가 개인의 책임만 물어 사회에서 제거함으로써 그 범죄를 낳게 한 사회의 책임까지 없애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학교 생활의 특징? 글쓰기가 아예 사라졌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한다)
#반학문
중고등학교 역사 공부? 연대를 암기할 뿐! 국어? 암기한다! 노동의 가치? 기껏해야 노동3권이 무엇인지 암기한다
글쓰기와 토론이 사라진 교실, 객관적 사실을 암기하고 있는지만 묻는다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관철시키는 ‘미친 교육’의 실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한다!(학교없는 사회)
일등부터 꼴찌 까지 줄 세우라는, 서열화된 대학의 요구에 따라 인문사회과학을 ‘반학문’으로 만든 결과다. 학생 줄 세우기 관행의 포로가 된 교사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이전에 독서와 글쓰기가 사라진 중고등학교의 ‘미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서열
한국 교육의 일상이 집단광란에 빠진 지 오래다. 집단의 일상이 돼버렸기 때문에 광란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오로지 남과 견주는 비교,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비교하지 않는다.
#’왜?’의 죽음
#탈의식
이렇게 각 가정은 ‘왜?’라는 물음을 죽였고 각 학교는 ‘생각과 논리’를 죽였다. 그리고 각자에 의식세계는 지지세력이 요구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조중동’은 그 의식을 일상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어렵지 않은 임무를 수행한다.
마르크스도 교육이 ‘존재를 벗어나는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위험을 제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의 주입한,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한다
우리 사회구성원들은 병 걱정보다 돈 걱정이 앞선다? 이럴 때 ‘무상의료’에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상의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혹의 눈길을 보내면서 스스로 거리를 둔다. 무상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가교육이 여전히 관철되는 한국의 각급 학교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와 아무런 상관 없는 의식, 나아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장이다(학교된 사회)
나아가 나는 오늘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탈학교 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에 기반을 두는 우리학교 만들기 운동은 각 지역의 교육진영은 물론, 노동운동, 농민운동, 환경 운동, 여성운동, 정당운동, 언론운동 등 모든 운동 진영이 결집하는 지역 연대의 출발점이며 거점이 될 것이다.
단 한번의 자기부정 과정을 거친 것으로 만족하는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식’? 진보 의식의 성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대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어렵고 느리더리도 대중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보하는 진보의식이 요구된다.
#두 개의 질문
“한 달에 80만원 벌어 무엇에 쓰나?”, “지금까지 어느 정당에 투표했나?”
두 달 전까지 어머니 노동자들은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 그것도 아주 견고한.
한겨레는 운동권 신문? 편파적이다? 알지 못한 채 알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
전교조, 민노총?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계급 배반 투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끝까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의식을 계속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 회색의 물신 사회
#고향
‘잘 사는 농촌’,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모든 땅이 부동산으로 바뀌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한 안정? 그 지역은 아직 핵가족화가 진행되지 않아 가족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발전하지 않았고, 씨족관계와 카톨릭 전통이 상부상조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지역사회의 인전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모아졌다.
#탐욕
자본주의의 미래가 없다?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때문! 인간은 스스로 죽는 대신 굴종을 택한다. 인간의 삶은 모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는 계속된다. 자연은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 파괴되어 죽는다.
성탄절은 태양이 되살아나는 태양축제일이었다?!
잉여생산물, 계급분화, 전쟁, 자본주의 이후 인간은 더욱 오만해졌다.
“부자되세요!” 문화적 충격, 비인간화된 욕망은 물질과 출세를 가치 판단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일제 강점기 이래 우리 교육과정에서 철저히 배제시킬 것 중 하나가 자율성의 가치다. 군국주의 일본이 식민지 노예들에게 자율성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도실용. 중간파들이 균형을 주장하는 것은 대개 명분과 실리를 함께 취하려는 포장술이지만 지식인들조차 이를 역학관계나 현실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중간파들이 회색파의 다른 이름이다.
#도시서민
사회적 약자들의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게 형성된다. ‘대한민국 1퍼센트’, ‘부자아빠’에 대한 선망과 성공한 연예인이 거머쥔 부에 대한 동경은 ’99퍼센트의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당근이다.
용산 참사를 자기 일처럼 봐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은 남의 일처럼 바라본다.
농촌의 ‘나’를 죽음으로 이끈 절망은 도시의 ‘나’들의 무관심이다…모든 나들이 ‘나’만의 행운을 위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짓밟으며 살고 있다는 충고는 판도라의 상자에 애당초 희망이 들어 있지 않다는 악담이다.
#보잘것없음
그래서 개천에서 용난 사람은, ‘개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고 지배층의 요구에 순응하는 조건으로만 출세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든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몰상식
몰상식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제어되지 않을 때 거침없이 폭력으로 나아간다. 이 사회에서는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몰상식의 용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류를 차지한다. 거침없는 목사들의 발언
성찰 이성에 눈뜨지 못한 인간은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남과 비교하여 스스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쓴소리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삼성 제품을 구매하나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나눔과 분배
‘나눔 캠페인’ 나눔에는 관대, 분배에 쌍씸지 돋우며 반대하는 이유? 나눔이 사적 영역, 분배는 성장의 반대로 공적 영역이고 제도에 위한 강제성을 갖기 때문
#지금 여기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
##3 긴장의 항체
#쓸쓸함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프리모 레비
자본주의 생활방식의 특징은 ‘제로섬’ 게임에 있다? 내가 빼앗고 승리하면 너는 뺏앗기고 패배해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하는 것은 이러한 성질 때문일 것이다.
#자화상
“당신이 사는 곳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저급한 폭력이며 야만이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선망에 빠져 인간성이 훼손된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보잘것없는 미물도 성장하려면 허물을 벗거늘, 사람은 스스로 허물도 벗지 않고 나이만 차며 성장했다고 한다.”
사회적 통념,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노력도 없는 거짓 통념, 무지한 소신주의자
무지를 모르는 ‘막무가내의 무지’일수록 소신이 강하다. “너, 빨갱이지?”,”너, 전라도 사람이지?”
#항체
“실존이 본질이 앞선다”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곧 나를 억압하는 사회다
#긴장
온갖 어려움이 뒤엉켜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고 그 첫걸음은 나만의 공간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삶의 최종 평가자는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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