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쌍소.p231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파스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슬로라이프)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는 바쁜 삶의 대가로 얻는 자유로운 시간?
이상하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군분투하는 피곤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순간을 항상 고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피로사회)
‘느림’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 그리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고 필요한 과제이다.(성과지향의 개인주의 경쟁사회)
나는 내가 세상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란 내게 주어진 행운, 그것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이 삶이라는 특권을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그것은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한계가 있는 법
기술의 진보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 더욱 증가되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그건 불가능해”라고 감히 중얼거릴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진 셈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정신, 우리의 감각이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는 노동과, 정해진 사회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을 따로 구분하기 않은 채 노동 예찬론을 펴고 있다. 후자의 노동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기가 어려우며, 때로는 인간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
#한가로이 거닐기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이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듣기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어 줌으로써 그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다 운 좋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미처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분 좋은 사건이다.
정보전달? 하지만 정보전달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가 들려주는 노래도 듣고 싶어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에게 몰입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풍요로워진다.
인터넷 접속, 정보 과잉의 영향? 이제 모두가 듣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꿈꾸기
몽상가는 개념보다는 이미지를 더 좋아한다.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까다로운 노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모든 행동을 제대로 완성해야 하다.”)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궁핍을 모르게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크게 부풀려 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재물이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우리를 이같은 광기와 상스러운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곧 절제라는 태도이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기술은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ㅇ,ㄴ 아주 능란한 솜씨를 필요로 한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은 살아가는 방법, 곧 지혜를 의미한다.
내가 부러워하는 행복이란 안락함이나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기쁨을 맛보고, 그런 기쁨들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 그리고 그런 기쁨을 자주 만들어 내는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 행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바로 끊임없는 수다, 쓸데없는 일들, 한 마디로 ‘헛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소박한 사람들의 휴식
당시의 휴식이란 편안하게 머물면서 자유로운 호흡을 하는 시간이었고, 조용한 행복의 시간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노동이란 것이, 오늘날. ‘레저’라고 부르는 것과 많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 있었다.
#하루의 탄생
그러나 그 어떤 사건들보다 가장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이다. 하루가 탄생하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충만함을 느낀다.
내일은 또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길을 걷는 것은 행복하다. 이 같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모르다면, 그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기대는 나를 더 고조시킬 수 있다.
몽상에 빠지는 것, 그것은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주의력과 무의식이라는 두 강물 사이에서 머무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흔한 방법이 아닐까?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한하는것이다!
(느림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즐기는 삶의 선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