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깃들다. 박계해.p220
귀촌의 고단함과 즐거움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남자의 귀농이 아닌 여자의 귀촌 이야기
문경 산골마을 모래실의 빈집
나는 길가의 낮은 언덕 풀섶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오줌을 누었다. 그 별들의 총총함이 어제 일인듯 기억나는 까닭은, 별을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내 마음 상태를 잊을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기름이 떨어진 순간 이렇게 차가 서버리는 것처럼 통장의 잔고가 ‘0’이 되면 어떡하나 하고 와락 두려워졌던.
새로운 곳에 와서 나는 다시 한 번 인생을 살았다. 좋을 때도 있었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살러 와줘서 고맙다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듯 조용한 나날들이다. 창가에 앉아 고요한 마을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정말 내가 지금 여기에 이 풍경 속에 있긴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오르는 기쁨_내가 지금까지 알던 삶으로부터 떠나왔든 아니면 잃어버린 삶을 찾으러 온 것이든 자유롭게 한 번 날아본 것은 틀림없음이니.
대문도 없고 방문을 잠그는 자물쇠도 없는데다 노크하는 문화도 없으니 마음을 열기도 전에 생활의 모든 것을 다 열어놓아야 한다.
사과꽃_돈이 되는 상품만 생각하는 것이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르는 교육과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굵고 빛깔이 좋은 상품만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비요일_농사를 짓는 우리에게 ‘비요일‘이 쉬는 날이고 지금은 너무 비가 많이 오니까 맘껏 게으를 수 있을 뿐이다.
괴산 솔뫼농장에서 주관하는 단오제, 입석초등학교 운동장
할머니들은 “에그, 시상에, 고들빼기를 모른다.”하며 불려 다니는 것이 신나는 눈치였다.
입석초교 교사용 화장실 글귀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여 가고자 하는 길은 천만 명이 말려도 가는 것이 좋다._맹자.”
울타리_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어눌한 말씨, 첫 삽에서 끝 삽까지 한결같은 몸짓의 할아버지가 만든 예술품이다. 밭 매는 동안 내 생이 닳아 없어지기라도 하듯 허둥대는 탓에, 밭도 나 자신도 어정쩡한 모습인 것이 부끄럽다.
민간요법_종이 쓰레기 태워 물 끓이기? 쓰레기를 아까워 할 수 있는 생활이라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쑥 들어간다.
무좀엔 애기똥풀 찧어서 바른다
노난매 논 안 매_”노난매 한 병 풀면 피가 싸그리 다 죽는데, 왜 그 고생을 해! 참 이상한 짓들도 하네!”
장날_그러고 보니 오늘 시장에서 본 어른들 중에는 다리를 절룩거리거나 질질 끌면서 걷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농사철에는 아파도 모두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산딸기가 지천인데_“그깟 걸 뭐하러 따여?”….“아유, 따먹고 싶어도 심들어여.”
할머니는 기운이 없는데 기어서라도 밭에 나오고,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억누르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핀드혼 농장 이야기]
오줌 싸는 돌_”거긴 돌밭이라 뭘 심어도 잘 돼.” “돌이 말이지, 오줌을 싼대, 그러니, 거름이 좋겠지?”
소풍_논리는 우렁이들이 알을 까서 여기저기 분홍빛 꽃이 핀 듯하고,…

싹싹 깍아삔져여_”..누가 봐도 풀밖에 없어…아이구, 그런데 이 동네 들어온 사람들이 다 그래여. 깨뜻이 해놓고 살면 얼마나 좋아.”
악착같은 풀? 더 독한 약? 한마디로 죄없는 땅만 죽어난다
“시장에 나온 오이들은 분명히 무슨 약을 치겠지? 집에서 키운 건 이렇게 구부정한데 장에 나온 것은 모양이 반듯하고 좋잖아, 분명히 무슨 약인지 있을 텐데 그지?”
우리 아주머니의 약에 대한 의존도는 이제 신봉에 가까울 정도가 된 것 같다.
좀 게으르면 어때? 너무 도회적인 생각?
낭만새_그러고 보니 일 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아!’라는 감탄사를 평생 해온 것보다 더 많이 내뱉고 있다…자연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공짜 공연을 원없이 관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매우 좋다
실적이나 속도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던 바였으니 그의 느림과 나의 빠름은 ‘기질의 차이’일 뿐, 견주어 얘기할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이 피를 다 뽑으면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니까.
캠프를 열자_’아이들은 잘 먹여만 주면 잘 논다‘
약 팔아 약 지어 먹고_어른들의 약에 대한 의존도는 농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상자 속 아이들_원룸? 아이들 집 문을 닫으면서, 작은 상자 속에 아이들을 담아 뚜껑을 꼭 닫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매우 좋다_”시골 생활 할 만 하세요?” 당연히 ‘좋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매우 좋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_속세를 겪은 우리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축복인데, 사춘기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고야 말리라’는 생각이 곧 꿈이고 희망일 만큼 답답하고 마음 둘 데 없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다. 그런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즐길 스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디까지나 ‘생각’이다.
어이구 술술 잘 끄네_”아이구, 심 안 들어여? 잘 끄네. 우리 새댁이는 뭐든지 그만 비쩍하고 잘 해여!”
“네에…헉헉…”
“어이구, 술술 잘 끄네.”
다라나 갖고 와여_”다 자식 같아서 그러는 거여. 사실 멀리 있는 자식 놈보다 더 고마워여.” 코끝이 찡.
배추가 도로 밭으로 갈라_”그래도 잔소리 때문에 살림이 되는 걸요.”
또 부침개 부치러_이것이 바로 품앗이, 상부상조. 이것이 바로 일이요 놀이요, 놀이가 일이라는 것이야. 교과서의 내용이 삶 속에 있구나…
모두가 무대의 주인_화북중학교 <로미오어 줄리엣> 무대? ‘훌륭한’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민망한 감이 있지만 ‘행복한’ 공연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전교생 모두 공연 참여, 선생님들도 ‘중창’을..그야말로 ‘모두가 무대의 주이이 된 축제’였다.
##우린 날마다 한 생을
어딘가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나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숲속의 주인들에게 합장을 했다.
‘너희들처럼, 걸친 것 없이, 쌓아둔 것 없이도 언제나 자유롭기를…’
신세 갚기_마을 어른들은 아무리 작은 신세도 잊는 법이 없다
들깨 심어 병 나고 들깨 팔아 병원 가
인디언 농법 실험? ‘인디언 농법, 세 자매와 잡초’-귀농통문, (옥수수와 콩, 그리고 호박)
이 산의 주인은 바로 나_그저 저 먼 회색 도시에서 글자와 숫자로 된 자기 산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 산은 지금 이렇게 흙길을 밟고 올라가 꽃을 따고 있는 내 것이니까.
산자락의 인동초
정분 나려는데_노인대학 졸업식 송사. “..한 그루 한 그루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것처럼, 나무의 날 목요일마다 모여 배움의 숲을 이룬 지 이 년, 학교는 뿌리가 깊어지고 기둥이 굵어졌으며 앞도 무성해졌습니다…”
벼슬이 잠을 설쳐_우리 동네 냇물은 유난히 맑고 깨끗해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니, 여름 한철이나마 시골 사는 뿌듯함을 느껴야 할 마을 사람들은 도 힘들어졌다
풀약 때문에 내가 못살아_”이렇게 해놓으마 새들이 씨를 안 먹으니까 좋아여.”
‘새 한 입, 벌레 한 입, 사람 한 입‘하면서 우리 몫으로 돌아오는 것만 먹겠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잠든 참에 그대로 가는 게 젤 소원이여.”
콩새천사_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출구가 있음을 알려주러 온 천사임이 분명하다
##빈집, 그들은 지금
빈집에 깃든 지 구 년이 흘렀다. 사십대였던 우리는 오십대가 되었고 십대였던 아이들은 이십대가 되었다….빈집에 깃든 생활을 통해서 나는 꿈같은 경험을 했지만, 내겐 우리의 집을 스스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희양산 우렁쌀_‘누가 먹는지 알고 짓는 농사, 누가 짓는지 알고 먹는 밥상’
“우리는 너무 지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농사를 적게 하는데 어른들은 땅을 놀리기 싫으니 힘에 부치면서도 포기를 못하는 거야.”
“조심해야 돼, 도와줄 땐 좋아하지만 습관 들면 당연히 다 해 줘야 되고 나중엔 안 해주면 욕까지 먹는다니까.”
“또, 누군 해주고 누군 안 해 줄 수도 없고… 마을 사람들이 죄다 노인들이니 참 갈수록 산이다.”
하지만 이들은 제초제를 맹신하는 동네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결국 성공한다. 만 원짜리 노난매(논안매) 제초제 한 병이면 될 걸 5만 원이나 들여 우렁이를 사다 논에 푸는 귀농자들에게 그 우렁이 잡아 술안주나 하자던 어른들도 이제는 다함께 유기농 벼농사를 짓게 되었다. 지금은 희양산 우렁쌀(http://cafe.daum.net/urungssal/) 이란 브랜드로 마을 사람들의 결실을 소비자들과 나누고 있다.
#빈집이 준 선물
“기록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마찬가지다.”-버지니아 울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