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p243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의 경험은 이제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되어버렸다
로고테라피 창안-‘실존적 분석’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는 것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니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자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그 자체를 위한 투쟁하지 자기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아우슈비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뎠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번째 단계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더.”-레싱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실현된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역설적인 시간 감각?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인생이라는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그에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니체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 물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실존적 좌절?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실존적 좌절 그 자체는 병적인 것도 병원적인 것도 아니다(실존적 고민이지 정신질환은 아니다)
로고테라피?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실존적 역동성?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항상성)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실존적 공허?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동물적 본능 상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실존적 공허의 가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 쾌락 등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 한다
#삶의 의미
인간의 실존?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유일한 존재)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능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로고테라피 치료사가 하는 일? 화가보다 안과의사! 그대로 볼 수 있게
인간존재의 자기 초월?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사장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
사랑?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사랑의 의미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의 아내를 살릴 수 없지만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로고테라피)
“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즘은 성직자가 아니라 의사를 찾아와서 묻는다!
#초의미?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의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게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심오하다.
삶의 가능성과 과거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산리에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기만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과잉욕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역설의도 기법? 예기불안 치료기법
“내가 얼마나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지 사람들한테 있는 그대로 보여줄 테다”
마음속의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예기불안)
예기불안은 역설의도로 좌절시켜야 하고, 과잉의도와 과잉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있다(거리두기)
#비극 속에서의 낙관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감사하게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다…하지만 프로이트의 말과는 달리 강제수용소에서 ‘개인적인 차이’는 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차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스피노자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가족 블로그라네 멋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