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토니 주트. p237
ill fares the land
자유시장과 복지국가 사이에서
“악덕을 먹이로 달라고 재촉하는 불행한 땅,
재산은 쌓여 가는데, 인간은 쇠락해 가는구나.”-올리버 골드스미스 <황폐한 마을>(1770)
#혼돈에 빠진 사람들, 가치가 아닌 가격이 전부인 세상?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왔다. 정말 이러한 욕망의 추구를 배제하고 나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것이 지닌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젊은이들? 상속될 세상에 대한 걱정, 두려움과 좌절감이 만연, 목표가 없다!
자유주의자?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
사회민주주의는 미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효율성과 ‘작은 정부’의 미국의 정책들? 대부분 실질적으로 유럽인들이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상응한다!
유럽형 모델은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고 또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비판자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인기는 그 수혜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금융위기!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학파 동료들을 찬양해 마지않던 수많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석고대죄를 하는 심정으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앞에 엎드려 충성을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불안은 공포를 낳는다. 그리고 신뢰와 상호 의존 관계를 좀먹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몰락해 버린 공동체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백억 달러를 군사작전에 퍼부으면서도, 사회복지나 기반시설에 대한 공공지출의 증가에 대한 함의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사적 영역을 특권화하고 공적 영역을 무시한 가장 극단적인 사례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다시 나타났다(탈규제의 진원지)
21.2%의 국민소득이 단 1%의 소득자에게서 발생(2005년 미국)
월마트 CEO연봉은 일반노동자의 900배!
월마트 창업자 가족 재산? 900억달러, 하위 40%(1억2천만명)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
192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부의 대물림)
격차가 심해질수록 사회문제 역시 악화일로를 걷는다
고삐 풀린 부의 추구가 낳는 병폐는 정말 참혹하다
불평등은 곰팡이와 같다. 그것은 사회를 내부로부터 좀먹는다. 영향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경쟁이 격화되고, 범죄가 폭증하고 사회 병리학적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종종 전체 국부의 증거가 불공평한 분배를 교묘히 감춘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미국과 중국의 거의 동일한 ‘지니 계수’!)
회복불가능한 아일랜드, 캘틱 호랑이의 경제 기적? 정부가 규제 완화와 감세 조치를 취하면 핫머니와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미국인의 국민성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그들은 세상만사의 가치를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질문 속에서 찾으려 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될까?”-알렉시스 드 토크빌
“세계 경제의 실험실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바로 이곳 미국이더군요…”-1934년 케인스
#경제지상주의와 그 부작용
“우리가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삶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명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케인스
다른 종류의 사회를 상상하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다른 질서를 왜 우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을까?
지난 30년간의 정책? 경제적 실익만 궁리할 뿐 다른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경제 문제, 그것도 가장 협소한 의미에서의 경제문제로 환원시켜버렸던 것이다!
도덕적 진공상태에서 세상만사를 평가하는 행태를 그만두어야 한다
신뢰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그토록 많은 비판을 받으며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이유는 시장과 자유로운 경쟁 또한 신뢰와 협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신뢰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자체는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해 가며 멈춰 서고 말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연봉이 두둑한 직장 말고는 다른 대안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세계
과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과거는 단지 지금과 달랐을 뿐이다!
“그 시절에 개인들은 모두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통해 힘을 되찾았고, 개인의 자신감은 공동체의 자신감으로부터 나왔다…”-슈테판 츠바이크
케인스는 파시스트들의 경제 정책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쟁과 점령, 착취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역설적 상황? 당시에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불릴 만한 변화들 덕분에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후 수십년간 번창할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경쟁과 자유 시장을 상찬하는 말들은 넘쳤지만, 정작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 애썼다
우리는 공동체적 목적과 실천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원칙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오늘날 이 모든 것들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을 더 많이 배려하고 스스로를 더 적게 배려하라,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자신의 자비를 보여 줘라. 인간의 본성은 이로써 완성될 것이다.”-애덤 스미스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를 더 잘 믿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척 많다
신뢰의 부재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방해한다
일반적으로 신뢰가 널리 자리 잡은 곳은 상대적으로 작고 동질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인구가 매우 적다,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미국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분배? 본질적으로 도덕의 문제였다!
“여러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합의는 위대한 진보를 가능케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다. 이전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풍부한 삶의 기회를 가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랄프 다렌도르프, 독일 정치학자
#민영화 예찬
20세기 마지막 30년을 장식했던 지적 흐름 한 마디 요약? 민영화에 대한 숭배!
효율적 운영? 하지만 현실은 아주 달랐다! 공동체의 이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민간부문 이전의 결과는? 경제이론과 대중적인 신화와는 반대로, 민영화는 비효율적이다!
최악의 혼합경제? 이익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손실은 국가에 전가하는 특혜를 누리는 상황에서, 민간 부문이 공공 부문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공동화)
사실 범죄나 다름없다!
사실상 민영화는 개개인이 할 수 없거나 하려 들지 않는 일들을 정부가 맡아서 한다는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과정을 뒤짚어엎는 일이다(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공 부문의 해체? 사회의 ‘원자화’, 이웃에 대한 친화력을 잃게 된다!
해답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기라도 해야 해답을 찾을 것 아닌가? 우리는 ‘혁명’이라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현재와는 아주 다른 질서를 상상하는 방법을ㅜ되찾아야 한다(Think Different!)
“현명하게 관리하기만 한다면, 자본주의만큼 경제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효율적인 체제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다만 문제는 자본주의가 무지막지하게 불쾌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는 점이다.”-케인스
불평불만을 선동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에게서 배울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반대와 반상은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의 몫이다
“목적의식이 없는 인간과 사회는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난파할 수밖에 없다.”-리처드 티트머스
더 나은 삶? 공적 대화를 재구축하는 것만이 변화의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다. 다르게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르게 사고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한 좌파? 지난 30년간 계속된 국가내사 시장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정치와 정치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공 정책의 의사결중에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정치적 논쟁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는 바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이다. 극심한 불평등이 만연한 곳에서는 그 어떤 바람직한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개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잘 하거나 조금 더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무엇보다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일들을 착수해야 한다.” – 케인스
대중교통의 역설? 그 본연의 임무을 더 잘 수행하면 할수록, ‘효율성’은 더 떨어진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지역 기반 서비스를 여전히 제공해주어야 한다
전국 철도 노선 34% 폐쇄, 비용절감 효과? 40년이 지난 이제야 제대로 비용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고속도로 건설로 환경이 파괴되었고 자가용 이용자 수는 급증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더 나은 삶? 유용성의 재구성 필요?
우리가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윤리적 고려 사항이나 더 넓은 사회적 목표들에 대해 외면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유용성의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비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