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에서. 박형진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화전
우와-
산에 저 벚꽃 터지는 것 좀 봐
가슴이 활랑거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네
내게 농사는 2
담배밭 옆을 지나다가
길옆에서 새참을 자시는 할머니들을 보았다
이슬 찬 담배밭 고랑의 풀을 뽑던 흙 묻은 손
한 앞에 겨우 빵 한 봉지 콜라 한 컵이다
저러고는 다시 점심때까지 저녁때까지 종일
담배밭 고랑에서 흙둥구레미가 될 것이다
하루 품삯 삼만원, 늙어 힘드는 것으로 따지면
돈만으로 샘하기에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힘 좋은 젊은이들은
곱으로 준대도 이웃의 밭고랑 대신
차라리 화끈하게 노동판을 기웃거린다
나도 한때는
하루 종일 잔자분한 농사 일품에 지쳐
여기저기 공사장 일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수로 건넷논의 아저씨가
논둑에서 배밀이를 하면서 옹색스런 곳
한 줄 빠진 모를 수놓듯 때워가고 있어
한눈판 나 자신의 계산성에
깊은 부끄럼을 느꼈다
금방까지 흙미꾸레미가 되어 일을 했어도
나갈 일이 생겨 이렇게 차를 몰고 나가면
일 않고 놀러 가는 듯 미안하기만 한데
비켜 주지 않아도 될 넓은 길을 할머니들은
또 저렇게 힘겹게 비켜주신다 아 농사의 순박함이
이렇듯 높디높다
하지만 나는 여지껏 내 노동에는
신성성을 부여해 보지 못했다
많은 날들을 혼자 묵묵히 일해왔지만
남의 끼니와 잠자리를 위해서 수고해 보지 못했다
#나에게는 시 짓기가 농사 짓기다
등단한 지 20년, 이제 겨우 시집 세 권! 서른다섯 해 동안 지어온 농사와 너무도 똑같다!
내게 땅이 조금이라도 있고 몸뚱이가 병들지 않는 이상 금년에 못 지으면 내년엔 잘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여태껏 농사는 지어왔고, 시 쓰는 것도 누가 알아주어서 쓰는 게 아니지만 알아주지 않으면 더 잘 써야지 하면서 써왔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 짓기가 농사 짓기다.
내게 농사는 참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삼백예순날, 날마다 다른 얼굴은 아닐지라도 변덕이 심하다. 정확히 말하면 땅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농사 또한 해마다 그대로인데 짓는 내가 다른 것이다.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자유스러움-김용택
농사는 거짓이 없다. 농사는 그 어떤 수식이 아니다. 농사는 사실이다. 농사는 엄연한 현실이다.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이 만들어 낸 저 알 수 없는 순환의 질서를, 그 무궁한 사랑을 농사꾼은 다스린다. 꽃이 피는데 거짓이 있을 리 없다. 싹이 나는데 꾸밈이 있을 리 없다. 진정성과 진지함만이 존재한다. 농사는 종교 이전이고 과학 이전이다. 형진이는 이제 그 이전의 질서에 몸을 맡긴 이 땅에 마지막 농사꾼이 되었다.
형진이의 시를 시로 보지 말라. 삶으로 보라.
농사는 완벽한 예술이다. 우리 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깨밭만큼 잘 쓴 글,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와 음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른 새벽 논으로 나가는 농사꾼들의 오랜 전통, 형진이는 이제 진정한 시인이다. 아니 형진이가 시다. 형진이는 농사로 순박함을 되찾았다. 순박함을 얻는 것은 삶을 얻고 세상을 다 얻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