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기행2. 김병종. p350
달이 뜬다 북을 울려라
예술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예나 이제나 이것은 나의 꿈입니다.
어느덧 예술이 사람들의 가슴마다 피는 꽃의 의미를 넘어 힘이 되는 세기에까지 우리는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고 억울하게도 우리는 미처 예술이 힘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정치요, 경제였습니다. 그리하여 허다한 우리의 예술가들이 사•농•공•상의 말석에도 끼지 못하고 제대로 한 번 대접받지 못한 채 서럽게 스러져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억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잡초 무성한 무덤 속 이 나라의 예인들을 불러내 그들의 한 많은 진술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만 들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들려주어야겠다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통해 문화의 힘, 예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박수근과 양구
선한 이웃을 그리고 간 한국의 밀레
메마르고 뒤틀린 나목들 사이의 인생 행로를 숙명처럼 걸어간 한국의 밀레
쓰라린 세월의 고통과 신음까지도 화강암 질감 같은 화폭 속으로 가라앉혀서 띠뜻한 긍정과 선의의 세계를 열었던 미의 순교자였다!
박수근 미술관? 정작 양구땅에는 박수근의 스케치 하나 남아 있지 않다. 화가는 평생 고향과 서민들의 삶을 그려왔건만 정작 서민들은 그 그림을 만지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천문학적인 그림값!)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을 그려야 한다”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책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고서는 “하나님, 저도 이런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그다.
“수근이는 낭구(나무)에 지름(기름) 먹인 분판에 그림을 그렸어. 조이(종이)가 원체 귀하던 때였으니깨.”
박수근은 미술학교 문앞에도 가지 않았건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분판에 그림을 그릴 때만이 아니라 가난은 평생 그의 벗이었다.
그가 그린 앙상하게 메마르고 뒤틀린 ‘나목’들이야말로 이런 쓰라린 세월의 내면 풍경화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원망과 갈등, 미움과 탄식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긍정과 선의의 세계를 이룬 것이다.
가장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화가의 한 사람이다.
#고유섭과 인천
조선의 아름다움에 바친 한 고독한 영혼
석양녁 들판에 서 있는 이름 없는 화강암, 석탑 하나에서도 우리 미술의 ‘무기교의 기교’와 ‘구수한 큰 맛’을 보고 ‘조선의 숨결’을 느꼈던 미학자. 고유섭은 우리 미학의 씨앗을 뿌리고 간 고독한 선구자였다.
펜으로 무언의 항거를 한 민족주의자
미학과 미술사 공부? “집안이 넉넉하냐. 이건 취직을 못해도 좋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 분야다.”
“우리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며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박인환과 서울
사랑은 목마를 타고 하늘로 떠나는가
선생님, 아세요? 사람은 그리움의 동물이라는 것을, 풍경의 그리움을 찾아 돌아오고 마는 존재인 것을..
그러나 어쩌랴. 서울은 돌아와 안길 그리움의 풍경을 상실한 도시다.
옛 풍경은 가라앉고 무너졌지만 서울을 떠올릴 때마다 서울의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옛 가객들, 옛 시인들의 노래와 시가 있어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김명환과 곡성
조선 명고 김명환의 고성북이 전하는 말
둥둥둥… 일체의 권위와 인습, 타성의 옷을 벗어던졌던 북의 자유인 김명환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
#김승옥과 순천
지도에도 없는 땅, 안개의 저편
내 스무살의 길목에는 김민기의 음울한 통기타와 이노우에 야스시, 오엔 겐자부로의 소설 그리고 김승옥의 [무진기행],[환상수첩]이 있다.
문체의 새로움, 감수성 혁명
#김대환과 인천
광풍의 검은 비, 흑우(黑雨)
미세각가? 쌀 한 톨에 새겨놓은 반야심경 전문은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천상병과 인사동
귀천의 노래 부르며 떠나간 새
평생 돈의 셈법에 어둡고 돈에 자유로웠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온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 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서울상대’ 출신! 명석한 바보, 위대한 바보였다!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동베를린공작단 사건 연루, 전기고문 후유증
인사동은…아직도 따스한 역사와 문화의 온기가 서려 있는 곳이지만, 천민자본의 바람은 이 문화의 거리를 슬슬 비문화의 요소로 먹어들어 오고 있다.
#황현과 구례
지리산 옛 시인의 절명시가 우네
읽던 책 덮고는 지난 역사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읽는 사람 구실 진정 어려워-‘절명시’ 중
#채만식과 군산
옛 미두장 자리에는 비가 내리고
‘분노의 항구’ 군산항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고함을 지르기보다는 오히려 판소리 사설 같은 능청스럽고 걸쭉한 해학의 진술방식을 택한다.
#김유정과 춘천
한겨울에 부른 봄의 노래, 땅의 노래
스물일곱 살에 등단하여 불과 2년여 만에 서른 편에 가까운 작품을 쓰고 스물아홉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린 김유정. 그의 작품에는 노경의 완숙함이 있다.
김유정역
#권진규와 서울
내 정 끝으로 죽음을 쪼아내리
서울은 예술가에게 척박한 땅인가.
“범인凡人에 침을, 바보엔 존경을, 천재엔 감사를…”
#배희한과 서울
숨쉬는 집 한 채의 꿈
평생 내노라해 본 적 없는 장인 배희한. 그를 유능한 건축가로 대접한 이는 거의 없다.
배희한은 조선집의 예술이다. 배 목수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중에 우리 곁에 머물다 떠난 당대 일급의 예술가였다.
“집이라는 것이 숨을 좀 쉬어야 하는 것인데…그래야 사람도 숨을 쉬는 것인데.”
기진호예(技進号藝)! 기예가 정신화 작용을 일으키며 한 단계 높아지면 예라 했던가.
가난한 목수? ‘죽은 나무 깍아 먹는 사람’한테는 늘 것이 없다?
#김용준과 서울
옛 주인 떠난 노시산방에 감나무만 홀로 남아
도쿄 미술대학 서양화가 우등 졸업?
물고기류를 그린 어해도 10폭병!
“이 사람아, 조선의 화가 오원 장승업도 모르나. 자네는 조선의 화가도 제대로 모르면서 서양미술을 공부한다고 일본에 간 것인가. 순서가 잘못됐네그려.”
[조선미술대요], [근원수필]
#이상화와 대구
#한용운과 백담사
백담사에서 심우장까지, 만해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허난설헌과 강릉
내 시린 가슴 한의 못을 빼주오
중국에까지 문명을 떨친 대시인었지만 고독과 한의 스물일곱 해를 살고 요절한 허난설헌. 그녀의 개인사는 망가져서 통한의 조선 여인사일 수 있다.
강릉의 두 여류가인,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극과 극의 삶
경포대 초당동의 고가, 허균생가? 실은 난설헌 허초희와 더 인연이 깊은 곳이다!
허균의 누이
문약한 남편? 나는 왜 이 넓은 하늘 아래 하필이면 조선땅에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 수많은 남자 중에 김성립의 안내가 되었는가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조금앵과 남원
여성국극 최후의 명인
우리는 왜 중국의 진쥐(경극)나 일본의 가부키 노배우들이 그네들의 국민에게 받는 대접을 조금앵 같은 이에게 돌려줄 수 없는 것인지. 왜 그들이 쓸쓸히 회한의 노년을 서성이게 하는 것인지…예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야만의 사회임을 사람들은 아는가.
#이삼만과 전주
이 먹 갈아 바람과 물처럼 쓸 수만 있다면
신필이라고 불렸던 명필이었지만 평생 외롭고 쓸쓸한 생애를 살아야 했던 사람.
병중에도 열 개의 벼루를 맞창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뭉그러뜨릴 만큼 글씨에 진력하여 조선시대 서예의 한 길을 열었던 유수체의 도인이었다.
옛날 나의 아버지는 봄되면 ‘입춘방’괴 함께 ‘이삼만’ 글씨 석자를 써서 문지방 아래 거꾸로 붙이곤 하셨다.(뱀이 못 온다? 글씨를 거꾸로 붙여야 옳게 읽기 때문!)
미당은 ‘이삼만이라는 신’에서 “뱀들이 기둥 밑둥을 기어올라서다가도 그 이상 더 넘어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삼만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그 붓 기운을 뱀들도 잊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추사체? 제주 유배에서 완성! 혼의 글씨를 쓰려면 일단 필묵만이 벗이 될 만큼 삶이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월화와 서울
사랑아, 영화야, 나는 통곡한다
섬광처럼 솟구쳤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전설의 여배우
#바우덕이와 안성
#석모도
#금강산과 예인들
겸재가 있어 진경산수화가 나왔는가, 금강산이 있어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그려졌난가.
광기의 화가 최북
최익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