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 도덕경
도와 도덕이 없어진 춘추시대 중반기, 참혹하였던 전란의 시대 산물인 ‘노자 도덕경‘은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절대조건이고 행복의 조건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도가사상의 원조다. 한권의 책으로 남긴 유가와 함께 동양철학사상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사상적 근원이자 위대한 글쓰기의 본보기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정말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유명하다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뿐 진리가 아니다. 이름을 내려하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출세하여 이름을 내려은 마음이 사회악의 중대한 근본중 하나다. 어릴적부터 입신양명(立身揚名) 가르침아래 추구하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경각심으로 가르침이 시작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크게 이롭게 하면서 차별함이 없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러 산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이른 것이다. 인간의 최고악은 차별, 편 가르기, 지역차별, 인종차별, 능력차별에서 비롯된다. 다양성은 상호존중의 결과다. 획일적 가치관에서 경쟁과 차별은 필연적이다. 다름을 구별하지 않는 물은 ‘무차별지‘의 본보기다. 무욕, 무심의 자연의 모습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
영토가 작고 백성이 적은 소국이 이상적 국가, 왕권과 국력 강화가 필요세다. 세금이 적고 소규모 군대를 유지할 수 밖에 없어 전쟁하기 어렵다. 통치해야 할 일이 적어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있다. 큰 나라는 왕권강화가 필요하고, 세금, 권력 통치가 필수적이다. 300여개의 영방국가의 통일독일은 유럽의 공포이자 두 차례 세계대전의 재앙을 가져왔다. ‘효율성‘을 향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세계화는 행복보단 파괴적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의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에 예견된 고통스런 미래의 모습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무위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행하고 사람이 따르는 것이다. 인위(humanwork)란 진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일하는 것이다. 도덕이 실종된 현실정치와 전쟁을, 국법과 도덕규범들이 바로 인위의 결과다. 진리대로 하면 우기거나 억지 쓰는 일없고 명령, 강제없이, 시끄럽고 싸우지 않고 자연처럼 일하게 된다. 자연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조용하게 일을 잘하고 있다. 정해진 이치에서 한 치고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랬다 저랬다 멋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도를 따르며 일한다. 다만 인간만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멋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삶 – 법정 스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휠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만족할 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불안하고
늘 갈등 상태에서 만족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세상이란 말과 사회란 말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살고 있는 개개인이
구체적인 사회이고 현실이다.
우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혈연이든 혈연이 아니든,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이다.
“노자 도덕경 |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대한 6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