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명제이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이성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능은 야성이다. 인간의 행동의 결정하는 정신적 에너지이자 생명의 힘을 일컫는 ‘야성적 충동‘을 통해 경제사를 재조명하며 거시경제학의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다.
경제인간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적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면 항상 경제학적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하는 노력들이 활발히 진행된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순수경제학의 근본적 자기모순은 이러한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부의 기원, 넛지 등 최근의 모든 경제관련 서적에서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결코 완벽한 합리적 ‘경제인간’이 아니다.
야성적 본능
‘사람들은 여전히 공정성에 민감하고, 부패의 유혹에 취약하고, 타인의 악행에 분노하고,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혼동하며, 경제적 추론보다 이야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란 표현은 이성을 지배하는 야성적 본능의 핵심 요인들을 한마디로 압축요약한다. 결코 확률과 분석을 통한 이성적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야성에 의한 이성적 판단을 통해 행동한다.
과거 많은 경제적 사건들은 언제나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는 인간적 본성에서 기인했다.
현실경제학 모델
인간의 현실경제는 경제적 동기, 비경제적 동기와 합리적,비합리적 반응을 두축으로 하는 네가지 박스로 나뉘어진 표로 표현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답은 순수경제학의 영역인 경제적 동기, 합리적 반응의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빈 박스에 있다. 경제학의 한계를 명확히 볼 수 있다. 순수경제학 영역밖에 답이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
합리적 ‘경제인간’을 가정으로 하고 있는 시장자유주의와 현실경제의 차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야성적 충동에 의한 경제활동은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야성을 적절히 조절하여 이성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 중재자가 바로 국가이다. 올바른 경제정책을 수립하려면 바로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야성적 충동을 사고와 정책에 충실히 반영할 때 오늘날 경제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자 핵심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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