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쾌도난마(快刀亂麻)
뒤얽힌 실뭉치를 한올한올 풀려하지 말고 싹둑 잘라버리듯이 어지러운 일을 시원스럽게 처리한다는 고사성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가 한국경제의 얽힌 실뭉치를 싹뚝 잘라 시원스럽게 파헤져주는 이야기에 절로 귀가 솔깃해진다. 오히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듣는 편이 듣기도 수월하다. 좌담을 책으로 옮겨 놓았지만 말과 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시원스런 말글이다.
자유주의의 맹신
지금은 자유주의 전성기이다. 좌파,우파,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주창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부지불식간에 ‘자유 민주주의’란게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엄연한 모순이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1인1표’와 ‘1원1표(dollar voting)‘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반민주시대의 깊은 상처로 인해 생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혼동인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다. 성장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효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성장,저투자,고용불안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거꾸로 간다. 돈놀이 판에선 돈이 최고다. 경제개혁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주주 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 실현이 최우선 과제이고, 경영자는 장기적 성장보단 단기적 주주이익에 급급하게 되고, 결국 자본종속으로 귀결된다. 주인의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단 얘기다. 차관은 빚일뿐이지만 자본에 의해 기업의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교훈
상처 깊은 과거로 인해 단절되어 버린 과거를 냉철하게 되짚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거울을 삼아 마땅하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독재와 억압속에서도 기적같은 성장을 이루어낸 비결은 ‘비자유주의‘에 있단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함을 이야기 해준다.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굳굳하게 버틸 수 있었기에 성장이 가능했단 얘기다. 허나 민주화와 함께 자유주의로 전환에서 오히려 자본에 종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란 단순히 역사적 기록만으론 불가하다. 올바른 역사적 시각이 함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주는 대화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손
모든 화살이 눈에 보이는 재벌로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경계해야할 대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랄 수 있는 자본이다. 실체가 모호하기에 교묘히 파고들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투명인간이 제일 먼저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자본은 재벌,기업,노조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다. 자본을 위한 자본이다. 자유주의를 통해 합리적 이기심을 발현하고 있는 실세임이 너무도 자명해서 잊고 사는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상생의 비제로섬 게임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장기적이냐 단기적이냐하는 시간적 기준도 있겠지만, 비제로섬(non-zerosum) vs 제로섬 게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투기는 얻는자가 있으면 잃는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에 반해 투자는 윈윈이 가능한 비제로섬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서로 협력을 바탕으로 이익이 되는 상황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투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기가 아닌 투자다. 투기를 위한 정책이 아닌 투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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