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1 “빌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마세요
저 아이는 그렇게 하면 더 안 좋아 질 겁니다. 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포기한 문제아였다는 빌 케이츠의 부모에게 빌을 지켜본 상담선생님이 해준 이 말이 바로 세계 제일의 부자인 아들을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특기를 살려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흔히 부모의 바램을 아이의 꿈으로 착각하고 ‘강요된 꿈’을 좇게 만들지 말란 이야기이다.
사례2 “오히려 잘 되었다
너는 청각장애가 있어 학교생활이 잘 맞지 않아. 이제부터 엄마랑 집에서 공부하도록 하자.”
게으로다고 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에디슨에게 해준 어머니의 격려의 말이다. 아마 보통의 어머니라면 난리가 났을 법한 일인데 오히려 아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니 위대한 인물이 절로 나오는 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위와 같은 경우에 보통(?)의 부모라면 어떻게 했을까? 큰 실망과 걱정으로 아이를 닥달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면 잔소리는 아이를 위한다는 핑게속에 부모의 감정과 입장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그런 잔소리는 결국 부모와 아이 사이의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올려주기만 한다.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이다
잔소리가 부모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위의 두가지 사례와 같은 ‘유익한 잔소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사랑과 관심의 가장 좋은 표현방법이 ‘믿음’이란 걸 잊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짜증스럽고 지겨운 잔소리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누구나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잔소리같지 않은 잔소리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잔소리 기술‘이 있다. 다만 그 쉬운 운전기술도 배우고 연습하여 면허증을 따는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배우고 연습하는 부모들도 더욱 많아져야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잔소리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다이아나 루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