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다시 쓰다. 윤구병
#있음과 없음 vs 존재와 무?
왜 존재와 무가 아니고 있음과 없음이냐?
“지난 한 달 동안 존재나 무라는 말 몇 번이나 써 보셨어요?”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라는 말을 안 쓰고 단 오 분이라도 말을 이어갈 수 있습니까?”
#참과 거짓 vs 진리와 허위
“진리가 무엇이냐, 허위가 무엇이냐 물을 때 쉽게 대답이 나오던가요?”
“우리가 묻고 대답할 때 ‘참’과 ‘거짓’을 말로 가리는데 어떤 때 참말이라고 하고 어떤 때 거짓말이라고 하지요?”
“그야 쉽죠.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 (무엇)인 것을 이라고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게 참말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 인 것을 아니라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렇습니다. 바른 말로 묻지 않으면 바로 대꾸할 수 없습니다. 세 살배기 어린애도 쓰고, 까막눈인 시골 어르신도 알아 듣는 우리 말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참과 거짓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좋음과 나쁨 vs 선과 악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선이란 무엇이냐, 악이란 무엇이냐고 물을 때 말문이 막히지 않던가요?”
“힘 있는 사람들이 힘든 나라에서 들여온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누구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쉬운 우리 말로 다시 묻겠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좋다고 하고 어떤 때 나쁘다고 하지요?”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게 좋은 거고, 없을 것이 있거나, 있을 것이 없으면 나쁜 게 아닌가요?”
#참 세상과 좋은 앞날
이렇게 참과 거짓이 쉽게 가려지고, 좋음과 나쁨이 뚜렷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참 세상’과 ‘좋은 앞날’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 거짓 세상을 바꾸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억압’ ‘착취’ ‘탐욕’ ‘전쟁’ ‘증오’ ‘이기심’은 모두 있는 놈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몹쓸 것, 몹쓸 짓, 없을 것들이고, 없애야 할 것들입니다.
이른바 ‘지배계급’은 ‘언어의 폭력’을 ‘제도화’해서 ‘이데올로기적인 국가 기구’를 만들어 내는데, 이 일에 부림을 받는 이들은 ‘인문학’을 앞세우는 ‘지식인’들이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식민지 지식인’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이들은 열에 아홉이 ‘폭력적인 국가 기구’의 앞잡이들입니다. 말로는 ‘민주화’를 부르짖어도, 이이들이 입 밖에 내는 말들을 들으면 ‘아니올시다’.
#말글
그리스 ‘철학’에서 가장 앞세우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장터에서 주고받는 말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렸습니다.
‘철학’이 대학 울타리 안에 갇히면서 말이 어려워지기는 했으나 그래도….모두 제 나라 말로 글을 씁니다.
글보다는 말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우리 말이 우리 글에 앞섭니다.
지구의 역사
‘생명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생명의 시간이 인공의 시간으로 바뀐 도시사회
#1 좋음과 나쁨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는 세상이 나쁜 세상입니다.”
‘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생이 먼저고, 철학은 나중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사회, ‘세상살이’라 그러죠…그러면 우선 살고 보아야 하는데 제대로 살 수 있으려면, 좋은 세상에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일상생활에서는 그 좋은 머리로 이야기를 잘하는데 갑자기 쉬운 질문을 하면 얼어 붙어 가지고 온갖 어려운 낱말을 다 꾸며 내서 대답을 어렵게 합니다. 자기 확신도 없으면서.
농경공동체 지혜의 함수: 시간
제 앞가림? 여러분들 가운데 먹을 것 백 가지쯤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유목공동체 지혜의 함수: 공간
농경민 문화와 유목민 문화의 차이?
농경민한테서 부동산, 유목민한테서 처음으로 동산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도시의 형성
농경민이나 유목민의 경우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잘 조절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이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나 연장으로서 낫이나 칼, 이런 것을 벼리는 겁니다.
그런데 도시인의 경우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뒷전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도시인들 앞에 놓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관건이 됩니다.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각축하고 때로는 서로 맞서야 하는데 칼과 창이라는 것이 뭡니까? 인간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득을 해서 안되고, 세뇌를 해서 안되면 죽여야죠. 전쟁의 기원이라는 것이 다른게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길, 그것이 전쟁입니다.
불평등 거래는 장사꾼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불평등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상대편이 알아 차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거해가 안 되겠죠.
‘네 속셈이 무엇이냐?’ 네가 속으로 뭘 헤아리고 있느냐
#2 있음과 없음
” 있음과 없음이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이 세상에 모순이 있다는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이 함께 있다는 모순에서 운동이 생겨납니다.”
입만 벙긋하면 틀린다? (선불교)개구즉착!
여러분들이 죄다 우리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렸을때부터 생각을 어렵게 하는 교육만 받았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쉽게 대답할 줄을 모릅니다.
“존재와 무라? 대단히 어렵고 심오한 말인 것 같은데, 여러분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말 자주 씁니까?”
#3 ‘함’과 ‘됨’
”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미래가 없는 도시 문명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될 대로 되라’고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떨쳐 일어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 할 것이냐입니다.”
가치 판단이 사실 판단에 앞선다
화학의 가장 큰 난제? 불
생물학? 자연발생설에 대한 논박
물리학? 운동의 문제, 질적인 운동과 공간 운동. ‘
엔트로피 법칙? 무규정성이 늘어난다. 이놈 저놈이 질적으로 구별이 안 된다. 결국 등질화된다.
시골 사람들은 손이 닮아 가는데, 도시 사람들은 생각이 닮아 갑니다.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생산력이라는 건 없어요.
자유 박탈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에서 공간도 등질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시간도 등질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생명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을 죄다 없애 버리고 모두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 버린 겁니다.
우리는 생명의 시간을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치기하려는 모든 통제에 대해서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물읍시다.(질문이 답이다. 옳은 질문은 스스로 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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