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p264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옛 그림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예술품이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잠자는 아기의 고운 얼굴이나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아득한 수평선을 아무런 생각없이 오래도록.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대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자란다. 혹은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에 차 있음을 느낀다.
# 김명국의 달마상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달마상에는 색이 없다. 먹의 선, 그것은 형태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때문에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껴앉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할 수도 없었다.
흑색은 모든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다시 온갖 존재의 츨발점이 된다. 모든 색을 낳을 수 있는 생명의 원점인 것이다. 그래서 ‘달마상’에는 색이 없다.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오직 거기에 깃들었던 인간의 마음이다
먹물, 무채색이란 ‘색깔이 없다, 색깔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검정, 모든 빛이 소멸된 상태, 모든 색은 언젠가 바래고 없어진다
‘먹에 온갖 색이 들어 있다(묵유오색墨有五色)’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세상에 돌만큼 천성적으로 침묵을 좋아하는 것은 없다
“동양미의 가치 기준은 언제나 ‘살아 있다’는 말 한마디에 있다.”-조지훈
“천하에 물보다 더 연약한 것은 없지만 강하고 굳센 것을 이기는 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노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지락수 인자락산).”-공자
# 안견의 몽유도원도
멋진 풍경을 찰칵? 밋밋한 사진! 어때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사람의 눈은 최고의 성능을 가진 카메라!
산수의 참 모습은 사진기뿐만 아니라 많은 서양화가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서양의 풍경화로도 담아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장 큰 이유? 일점투시도법! 과학적 원근법은 부동의 관찰자라는 단 하나의 시선만 가졌기 때문이다.
일점투시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의 산물인 까닭에 자연의 살아 있는 모습을 따라잡는 데는 실로 많은 어려움을 드러낸다.
옛 산수화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이유? 수없이 자잘한 여백들이 경물과 경물 사이를 매개하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서양 입체파의 선구자로서 사물을 보는 자유롭고도 상상력 넘치는 시각을 이용해서 복합적인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서양 회화사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나는 진정한 입체파의 모범은 오히려 우리의 옛 산수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윤두서의 자화상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 삼간다.”-대학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는 ‘주상관매도’를 고르고 싶다.
여백의 진미!!!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서양화에 없는 여백!
여백은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신선술? “가령 제가 대낮에 하늘을 오르는 재주가 있다 한들, 그것이 세상에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 김정희의 세한도
문인화의 정수
옛 그림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세한도의 잘못된 부분?
추사는 세한도에 집을 그리지 않았다. 그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을 그렸던 것이다. 그림이 지나치게 사실적이 되면 집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옛 그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옮겨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우상에서 좌하로!!!)
#김시의 동자견려도
#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씨름,공책만한 화첩에 스물두 명이나,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 제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다.
무동, 원형 구도 자체로 둥글게 둥글게 넘어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해냈다.
#이인송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서양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의 원형이 인간의 신체였던 반면 우리 옛 그림에서 가장 존중하는 분야는 산수화였고, 그중에서도 중시되는 소재는 산, 물, 바위, 나무였다. 특히 바위는 옛 분들이 가장 즐겨 그렸던 소재로 괴석도처럼 따로 그려진 예가 많다.
돌은 억겹의 긴 세월동안 형성된 것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그 무엇이다. 겉보기에 거칠고 추할지 모르나 그 외양 안쪽 깊은 곳에 사람들조차 본받기 어렵다고 탄복해 마지않는 굳센 정신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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