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는 과거의 상상이고 미래는 바로 현재의 상상이다.
아이들의 상상력만큼 자유롭게 생각의 가장자리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우리들의 미래인 이유는 어른들이 갖지못한 상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라나면서 그 상상력을 얼마나 가꾸고 키워나가냐에 따라 그 미래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학교를 통한 교육을 시작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거치는 ‘사회화’과정은 상상보다는 현실의 지루함에 길들여지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Very Good is Bad! Safe is Risky!
세계적 마케팅의 구루인 세스 고딘이 말하는 결코 ‘어렵지 않은’ 보라빛 소(Purple Cow)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길들이기 학습의 효과일 것이다. 극단의 가장자리보다는 안정된 중심으로 향하려는 ‘학습효과’는 상상보다는 현재의 ‘훌륭함’에 만족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만족이 바로 지루함으로 이어져 오늘의 캐시 카우(Cach Cow)를 죽게 만든다는 얘기다.
You must be extreme. You must live on the edge.
과도한 현실적 목표나 욕심은 극단의 가장자리에서 안정된 중심으로 생각을 끌어당기는 ‘타협’을 만들어낸다. 타협으로 이끄는 생각의 울타리를 걷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친다면 그 울타리는 쉽게 걷혀질 것이다. 바로 미래를 열어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의 나래를 잘 보살펴 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책무중 하나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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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소가 온다 | 상상(想像), 가장자리를 넘어라!”에 대한 3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