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깨우는 쇼펜하우어의 말

쇼펜하우어가 이토록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 책은 거의 25년 동안이나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불굴의 정신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속편을 꾸준히 집필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1843년에 속편 750부를 원고료 없이 출판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팔리지 않았다. 쇼펜하우어에게 행복의 여신이 미소를 짓기 시작한 것은 그가 사상을 갈고 닦은 뒤 1851년에 <인생의 예지를 위한 잠언>을 완성했을 때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생의 예지를 위한 잠언>은 쇼펜하우어의 인격을 온전히 담은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가 인간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네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얻지 않으면 안 된다.-<파우스트>
이 구절을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이미 사상가들이 발견한 것을 그들과는 별도로, 또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에 앞서 자기자신의 힘으로 발견하는 일은 가치와 효용이 크다는 뜻이다.
아주 적은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를 확실히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신경 쓰고 있는 문제는 이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들은 오직 오늘이라는 날과 눈앞의 개인적인 장래만을 염두에 둔 채 들뜬 생활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은 중대한 생존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든지, 아니면 인간의 형이상학 체계인 종교로 매듭 짓고 그것에 만족해버린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사색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아주 막연한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맞게 된다.
만일 이 세상에 정말로 사색하는 존재가 살고 있다면, 수많은 소음이 이처럼 무제한으로 날뛰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성숙, 즉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완전한 상태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추상적인 개념이 직관적 파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각 개인이 품고 있는 개념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직관의 기초에 근거하게 되며, 이로 인해 그 개념은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이러한 인식의 성숙은 순전히 경험의 작업이며, 시간의 작업이다.
이렇듯 삶은 마치 시계추처럼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간다.
사람이 가지는 괴로움이나 기쁨은 외부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소질에 의해 정해진다.
#사색은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책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사색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사상과 인간은 직결되는 것으로, 외적 동기와 내적 기분 및 긴장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어떤 대상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
사색은 임의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진리를 찾는 데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빈약한 지성이나 거짓된 가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다.
사색가와 철학자의 차이
사색가는 사물에 대해 말할 때도 직접 파악한 나름의 결과만을 언급한다. 객관적으로 파악한 것 이외에는 절대로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이에 반해 여러 사람의 말과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른 사람이 내놓은 반론을 보고하는 것이 철학자의 일이다.
#중요한 책은 반드시 두 번 읽어야 한다
인류의 기억을 영속시키는 것은 오직 도서관뿐이다.
사실 전문 분야에만 매달리는 학자는 공장 노동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어떤 특정 기구나 기계에 사용되는 공구를 만드는 일에만 일생을 바치는 것이다…한층 높은 의미의 학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박식함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철학자는 머릿속에 동서고금의 지식을 개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최고의 정신을 소유한 사람은 절대로 전문 분야의 학자가 아니다.
책을 산다는 것은 곧 시간을 사들인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요한 책은 반드시 연속해서 두 번은 읽어야 한다. 그래야 책 속에 담긴 문제의 연관성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고,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만큼 앞부분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읽을 때는 같은 내용이라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역사가 있다. 하나는 정치사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예술사다. 전자는 의지의 역사이고, 후자는 지성의 역사다. 정치사는 대부분 음모, 불안, 곤궁, 사기, 살인 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불안감을 줄 뿐 아니라 공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에 반해 문학예술사는 청량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 문학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사다…문학예술사의 기본이며,..다른 문학예술 분야의 주의와 주장을 근본적으로 지도한다. 또한 철학자는 세계를 지배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가장 강력한 현세적인 권력이다.
#재난의 원인은 사치
사치는 그것을 좇는 사람들을 절대적인 행복으로 이끌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병적으로 더욱 변덕스럽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의 비참함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치를 줄이든가 사치를 아예 버리는 것이다.
빈곤과 노예는 같은 사태의 두 가지 형식에 불과하다. 아니, 명칭만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태의 본질은 인간의 힘이 자기자신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남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 있다.
농민들은 자신의 힘과 토지를 곡물, 감자, 목축에 사용하는 대신 포도, 생사, 담배, 아스파라거스 등을 재배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또한 설탕, 커피, 차를 수입하기 위해 조선업이나 항해에 종사하는 요원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쓸데없는 물품의 생산은 몇백만 명의 흑인 노예를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들이 조국에서 강제로 납치당하는 이유도 그들의 땀과 노동으로 향락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서양의 현자!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