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이성과 광기의 차이
‘서양’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
서양이 저지른 두 가지 범죄? 노예무역과 식민지 정복
정신분열증에 걸린 서양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강력하게 미워해야 한다”
지글러식으로 말하자면,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마저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무서운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을 사는 인간들 중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지 않는 두 부류, 즉 모욕을 주는 자와 모욕을 달하는 자가 나란히 옆에 붙어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21세기에 일어나는 일들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세기 전부터 서양은 자기네 편의에 맞게 ‘인류애’라는 말을 독점해왔다…그는 서양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전제군주라고 말한다…서양의 오만함은 스스로를 눈멀게 한다…군비 축소, 인권, 핵무기 확산 방지,..서양은 끊임없이 이중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반구는 본능적으로 불신으로 답한다. 입으로만 가치를 떠들어대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서양을 정신분열증 환자 대하듯 한다.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강력하게 미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장에서 한 단어가 특별히 중요하다. 바로 ‘것‘이라는 단어다…정작 우리가 증오해야 할 것은 정신적 또는 물질적인 억압 ‘구조’가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 서양이라는 말의 가장 대중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열린 페르낭 브로델의 강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서양의 정의를 본질적으로 생산 방식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그 답이다.
민족의 해방은 식민지 이전에 존재했던 역사 공동체를 재발견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나세르는 주장했다.
보상을 통한 정의 구현이라고? 참회하라고? 기억을 인정하라고?
서로 상반되는 기억들 사이에 우애적인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메리 로빈슨의 희망은 그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서로 반목하는 세계관들을 점진적으로 통합해보자는 코피 아난의 유토피아도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강제로 부과되는 민영화는 이들의 면화 농장을 초토화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