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다.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에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아>를 소멸시켜 <비아>에 공헌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 되어 역사에 그 흔적만 남기는데, 이는 고금의 역사에서 바뀔 수 없는 원칙이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일찍이 이에 유의한 적이 있었으나 해외에 나온 뒤부터 한 권의 책조차 사기가 심히 어려운 형편이어서, 20년을 두고 <삼국유사>를 좀 보았으면 하였으나 그 또한 얻을 수가 없었다.
아, 슬프다. 조선과 중국, 일본 등 동양문헌에 대한 큰 도서관이 없으면 조선사를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다…조선의 보장들을 남김없이 다 가져가서 어둠 속에 썩히고 있음은 통탄스럽고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이 사라진 사료는 고조선과 신선도에 관한 것이다. 한민족이 천자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도 집중적으로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유•불교와 관련된 것이나 한민족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것뿐이다. 이런 역사 파괴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화된 것은 12세기 초반부터다. 사대파 김부식이 자주파 묘청을 제압하고 <삼국사기> 체제를 확립한 것이 ‘고대사 청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김부식 #삼국사기 #묘청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신라가 고구려•백제 양국을 시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불태웠던 것이다. #당태종

신라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고 중국 대륙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백제란 나라의 활동 범위가 얼마나 넓었으며 한민족의 해상 활동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중국 사관들은 국치를 숨기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춘추필법
지난 1천 연간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역사가는 신채호였다. ‘1천 년간’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난 1천 년간 역사학계가 숨기고 감춘 진실을 그가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이다. 평생 역사 연구와 독립운동을 하며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살다가, 뤼순형무소에서 뇌출혈로 초라하게 사망했지만, 그의 외침은 지난 1천 년간 이 땅에서 나온 가장 인상적인 외침이었다. #김종성

가난은 역사학자 산채호를 두고두고 괴롭힌 원흉이었다. 일본제국주의보다야 못했겠지만 가난도 그런 원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