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스케드 피어슨
“난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경험하고도 배우지 못한다.”
학교는 교도소만도 못한 곳이었다!
기억하기 힘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두들겨 패거나 고문하지 않는다…교도소에서는 신체를 고문할지는 모르지만 뇌를 고문하지는 않는다.

선행상. 나는 심사숙고 끝에 가장 태도가 나쁜 소년 소녀에게 선행상을 주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 학생들의 수상 이후 경력을 기록하고 그것을 모범 학생들의 경력과 비교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좋은 행동에 대한 학교의 기준이 학교 밖에서도 유효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 제안은 거절당했다.
1882년 9월이었다. 스물여섯의 쇼는…토지국유화와 단일토지세를 설파하고 있는 헨리 조지를 발견했다. 이 미국인 능변가는…모르긴 몰라도 쇼의 가슴에도 확실히 불을 질렀다….<자본론>은 쇼를 사회주의자로 개종시키고, 혁명 작가이자 정치 선동가로 거듭나게 했으며, 그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에너지의 방향을 바꿔놓고,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게 종교를 부여하고, (그의 주장대로) 그를 그답게 만들었다. #헨리조지 #마르크스 #책이사람을만든다
“주급 30실링이면 어떤 혁명도 살 수 있다”
이 네 젊은이는 “젊은 러시아 여성이 읽어주는 프랑스어판 <자본론>을 듣다가 서로 논쟁에 돌입하곤 했던” 마르크스 독서 모임에서 만났고 이후 햄프스테드 역사 모임도 함께 했다. #페이비언협회 #시드니웹
“…저는 그저 강도와 지주와 주주, 이 셋이 공동체에 입히는 해가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피의 일요일. 그때까지만 해도 쇼는 “너희는 다수고, 그들은 소수다”라는 셸리의 시구를 믿었다. 하지만 쇼가 그 시구에 현혹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쇼는 사회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말이 안 된다고 확신했다.
페이비언 스타일. 나는 사상가이지 투사가 아니다.
무슨 마가 끼었는지, 개혁가들은 늘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
영국박물과 독서실. 참으로 멋진 공산주의적 시설. 쇼는 런던 생활 초반 9년 동안 상당 시간을 영국박물관 독서실에서 보냈다. 페이비언 집행위원회가 그의 대학이었다면, 영국박물관 독서실은 그의 공부방이자 서재였다. #도서관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죽을 만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면 무조건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그는 위대한 인물들치고 살던 나라를 벗어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베토벤, 렘브란트, 예수, 부다, 마호메트가 그랬다.
“여행하면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곳이 있나요?”
“아니. 거기가 거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