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필자는 평소 역사학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라고 생각해왔다. 역사라는 거울은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역사학은 미래학이 아니라 과거학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는 은연중에 현실에 대한 발언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그 지난한 독재 시대를 지나는 동안 현실에 대한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필자는 역사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와중에 현실에 대한 발언을 외면하는 역사학계 일부의 이런 분위기의 진정한 이유가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학계가 갖고 있는 ‘원죄’에 있었다. 그 원죄란 바로 일제 시대 일부 사학자들의 행태였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회 과목이 바로 국사이다. 교사들은 그 이유로 국사가 암기 과목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응 지향하는 실증 사학적 교과서이다 보니 학생들이 화학 공식 외우듯이 사실을 외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혼이 죽은 실증 사학의 원칙에 따라 역사를 서술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현행 교과서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관…더 이상 “사실 그대로의 역사” 따위를 역사학의 본질이라고 믿는 학자들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에 대한 과감한 해석도 그 한 조류이다.
#역사 드라마가 갖춰야 할 두 가지 필수 요건
최소한 사관과 사료 해석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작가의 상상력은 적어도 유해한 것은 되지 않을 것이다…일반인들은 드라마 속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혼동할 우려가 높고, 자칫하면 왜곡된 역사를 진실인 양 인식하고 유포할 가능성도 크다…임오군란으로 빼앗긴 정권을 되찾기 위해 청나라를 끌어들인 결과 일본군까지 주둔하게 함으로써 조선을 멸망에 이루게 한 명성황후를 마치 구국의 화신인 양 그려대는 <명성황후>란 역사 드라마가 또다시 공영 방송을 통해 방영되는 현실은 더욱 이런 생각을 깊게 한다.세조의 즉위 결과 역사의 극복 대상인 훈구파가 탄생한 것이라면 세조의 집권은역사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단종과 세조에 대한 국사 교과서의 이런 상반된 서술은 역사 사실을 해석하는데 일관된 가치 평가, 즉 사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주는 한 사례이다.

#이덕일의 한국통사
이 나라 학생들은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여긴다. 한마디로 비극이다. 국사가 암기과목이 된 이유는 서론과 본론, 결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론은 마치 대한민국의 자주적인 서술인 것처럼 표방했지만 본론과 결론에 가면 아직도 중화 사대주의와 친일 식민사학 관점이 수두룩하다. 앞뒤가 다르니 따지지 말고 외워야 점수를 딸 수 있다.
광복 직후 식민사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분단과 6.25를 거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역사학도 제거되었다. 그 빈 공간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신석호가 장악해 식민사관을 제외한 모든 역사관을 강단과 제도권에서 말살하고 ‘’식민사관’’이라는 이름표를 ‘실증사관’으로 바꾸어 달고는 남한 역사학계의 완전히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