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읽다. 서현숙.
갇힌 소년이 만날 수 있는 세계라고는 소년원이 전부였다…책을 펴면 낯선 세계로 달려갈 수 있고,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소년은 자신의 일상 너머의 것을 조금은 욕망할 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변신과 욕망 사이에 책이 있었다. 나는 그 위대한 책들을 소년의 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대단할 것 없는 몇 번의 납작한 건넴이었지만, 소년은 나에게 바윗덩이만큼 육중한 신뢰를 보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사람’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는 만남, 책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만남, 이런 만남의 힘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단단하다는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어…, 벌써… 다… 읽었어?…”
첫 수업은 이렇게 실패했다.
오늘도 소년들이 읽는 일에 초능력을 발휘한다면 나의 수업은 길을 잃을 것 같다. 각자 묵독하는 방법 대신 한 쪽씩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기로 했다.
“선생님, 이 소설 엄청 기발하네요.”
읽기에 익숙하지 않고 능숙하지 않았을 뿐이다….당분간 우리는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되겠구나.
“작가는 이런 얘기를 왜 썼을까?”
“사람에게 문화가 왜 필요할까?”
“사람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면…”
그 시들은 네가 살아가게 되 무수한 시간 어디쯤에서 한 번쯤은 살아나겠지. 네 입에서 살아날 시가 너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너의 사랑도 더 깊게 해주고, 삶의 고단함을 매만져주면 좋겠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주체가 될 때 즐겁다. 구경꾼 노릇은 언제나 재미없다…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구경꾼이 아닌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짜릿함을 선물하고 싶다.
최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다.
저자는 처음 만나는 사이일지라도 ‘나의 책’을 읽은 독자와의 대화에서만 존재하는 내밀한 즐거움을 알고 있을 듯하다…이런 비밀 공유는 친밀한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인데, 독자와 저자는 단 한 번의 만남에 이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어른의 역할은 무엇일까. 세상과 삶의 이야기를 어린 영혼들에게 들혀주는 것도 어른의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독서동아리는 의무와 지도로 성사되는 게 아니고 재미로 성사되는 일이라고요.
독서는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읽는 행위다.
선생님, 일주일 중에 국어시간이 제일 즐겁습니다. 일주일 동안 국어시간만 기다립니다. 국어시간 말고는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어요.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이 많은지 몰랐어요.
서당의 훈장은 학생 수가 적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어울린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고 성실하게 배워서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울린다.
일이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들이 만든 한 줄 명언이다…내 앞의 소년에게 일은 그저 힘든 노동일 뿐이다…제법 살아본 자,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의 목소리 같다.
아, 삶의 신산함을 이미 알아버린 소년이여.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겪은 삶의 어느 장면과 통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힘이 있네요. 새로운 발견. 새로운 배움.”
“그러게요.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책을 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생각할수록 다 이어져 있다.나도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소년이 이런 삶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이 사회와 사회의 어른들이 소년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욕망이 가는 길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교정•교화가 아닐까. 소년이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좋은 삶을 욕망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글은 삶을 갈망하고, 삶은 글로 빛난다. 글을 읽고 가르치는 자의 가장 큰 소망은 배우는 이의 삶을 살피며 그 삶이 글을 만나게 하여 글과 삶이 서로 피어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글과 삶이 만나는 행복한 국어수업시간 이야기.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삶을 꿈꾸게 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책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국어수업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수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