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을수록 이상한, 어떤 더 이상한 미작분학 이야기가 있을까? 호기심 뒤의 놀라움까지 전해주는 수학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펼쳐집니다.

“모든 예술가의 목표는 삶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고정하는 것 말이다.”
작가 버지니이 울프가 주목한 바에 따르면 “동물과 식물이 정확한 때에 맞추어 꽃처럼 피고 지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똑같은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시간에 따라 기이하게 작동한다.”
호기심 가득한 젊은 뉴턴은 더 깊이 조사했다.
중력은 달까지 닿을까?그렇다면 달은 어떻게 움직일까? 자, 그것이 바로 미적분학이다.

대단히 짧은 순간을 상상해 보자.
이론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즉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론은 성장하는 것이다…단지 자라나던 새싹에 빛이 비쳐 그 모습을 우리가 처음으로 목격했을 뿐이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기에 수학의 언어는 투박하고 부자연스럽다.
하버드 대학교 수학자 머주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분 기호를 ‘가장 좋아하는 수학 기호 중 하나’로 꼽았다. “시각적으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목록으로 정리…연금술의 사기를 금방 간파했다…라이프니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우선 용어를 완전히 익혀라.
그 수업은 ‘부차적이고 파격적이었으며 수학과 시를 동시에’ 가르치기도 했다. 수 업 이름은 ‘기하학과 창의력'”점선의 길이가 몇이야?”
“7인치. 3 더하기 4 아냐.”
“좋아, 이건?”
“7….”
“좋아, 그럼 계단을 무한히 많이 만들면 어떻게 돼?”
나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 5가 돼지. 자, 그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완벽한 수학자리고 할 수 없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는 “그림 없이 수학을 배우는 건 범죄이자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라고 말했다.
아주 온순한 목표라 해도 AI가 외골수처럼 그 목표만 추구하는 경우에 무한대로 향하는 그래프처럼 끔찍한 파괴를 일으킬 수 있다.
여러분의 생존에 무관심한 AI기술은 개발하지 말라!
“AI는 여러분을 증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지도 않는다. AI가 본 여러분은 다른 용도로 바꿔 쓸 수 있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AI에 혁신이 일어났다기보다는 전산 통계학적 발전이 있었다고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사실 AI가 고슴도치 수준에 도달하혀면 여전히 멀었다. 아직 벌레도 능가하지 못했다.”
‘개들도 미적분학을 이해하는가?’를 책 제목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출판사는 그를 만류했는데 ‘미적분학’이라는 단어가 독자에게 겁을 줄 수 있단 이유에서였다. 재미있는 얘기다. 나도 출판사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
자연은 미적분학을 이해하고 있다.
여러분은 교실에서 수학 공책에 기호를 빼곡하게 적어 두고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 채 암기만 하는 학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수학 숙제는 외국어로 시를 읽는 것과 같아서 ‘왜’ 그렇게 되는지 신경 쓰는 것보다 ‘어떻게’ 계산하는지가 중요하다.
20세기 수학자 블라디미르 아르놀드는 라이프니츠가 만든 미적분학을 “미작분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미적분학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적절한 형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가우스는 미적분학의 심오한 가치를 알았다. “누구든지 미적분학에 숙련된다면 천재적 영감 없이는 건드릴 수 없는 문제들도 기계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칼큘무스Calculemus씨, 계산만 하면 됩니다.’
미적분학은 애초에 자동적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되었다…라이프니츠의 꿈속에서는 모든 게 미적분학이었다…수 세기 전에 라이프니츠는 컴퓨터 시대를 향하여 전력 질주를 했다…
“역사가 다르게 흘렀다면 라이프니츠는 현대 컴퓨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 오이 조각의 넓이는 얼마나 될까요?”
중국 수학의 토대…<구장산술>…유휘는 192각형을 만들었다. 5세기 무렵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조충지가 더 깊이 파고들어 3072각형을 만들어 냈는데,…그가 구한 원의 둘레는 3.1415926배였다.
고대 수학자들은 원을 무한히 작은 조각으로 나누었다. 더 정확한 값을 알기 위해서였다. 돌이켜 보면 그들의 노력이 어디로 향했는지 깨닫게 된다. 바로 적분의 시작이었다.역사를 이해하는 이해한다는 건 미적분 계산을 무수히 많이 하는 일이다.
어떤 사건의 원인은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비록 톨스토이는 그 틈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알았다.
그렇다. 적분이었다.톨스토이의 적분은 학문으로는 실패했지만 비유로서는 성공한 것 같다…역사는 그 당시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총합이다…모든 것을 아우르는 적분 속에서 각 무한소는 동일한 중요도로 다뤄져야 한다는 진실 말이다.
아녜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모순으로 보지 않았다. 마초티의 말처럼 “아녜시에게는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었다.” 우리 세대는 이성과 신앙이 충돌한다고 보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적분으로 금방 유명해졌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답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는 당시의 교육 철학은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말했다…정통적인 하나의 방법보다는 여러 개의 꼼수가 더 낫다고 했다.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