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송재소. 315쪽
옛 시인들을 만나 인생을 논하다
무릇 글이란 책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머릿속에 쌓인 것이 넘쳐나 쓰고 싶을 때 써야만 제대로 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은 쉽게 써야 한다…글이란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씌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생경한 개념어나 관념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현학적으로 쓰지 않고서도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서술할 수 있다면 그런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 아니겠는가.
#떠도는 외로운 구름-최치원
가을밤 비는 내리고
바람 부는 가을엔 애써 시나 지을밖에
내 마음 알아줄 이, 세상 길에 드물다네
창밖에 내리는 밤비에 젖어
등불 앞, 마음은 만리를 달린다오
영원한 이방인이여고운 선생님!
이 세상을 떠난 지 천년도 넘은 선생을 이렇게 부르며 선생의 문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맑은 영혼을 노래하는 혁명가-정지상
묘청의 난에 참여한 지식인.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서경전역을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의 군대가 반적을 친 전역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의 관찰이다. 그 실상은 이 전역이 즉 낭•불 양가 대 유가의 전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전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전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전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승하였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시의 마귀에 홀리다-이규보
어느 면에서 우리 나라 최대의 문학가라 할 만한 백운 이규보는 정중부가 무신난을 일으키기 2년 전에 태어나서 짧지 않는 74년 간의 생애를 무신통치 아래 살았다. 이것이 그에게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는 무신정권이라는 제약하에서도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문학의 새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다. 그로 인해 벼슬아치들의 교양쯤으로 인식되었던 시가 전문적인 문학예술의 차원으로 격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숭인
‘모나게’ 살지 말고 ‘둥글게’ 살아가라는 옥황상제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데에서 도은의 비극도 비롯되었다…그래서 평생을 갈등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이러한 갈등의 산물이다.
시골살이 궁벽하다 그 누가 말했던가
참으로 내 성정에 어울리는 걸
구름이 한가하니 몸도 따라 게으르고
산이 좋으니 눈도 더욱 밝아지네
봄바람이 나 먼저 산가에 이르렀나
산 북쪽 산 남쪽, 온갖 나무 꽃이로세
담소하며 머물테니 소매 잡지 말아주오
흥이 나면 모름지기 외상 술 사야지요
따뜻한 봄날, 꽃이 만발한 산방에서 친구와 담소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술이 모자라면 외상 술이라도 마시는 이 정경이 도은이 희구하는 세계이다.
스님이 사는 암자에
산 북쪽 산 남쪽으로 오솔길 나뉘었고
송홧가루 비 머금고 어지러이 떨어지네
도인이 우물 길어 띠집으로 돌아가자
한 줄기 푸른 연기 흰 구름 물들이네
송홧가루가 날리고 스님이 물을 길아오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모두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인데도 시의 분위기는 지극히 정적이다…이 시의 정적인 분위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중유화’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김시습
그는 생후 8개월 만에 글자를 알았고 세 살 때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세 살 때 유모가 보리방아 찧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맑은 날 천둥소리 어디서 울리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날리네
그는 직접 농사를 지어서 식량을 조달했다고 한다. 그에게 배우러 오는 젊은이가 있으면 비록 부잣집 자식일지라도 김매고 수확하는 일을 몹시 시켰기 때문에 끝까지 배우는 자가 드물었다고 한다.
산길을 가며
아이는 잠자리 잡고 영감은 울타리 손질하고
작은 시내 봄물엔 가마우지 멱을 감네
푸른 산도 끊어진 것, 갈 길이 멀어라
등나무 가지 하나 등에 걸머지고 있네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시에 묘사된 광경을 화폭에 옮기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그야말로 ‘시중유화’요 ‘유성지화’라 할 만하다.
#이황
만일 숲과 샘에서 노닐고 물고기와 새를 보는 즐거움이 없었더라면 세월을 보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도성 안에 살면서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어떻게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가 하고 매양 생각합니다.
우연히 산 뒤에서 관자, 동자 이끌고
한가로이 산 앞에 와 고반을 물어보네
이 시의 요점음 “우연히”와 “한가로이”라는 두 낱말에 있다. 우연히와 한가로이는 무작위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다…이렇게 천리가 유행하는 자연 속에서 전혀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산 뒤로부터 “한가로이” 산 앞에 이르는 것은 자연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과연 이 시는 ‘도학적 자연시’의 극치라 할 만하다.

#대담한 기개, 파격적인 상상력의 조식
칼을 찬 유학자의 광활한 정신.
남명은 늘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 칼에 다음과 같은 명을 새겼다.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의연한 기상, 칼로 자르는 듯한 결단력, 이것이 남명의 기질이다.
저 유명한 「을묘사직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의로운 후사일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자전은 문정왕후를 말하는데, 아마 왕과 대비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야유한 상소문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 지리산과 같은 기상을 지녔기에 이런 대담한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_이달
강변 십리 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꽃잎 속을 뚫고 가니 말발굽도 향기롭다
산천을 부질없이 오고간다는 말 마소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하다오
전업시인 손곡 이달? 그는 시 이외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시만 쓰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서자..벼슬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몸 붙일 곳도 없이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걸식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가난과 고생 속에서 늙었으니 이것은 실로 그의 시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곤궁했으나 썩지 않은 시가 남아 있으니 어찌 한때의 부귀로써 이 이름을 바꾸리오.
#허초희
역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난설헌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고, 둘째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고, 셋째는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었다. 이런 한의 응어리가 그녀로 하여금 아름다운 시를 짓게 한 것이다.
난설헌의 시들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하는데, 허균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작품과 암기하고 있던 작품들을 모아서 누이의 시집을 간행한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시인을 자처하지 않은 시인_박지원
푸른 까마귀?’까마귀는 검은 것’이라는 인습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까마귀의 참모습을 인식할 수 없다
#이옥
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하나로 만들 수 없고, 하나의 하늘이라도 하루도 같은 하늘이 없으며, 하나의 땅이라도 한곳도 같은 땅이 없다.(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
“나는 요즘 세상의 사람이다. 내 스스로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는다”
#정약용
위대한 시인은 개인적인 정서만 노래하지는 않는다. 자신과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의식이 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법이다.
#황현
“그대는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도깨비 나라 미친 사람들 속에 들어가 도깨비 미친 짓을 하게 하려는가”
“글 배운 사람 구실 참으로 어렵구나”
“지식인은 털이다. 소에 붙으면 쇠털이 되고 개에 붙으면 개털이 된다”고 했다는 모택동의 말이 생각난다.
https://photos.app.goo.gl/K2sJEUjVwuRpePoK6
시를 통해 만나보는 옛시인들의 삶 이야기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시대와의 만남들이 그들의 시가 될 수밖에 없었네요. 비록 짧은 시구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깊고도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글을 멎지게 잘 쓰셨네요!! 제 블로그도 방문해주세요!! Aiden the histor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