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를 민주주의의 정원으로 가꿀 수 있을까. 성열관.장영주 외(살림터). 258쪽
수업의 변화가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수업 소외. 학교교육의 주된 활동인 수업에서의 학생 소외는 학교를 모두가 존중받는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협력헉습으로 교실문화를 변화시키기.
민주적인 공동체로서의 교실문화를 만들려면 학교교육의 주된 활동인 수업의 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교실문화의 출발점은 함께 협력하는 교사로부터협력학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학생 상호 간 긍정적인 역할 기대가 일어날 수 있는 상호 의존적인 수업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협력이 있는 교실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한 아이의 눈으로 수업을 봤던 경험으로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수학 시간에 고군분투하던 그 아이의 외로움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무엇이 정답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이다….하지만 이처럼 수업을 통해 교실의 문화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한계에만 매몰된다면 학교의 변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변화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교사로서 지금 우리가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학교를 민주주의의 정원으로 가꿀 수 있을까? 학교를 정원으로 은유했을 때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 정원에서는 식물들이 성장하며, 각기 독특성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것들의 차이가 장점이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마침내 정원이라는 전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원사들은 그들 스스로 정원을 가꾸고 잡초를 뽑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일을 대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민주성은 교육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된다.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작동할 수 있는 힘은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이다.물론 이전의 교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끄럽다…머리로는 이해하며 충분히 흡수했다 생각하지만 실제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리셋되어 버린다. 이론은 머릿속에 형식적으로 머물러 있고, 삶에서는 행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제도든 성공적으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발생하는 문제점을 끊임없이 수정•보완하며 한단계씩 성장해 가는 학교의 모습을 그리며,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훌륭한 정원사는 아이들과 함께 신뢰의 관계를 만들면서 때를 기다리고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도록 돕는다.
학부모 불신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학부모가 아이의 학교생활을 직접, 매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주동성에서 공동주도성, 집단주도성으로.
타자와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공동주도성위 태양 모델미래 사회에는 ‘학습자 주도성’이 교육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로 인공지능과 차별화되는 ‘인간’ 고유의 특징으로서의 창의성과 주도성이 주목받고 있다.
차별과 혐오…학교는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남들보다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을 해왔다…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표출, 나와 다른 모습과 생각을 포용하지 못하는 마음의 ‘여유 없음’이 뒤범벅되어 우리 아이들을 이란 모습으로 내몬 것 같아서 씁쓸하다.
아이들은 ‘존중’을 배우고 있는가?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빡빡한 수업을 받는다. 수업은 대부분 분절적인 수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아이들은 교과서와 칠판을 번갈아 보며 수업을 듣는다.
공감은…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섬세한 감정이다…독서는…독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지적 사고 과정임과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행위이다.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교육의 완성이다. 이를 실현하는 좋은 도구이자 과정이 독서와 토론인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의 ‘독서력’을 기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스마트폰…짧은 흥미 위주의 영상들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독서를 통해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가 논쟁하는 과정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입장이 다른 이유를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는 ‘사실 판단’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민주시민을 길러 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하면서 정작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손과 발,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목으로 꽁꽁 묶어 두고 있다. 축구를 가르치는 코치는 축구를 해서도, 시범을 보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학교 밖의 논쟁을 학교 안에 허하라’
‘모난돌’이 당연하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구와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돌이 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동안의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학생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국가와 사회가 거의 같았다…더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학생을 오랜 시간 잡아 두는 학교가 이른바 ‘명문 학교’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학교라는 공간 안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진정한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나와 네가 다르고, 그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만의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 것, 그것이 평등하다.
건축가 유현준은 그동안 우리 교육은 평등한 사회의 구현을 표준화, 획일화로 해결해 왔다고 지적한다…
나만의 가치가 사라지면 나의 자존감은 찾을 수 없게 된다. 획일화는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고, 국민 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것이 표준화와 획일화로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평등을 이룬 우리 학교의 모습이다.
이시도 나나코는 「미래교실」에서 21세기형 인재상을 위해 교육에 필요한 열 가지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배우는 방법을 배운다 2)즐겁게 배운다 3)실물을 접한다…궁극의 실물은 ‘자연’이다 4)협동한다 5)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6)창조한다 7)발표한다 8)과정을 즐긴다 9)정답은 없다 10)사회와 연계한다
여기서 학교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민주적 공간이다…가장 강조되는 것은 학교 공간을 통해 ‘함께’하는 법을 아이들 스스로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우리가 원하는 삶을 닮지도 않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담고 있지도 않다는 슬픔과 마주하게 된다…이제는 학교의 민주적 공간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그리고 스며듦을 알아채야 할 때이다. #삶터로서의학교공간을그리다
나의 어릴 적 동네 놀이터를 떠올려 본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의 가장 큰 공터에서 코흘리개 유치원 아이부터 고등학교 언니, 오빠까지 함께 어울려 술래잡기, 사방치기 등의 놀이를 해가 질 때까지 했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 컴퓨터 등이 없어도 마당, 뒷산, 온 마을이 삶이 깃든 놀이터이자 주변의 모든 것이 놀이의 소재였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여러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놀이의 규칙과 재미를 알게 되었고, 서로 어울리며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마당이라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삶을 돌보는 성장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놀이는 유년의 내가 성장하는 데 하나의 작은 교과서이자 학교였다.
“학교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수업이 바뀌고, 관계가 달라진다. 중심은 사람이고 삶이어야 한다. 공간에 스며들어 빛나야 한다.”
공간을 통해 학교를 민주주의의 정원으로… 지역 주민에게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평생교육의 장을…그것이 곧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리라.

https://photos.app.goo.gl/XFvDtLo46hSTUCuk8
수업소외! 오래전 고교시절은 물론, 올해 있었던 큰딸아이의 고1 공개수업 교실 풍경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면, ‘수업에 소외된’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수업소외’가 없는 교실 풍경이야말로 민주주의는 물론이거니와 더 나은 미래사회를 위해 필요한 가장 절실한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