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 윌. 임마누엘 칸트. 236쪽
도덕형이상학의 기초
내 관심은 도덕철학에 있습니다…오직 경험적이며 또한 인간학에 속하는 모든 것이 제거된 순수한 도덕철학을 만들어야 할 확고한 필연성이 있지는 않을까?…법칙이 어떤 행동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의 기초가 되려면 절대적인 필연성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도덕법칙이라 불릴만한 계율은 모든 이성적인 존재가 지켜야 하는 계율입니다.

도덕 자체는 온갖 종류의 타락에 취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이 올바르게 평가되도록 하는 해결책이자 최고의 규범이 필요하지요.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게 되려면 도덕법칙에 따른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행위가 도덕법칙의 취지를 좇아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그러나 순수함과 진정성(실천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으로 도덕법칙을 찾으려면 순수철학 말고는 달리 찾을 곳이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철학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순수 원리를 경험적인 것과 뒤섞는 일은 철학으로 명명될 가치가 없습니다.
모든 가능한 실천적인 개념의 근원에 대해서, 그것이 경험에 앞선 선천성a priori인지 아니면 경험 이후의 후선성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외면하는 철학에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칸트는 동정심 같은 사람의 성향이나 행위의 결과에서 도덕적 가치를 찾지 않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의무’에서 도덕적 가치를 찾는다…자연이 맡긴 이성의 사명이란 바로 ‘의지’를 낳는 것이며, 이성으로부터 비롯된 의지는 선한 의지여야 하며, 따라서 선한 의지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의 최고 실천적인 사명임을 설명한다…그런데 욕망과 성향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성의 명령에 자꾸 저항하는데, 이런 강력한 저항에 맞서 분명한 가르침, 즉 도덕철학이 필요하다고 칸트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선한 의지Good will 만큼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불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선합니다.
참다운 이성의 사명은 선한 의지를 낳는 것입니다.
일차적이며 무조건적인 목적에 필수적인 이런 이성을 잘 수양하는 것이 행복 달성에 여러모로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직한 상인? 의무로부터 그리고 정직의 원리에 따라 행동했다고 믿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상인이 이익을 위해서 정직이 필요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그러므로 도덕적 가치는 행위 대상의 실현 여부와 욕망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그 행위를 할 때 생기는 의지력의 원리에 의존할 뿐이다.
도덕적 가치는 오직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의지의 원리에 놓입니다.
우리가 도덕이라고 칭할 수 있는 탁월한 선함은 법칙이라는 개념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기대되는 결과가 아닌, 의지 안에 있다는 점에서 오직 이성적인 존재에게만 가능합니다.
내 의지가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관해서는 폭넓은 식견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장차 어떤 목적이 생길지 알지 못하지요. 그래서 부모는 어떻게든 자식이 별의별 수많은 것을 배우도록 동분서주합니다. 온갖 종류의 목적에 합당한 수단을 이용하는 기술을 전수하지요. 부모는 장차 자기 자식들에게 어떤 목적이 주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자식에 대한 염려가 너무 큰 나머지 목적으로 선택될 만한 것들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한다거나 바로잡는 데에는 댜체로 게으르지요.
유감스럽게도 행복의 개념은 너무 막연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얻고자 소망한들 자신이 정말 무엇을 소망하면서 이루고자 하는지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명확한 원리에 근거해서 행복을 얻으려는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따라서 영리함의 명령은 전혀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성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네 인격이든 타인의 인격이든 그 안의 인류를 수단으로 삼지 말 것이며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동하라.”
만약 우리가 타인의 재산과 자유를 공격하는 사례를 본다면, 타인에게도 있는 인간다움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점이 매우 자명합니다.
이러한 원리, 즉 인간다움과 이성 일반이 그 저체로 목적이라는 원칙은 경험에서 빌려온 게 아닙니다.
그 원리가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모든 이성에 적용되는 원리이며, 경험은 이러한 원리에 관해 어떤 것도 규정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나는 도덕의 원리를 의지의 자율성의 원리라고 부르겠습니다. 내가 타율성으로 생각하는 다른 모든 것과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이 왕국의 통치자입니다
도덕의 최고 원리는 자율성, 모든 거짓 도덕 원리의 근원은 의지의 타율성이다
우리가 도덕명령의 실천적이며 무조건적인 필연성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이 이해불가능성을 이해는 합니다. 이것이 도덕의 원리를 인간 이성의 바로 그 한계까지 가져가느라 애쓴 철학에 대해 공정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칸트는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철학의 대명사잖아요?…그런데 이 책은 갑자기 나타나선 “그렇지 않아요. 칸트는 난해하지 않습니다”라고 변호하고 있단 말이죠.

세상 사람들에게 천재들의 지혜를 전하자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한국인이 한글 읽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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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난해한’ 칸트가 아니라 쉽고 이해하기 쉬운 칸트!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철학책이 아닌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칸트를 우리말로 쉽게 다시 풀어서 쓴 철학책입니다. 편집여담에 담긴 “칸트는 난해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장은 ‘도덕형이상학의 기초’가 아닌 ‘굿윌’이란 책의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됩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칸트의 철학에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는 ‘작은 철학책’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