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행복. 존 스튜어트 밀. 203쪽
돼지가 아닌 인간을 위하여
지혜는 널리 공유될수록 좋다….대중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런 표현을 부정확한 표현으로 분류한다…

공리, 최대의 행복?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리주의는 개인의 즐거움에 기초한 사상이며, 국가와 사회를 우선하여 공익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공리주의자 밀의 유명한 저서인 「자유론」을 읽어보면 그가 ‘공익’을 함부로 우선하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제부터 행복론을 옹호하는 밀의 다채로운 생각이 펼쳐집니다.
이것은 공리주의에 대한 흔한 귀동냥이 아니라, 공리주의를 가장 옹호한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특권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공리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적으로 형성된 공리주의의 의미가 아주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리라는 말이 쾌락이라는 말보다 앞에 오면 얼토당토않게 무미건조해지며, 반대로 쾌락이라는 말이 공리라는 말보다 앞세우면 너무나 제멋대로에 관능적”이 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아까 말했던 천박한 오해에 끊임없이 빠져듭니다.
더 고상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여러 특성상 아주 여린 식물과 같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랄 때만이 아니라 영양분이 부족해도 쉽게 죽고 말지요.
처참한 교육과 형편없는 사회제도가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삶에 도달하려는 것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훨씬 적은 것에 만족해 왔습니다.
빈곤은 어떤 의미에서 고통스럽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절제와 선한 마음이 더해지고 집단 지혜에 힘입어서 완전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인간이 겪는 고통의 주요 원인은 다양하며, 그중 상당수는 인간의 노력과 관심으로 거의 완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공리주의의 행복은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의 행복…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황금률에서 완벽한 공리의 윤리 의식을 읽을 수 있지요…이는 공리주의 도덕의 이상을 완벽하게 나타냅니다.
도덕 기준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우리 마음속에 그 자체로 의무 감정을 불러오는 것은 교육과 여론이 신성시해 온 관습적인 도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감정이란 같은 인간과 결속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종교의 위험은 그 영향력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과도한 탓이며, 그런 나머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말합니다.
도덕 의지….그 사람이 덕행을 욕망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정의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그리고 정의의 개념은 다양하면서도 항상 공리의 개념을 따릅니다.
「공리주의」가 아니라 「타인의 행복」독자에게 좋은 제목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번 방황했습니다만.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핵심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그게 이기적인 행복이 아니라 도덕 이론답게 ‘타인’을 생각하는 넉넉한 마음까지 제목에 포함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상처 가운데 습관적으로 의지했거나 전적으로 확신해서 기댔던 대상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당하는 일보다 더 큰 상처가 없으며, 이보다 더 심한 상처를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회 진보의 전체 역사는 전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전환에 의해 하나의 관습이나 제도는 사회적 생존을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 불의나 억압이라고 보편적으로 낙인찍힌 부류로 전락했습니다.
이기심 다음으로 인생을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은 정신수양의 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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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가 아니라 ‘타인의 행복‘로 제목을 바꾼 번역?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 코로나 위기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로 타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필요한 ‘타인의 행복’ 이야기입니다. 미래사회를 위한 ‘경쟁과 효율’ 대신 ‘협력과 연대’으로의 시대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에 더욱 필요한 ‘오래된 지혜’가 담긴 작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