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천독법. 최원식.
속리산 유토피아
세속을 벗어나는 산
한 시대에 사회집단이 꿈꾸는 이상적 장소의 담론이 이상향 또는 유토피아다.극락과 천당, 정토와 낙원, 낙토와 복지, 승지와 길지까지, 여기에는 사람들만이 지녔던 이상적 장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좋은 곳을 아무나 쉽게 가지도, 어딘지 알지도 못한다는 데에 딜레마가 있다…있긴 있다는데 오리무중으로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속리산 언저리에 있는 이상향 우복동도 그런 곳이다.
한반도를 인체에 비유하면 속리산은 척추의 허리뼈(요추) 지점에 있다. 속리산에서 비롯한 물은 금강•남한강•낙동강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 삼파수라고 했다. 삼파수의 공간 이미지를 크게 떠올려보시라. 바로 삼태극 아이콘이다. 그래서 속리산은 겨레정신이 발원하는 공간적 원점 자리다. 삼파수는 옛 명칭이다.
한국의 다른 명산들에 비해 속리산은 봉우리가 많고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전국의 국립공원 경관자원에 속리산은 총 35개 봉우리가 지정되어 가장 수가 많다….이렇듯 속리산은 경치가 빼어나 작은 금강산, 즉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렀다.
속리산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도 주목했다.
왜 특별히 명산으로 일컬어지고 중국에까지 알려졌을까?”한강 남쪽의 모든 산이 다 이 속리산을 종마루로 한다. 신령한 기상을 품고 기르며, 높고 넓고 깊고 두터움은 여러 산이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정약용의 우복동가. 우복동이 지닌 천해의 자연경관과 이상적인 농경조건 그리고 장수 지역의 특성이 드러났다. 우복동의 장소성에 대한 당시의 널리 알려진 인식이 반영돼 있다.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대체로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장암리, 상오리 권역으로 추정한다. 속리산 1,058m, 청화산 984m, 도장산 828m의 삼각형 꼭짓점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용유동천, 우복동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복동의 장소성은 청학동과 어떻게 다를까?
우복동은 조선 후기의 사회공동체적인 이상향 담론이지만, 청학동은 고려 후기의 개인은일적인 유토피아 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