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꽃. 전희식,김정임. 250쪽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그래, 눈 맞네. 세상 참 좋아졌네. 눈 내리는 것도 다 볼 수 있고.”
냉방기와 난방기가 정해 놓은 온도에 맞춰 방안에서 사계절을 다 맞이해야 하는 생활.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면 암흑세상이 따로 있을까. 10년 이상 그렇게 살았던 어머니 눈에는 세상 좋아진 것으로 보일 수밖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상적인 환경조건이 있다…공기 좋고 냇물이 보이는 곳, 고개를 돌리면 산이 버티고…누구나 동경하는 삶의 터전이지만 아무나 선택하지는 못한다. 같이 살 사람, 돈벌이, 정리하지 못한 도시의 일들이 사람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집터를 고르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한 가지, 오래된 빈집을 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해발 600여미터.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이 해발 600미터에서 700미터 사이다. #빈집 #귀농귀촌
집을 지을 때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냐고 한다면 나는 뒷간이라고 말하겠다.
생태뒷간? 나는 훨씬 절박한 처지에서 뒷간이 소중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짓는 집의 모든 구조와 형태를 어머니 몸 상태에 맞추야 했다.
“어무이 똥재이.”
“어무이 똥박사~”
“어무이 똥대장~”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오줌? 여따 눠 빠리지 뭐.””예?””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안 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기 힘들어요!””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어머니 솜씨는 연기 한 줄기 안 내고 불길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수준이었다.
소쿠리 다 덮지 말고 가운데에 숨구멍을 내서 김이 빠지게 하는 방식은 나도 새로 배운 기술이었다.
“모가 인제 흙냄새를 맡고 돌아앉았을까?…”
“얘야, 저기 무슨 차고? 무슨 찬데 사람 맹키로 모를 다 심냐?”

어머니가 자신 있는 것은 도시의 세련된 집 안에는 없다. 각종 전기제품과 거기에 딸린 리모컨들은 귀신 붙은 방망이였고 가스레인지나 진공청소기, 믹스기도 만지기가 무서웠다.시골에 오니 세상 것들이 하나둘 이른바 어머니 ‘나와바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 마음을 돌리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그 방법이란 별 게 아니다. 어머니의 생각이나 주장을 즉석에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거 아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좀 가만히 있으라”든가 “이제 그만해요” 등의 말을 어머니께 하지 않는다.
‘정성스런 모심’이 백가지 약보다 나았다. #모심
노인이 되면서 잘 안 들리고 잘 안 보이는 것도 하늘이 주신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손이든 발이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눈이랑 귀가 여전히 밝고 마음이 청춘이라면 그 부조화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어머님의 건강과 존엄을 생각하는 기도잔치
이날만큼은 온통 어머님을 중심으로 지내볼까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 어머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내 가슴에 자리잡아 간 것이 바로 ‘존엄’이다.
치매 걸린 부모 모시기. 사랑과 정성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고 오로지 약과 병원과 음식이 한결같은 처방들이다…모두 건강과 젊음과 이성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노인 학대행위들이다.
동화 말고 ‘노화’? ‘젊은 것들’이 봐야 하는 책…효도 문제뿐 아니라 노인을 독자층으로 출판한 책 자체가 없었다.
치매 어머니를 ‘존엄’케 하는 깨달음의 삶
목암이 산골에서 어머니랑 사는 겉모습은 낡은 시골집만큼이나 초라할지 모른다ㅡ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우주적 신비와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일은 치매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망상이 분열된 자아라면 몰입은 온전한 자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망상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 온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자면 제가 지쳐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절대 무리해서 일을 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나를 잘 돌보는 게 돼요. 결국 어머니 모심이 나를 모시는 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내 노후도 저절로 보장되는 게 아닐까요?
자식에게 하는 반만 하자
목암은 노인에 대한 무지와 폭력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노인을 배척하지 않고 삶의 중심으로 옮겨놓는 일을 틈틈이 하고 있다.
노자는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고 했다…목암은 산골에서 오두막 하나 지키고 어머니와 살지만 온 세상과 삶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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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다’,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드리려고 한다.’ 초라한 시골집이 아니라 어머니를 중심에 세운 세상에 하나뿐인 ‘존엄’의 삶으로 모신 ‘모심의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치매 어머니를 ‘존엄’케 하는 깨달음의 삶을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