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196쪽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이 바이러스를 제거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니 관점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새로운 세상은 마르크스의 잘 알려진 슬로건,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얻는다)”에 담겨 있는 그런 뜻의 공산주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앞의 선택은 야만이냐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재발명된 공산주의냐다.
57 내 견해는 훨씬 더 급진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가해진 일종의 ‘오지심장파열술’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껏 걸어온 방식대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으며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벽을 쌓고 격리를 강화하는 고립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조건 없는 전면적 연대와 전 지구적으로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며, 한때 공산주의라 불렸던 것의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다잡지 못한다면 오늘의 우한은 인류의 전형적 미래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많은 디스토피아에서 이미 이와 흡사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평소 북적이던 도심은 유령도시처럼 보이고, 가게 문을 열렸지만 손님 하나 없고,…소비자 없는 세계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슬쩍 보여주고 있다.
공황 상태로 반응한다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는커녕 위협을 사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화장실 휴지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치명적인 감염병의 창궐 중에 중요하리라는 관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그냥 한번 생각해보라.
내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공산주의에 새로운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을 때 이 주장은 예상대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국가는 또한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도 추구해야 한다. 군사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하고 계획들은 충분히 조정되어야 한다. 이상이 내가 오늘날 요구되는 ‘공산주의’라는 말로 뜻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 앞의 선택은 야만이냐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재발명된 공산주의냐다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 우리의 운명인가?
언론은 그 문제를 둘러싼 개인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우리에게 재활용과 다른 행동 요령 문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다그친다. 그렇게 개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더 커다란 문제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순간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인간을 위한 일종의 전 지구적 통합 건강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자연이 통째로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식시장과 이윤이라는 좌표들 바깥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옛말에 이르듯, 위기의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자다. 트럼프조차 지금 모든 성인 시민권자에게 1000달러짜리 수표를 지급하는 전국민기본소득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공산주의냐 야만이냐, 아주 간단해!
오늘날 모두가 우리의 사회 경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의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 연대를 위한 결단은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다.
현재 우리 상황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우리는 근본적 선택에 직면해 있다.
“복종하되 사유하고, 생각의 자유를 지켜라!”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칸트가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고 부른 것이 필요하다.
모두 힘을 합쳐 팬데믹에 대처하는 일이 팬데믹 그 자체보다 더 손해가 크다면, 이는 그러한 힘의 연대를 뒷받침할 수 없는 사회와 경제에 무언가 끔찍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어째서 연대와 경제 사이에 선택이 존재해야 하는가? 이러한 선택을 마주한 우리의 대답은, “커피나 차? 네. 주세요!”라고 할 때처럼 단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전 지구 사회는 우리 생존에 도움을 주고 좀 더 수수한 삶의 방식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자원을 충분히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우리가 어떤 길을 갈지, 이 선택은 과학이나 의학과 상관없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선택이다.
지젝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바이러스라는 자연적•우발적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바이러스의 창궐과 확산을 악화시키는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못 박는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세상에서 진행되는 이 사회적 차별의 분리선을 없애지 않고 진정한 방역에 성공할 수는 없다.
지젝 말대로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이러한 정치적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줄지 아니면 차별과 배제가 교묘하게 강화된 새로운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지는 정말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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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냐 야만이냐, 아주 간단해!’ 너무나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랄 수 있는 표현으로 코로나19사태의 해법을 제시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전지구적 공동체!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요구되는 ‘공산주의’의 모습이다! 틈만나면 상대편을 ‘공산주의자’란 색깔론으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반공주의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