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박홍규. 302쪽
밀의 ‘사회주의적’ 자유론.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밀이 말하는 자유의 길이다.
이 책에서 전개되는 모든 논의가 직접 지향하는 숭고한 기본 원리는,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 잘대적이고도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빌헤름 폰 홈볼트
지적 노예 상태에서는 사상이 있을 수 없다…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참된 사상이나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자 수단이 완벽하게 자유여야 한다는 것이다…이 책에서 혹시 ‘재산의 자유’를 읽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이 책에는 기대할 바가 없음을 다시금 밝혀두어야 하겠다.

인간은 오류를 면할 수 없다…적어도 인류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의견이 존재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이한 생활의 실험이 있는 것이 유익하다.
정신적•도덕적 능력은, 체력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사용되어야만 개선된다.
밀의 사회주의
“대중의 무지, 특히 대중의 무지와 잔인함”…그렇게도 강력하게 주장한 대중 여론의 횡포를 경계하면서도, 밀은 사회주의가 오는 때를 열망했다.


그러한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의 성격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까지처럼 자기 이익이 되닌 목적만이 아니라, 적어도 공공적•사회적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은 우리가 흔히 믿듯이 반사회주의적인 <자유론>을 쓴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자유론>을 쓴 것이다.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이고도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홈볼트의 말은 <자유론>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다.
밀 <자유론>의 핵심 원리는 ‘다양성’이다. 획일이나 통일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양성을 배격한다. 문제는 그 다양성이 대립하는 경우의 조정 원리인데, 이를 밀은 ‘타자 피해의 원리’로 설명한다…그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제한될 수 있다는 원리다.
민주주의가 수립된 19세기에 가장 중요한 자유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폭정’ 하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토크빌 #민주주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밀이 말하는 자유의 길이다. 그런 다양성의 조화가 좋은 사회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플라톤 이야기.
히틀러의 철학자들. 철학자가 왕이 되는 나라를 꿈꾼 플라톤에게 지도자란 분명 독재자다. 그것도 히틀러 같은 무자비한 독재자다.
유교가 아무리 민본주의이고 민생주의라고 해도 사대부와 왕의 독재를 인정한 점에서는 반민주주의적이었다.
윤리가 본질인 철학이 윤리를 저버린다면 그것을 철학일 수 있을까? 어떤 인문학이든 인간의 도리에서 출발해 귀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어떻게 반윤리적인 그런 철학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정의는 돈이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밖의 말은 다 “정의는 돈이다”라는 말을 꾸미기 위한 사족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런저런 말들도 당시의 극소수 엘리트에 대해서 한 말이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말인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냥 옛날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네오콘을 비롯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를 내세우며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론>에 덧붙여
그러나 가장 불쌍한 것은 저 아이들이다…아이들아, 그 부모의 말이 틀려먹은 것을 아느냐? 안다면 이 책을 읽어라? 모른다면 이 책을 읽지마라. 소용없기 때문이다.
연고와 물질의 사회에 지유와 권리란 없다

다양성을 민주국가의 원리로 삼아야 하거늘 우리의 현실, 특히 교육 현실은 다양성을 죽이는 획일성으로 치닫는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개성과 다양성을 잃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밀의 <자유론>에서 배워야 할 논점이 확실해졌다.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밀이 말하는 자유의 길이다.
사상의 자유가 상식이 되게 하라. 그것이 밀의 <자유론>이 지금 이 땅에서 갖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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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유무역, 신자유주의,…자유란 이름으로 장식된 수많은 낱말들이 흩날리는 더없이 자유로운 세상이라지만, ‘자유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진지하게 가져봐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학부모로서 ‘아이들의 배움의 자유’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드는 학교교육의 현실과 부지불식간에 스마트폰에 빼앗겨버린 ‘고독할 자유’가 아이들의 자유를 앗아가버린 ‘자유시장경제’의 자유란 대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