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위한 정치. 김민웅. 389쪽.
김민웅의 인문정신 2
정치는 문명의 모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가장 고도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는 정치의 근본이다. 그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거나 닫힌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어떤 인간이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인문학의 본질적인 과제다. 인문학이 정치라는 주제를 빼놓고 가능할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가 제일 중요한 공동체적 임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정치를 물어야 한다…우리의 미래가 소중하다고 믿는다면.


전장에서 적을 만나면 칼을 뽑아야 하지만, 조정에서 적을 만나면 웃으세요. 정치하는 사람의 칼은 칼집이 아니라 웃음 속에 숨기는 것입니다.
‘민생정치’의 허구
현재의 한국 정치?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실종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국민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지 토로하고 그에 대해 듣고 논의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이 펼쳐져 있지 않다.
“노동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양심이 없으면 운동이 안 되더라구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망명의 역설. 놀랍게도 역사의 무수한 지점에서 망명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동적 사건이 되었다.

‘망각의 유포’는 정치적 죄악이다. 범죄현장에서 도주하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자본이 약속하는 욕망에 거듭거듭 끌려들어가며 자본주의 안에서의 성공을 선망하는 까닭에,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거나 저항을 시도할 의지를 갖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정치적 주제로 삼아 해결해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
우리 사회는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도 시간이 흐르면 그 일에 대해 깨끗이 잊고 산다. 이 점을 이용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버틴다. 그 사이에, 희생되는 이들의 처지는 극도로 취약해진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은 정치의 격을 무너뜨리는 독선적인 궘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갈 방법은 없다
불가능의 예술. 바츨라프 하벨. 그는 “권력의 도덕성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절대자 ‘신’이다? 세월호 아이들. 내 목숨이 남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 ‘남’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는 ‘나’의 생사를 결정하는 근본이 된다. 그런 ‘남’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구성한다. ‘남’에게 ‘나’는, ‘남’이다. 여기서 제외되는 이는 하나도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유가족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을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읺았다.
사이드는 “지식인이란 자기 땅에서 망명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 시대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을 대변하여 권력과 기존의 이념이 부인하고 있는 현실의 진상을 밝혀내는 임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기반 위에서…’대안의 행동방식’을 제출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언론이 자본을 위한 검열기구로 전락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왜곡보다 침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왜곡이라도 하면 그것이 사회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도 되겠지만, ‘침묵하는 미디어’가 지배하면 그 사회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지식과 이해, 성찰과 비판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말기 때문이다. (TV조선의 5.18? 기념방송 대신 미스터트롯 방송!)
파시즘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민주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의 싸움을 닮아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이 악령의 정체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을 읽지 않는 정치는 타락과 소멸의 증거다. 진정 인간을 위한 인문정치에 대한 깊이를 만드는 근원에는 인류문명의 오래된 정신사가 있다. 그것과 만나는 시대와 사회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사실과 영화적 구성이 하나가 된 팩션(fact+fiction)의 위력’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친일 세력이 정치적으로 복원되어 기득권을 쥐고 이 사회의 지배세력이 되어온 과정을 살피고 문제 삼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를 묻는 작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문제를 이해할 때 기본적인 출발점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 우화 소설. 「닭장 속의 여우」
진정한 마음과 올바른 지식을 기르고 일깨우는 일은 교육과 정치가 결합하는 길에서 찾아진다. 교육혁명과 정치혁명은 한몸이다.
인문정신과 정치는 결국 한몸이다.

오늘날 우리는 도시의 주거자로서 시민은 있으나, 좋은 정치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시민은 보기 어려운 처지다…정치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위한 교육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주제이며, 이것을 배제한 시민교육은 핵심 또는 뇌관을 제거한 프로그램이 될 뿐이다.
세계시민의 기초? 세계지도 그리기? 대학과 대학원 수업에서 세계지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제대로 그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머릿속에 지리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간의 유기적 관련성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무지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면 지정학적 논의를 하기 어렵다. 세계지도를 그리는 능력은 뇌 속에 지구적 연관관계의 회로도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세계화라는 현실은 존재하지만, 세계시민은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세계적 소비계층의 존재는 확산되고 있으나, 시민적 각성을 기본으로 한 세계인으로서의 자기형성이 이루어지는 집단의 출현은 아직 멀었음을 의미한다.
세계시민은 결코 추상화된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 그 실체로 우리를 지금 이 순간 마주하고 있다…어느 누구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현실로 존재하지 않은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희망의 원천이다.지구 전체의 차원에서 말이다.(Think Globally, Act Lo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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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문명의 모태다, ‘정치적 동물’의 자유, 인문정신과 정치는 결국 한몸이다,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는 정치의 근본이다. 그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거나 닫힌다.’ 정치의 출발점은 인문학이란 점을 일깨워주는 인문정치 이야기와 글로벌 경쟁이 아닌 전지구적 상생의 미래를 위한 세계시민 교육의 기본으로서 ‘세계지도 그리기’와 영어 교육, 결국은 ‘Think Globally, Act Locally’의 생명사상과, ‘전체를 모르고 부분만 보는 눈은 흐린 눈이다‘란 함석헌 선생님의 가르침과도 이어지는 우리가 만들어야할 ‘사람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