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봉암 평전. 이원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내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세상, 이것기 한국의 진보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조봉암의 진보당 창당 개회사
우리 현대사에 죽산만큼 억울한 대접을 받는 인물은 없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긴 세월 투옥되었고, 광복 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 개혁을 입안해 이 나라가 신속히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 균등성을 갖게 한 건국 공로자였다…그러나 젊은 날 조국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선택했던 공산주의가 전향한 뒤에도 원죄처럼 그를 따라 다녔고,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에 맞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반공주의라는 절대적인 상징질서 속에…제3세계를 지향하는 죽산의 존재는 이단자처럼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그냥 덮어둘 수는 없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요 미래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산 선생의 평전에 매달린 것은 선생의 삶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 우리 사회에 평등과 정의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일깨웠기 때문이다.
조문도 받지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라니. 장례식을 준비하던 유족들에게 경찰서장이 와서 조선총독부령 제120호를 다시 들이댔다.
“죽산 선생님의 정치적 이상이 너무 앞서 간 걸까요?” “그런 셈이지. 개혁을 부르짖으며 앞서 가는 사람은 순교자처럼 죽게 마련이지…”
“그렇군요. 죽산 선생님의 사상은 지금 더 유효해졌습니다. 그분의 꿈은 책임정치, 수탈 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 세 가지였는데 그게 오늘 더 절실해졌으니까요…”
“우리가 못 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나는 씨만 부리고 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