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의 궁전. 폴 오스터. 450쪽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그보다 더 적절한 게 뭐가 있겠니?”
“내 수중에는 너한테 줄 만한 돈이 없다. 또 충고도 한 마디 해줄 수 없고. 그러니 네가 이 책을 받아 준다면 기쁘겠구나.”
나는 외삼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에 비한다면 음식도 더 나빠졌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더 옹색했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사소한 문제였다. 외삼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인 척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아버지 노릇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자식이라기보다는 친구, 애지중지하는 어린 벗으로 대했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알맞는 조치였다.
빅터 삼촌은 다른 누구도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데서 의미를 찾아내어 그것을 아주 교묘하게 은근히 자존심을 부추겨 주는 말로 바꾸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게 쏟아붓는 모든 관심을 기꺼워했던 것이 사실이고, 또 비록 그의 말이 대단한 허세와 허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믿고 싶었다.
“자네가 관찰했듯이 나는 시력을 잃었어. 자네와 나와의 관계는 말로 이루어질 건데, 만일 자네 목소리가 오래 갈 수 없다면 자네는 나한테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
(대화와 소통)그녀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실제의 나보다 더 낫게 보았고 그 때문에 자신감이 생겨서 다음에는 그녀에게 좀더 받기 쉬운 공을 던져 줄 수 있었다. 달리 말해서 나는 그녀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그 즐거움은 내가 오랫동안 경험해 보았던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컸다.
“자네는 몽상가야. 자네 마음은 달에 가 있어.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걸로 봐서는 그래 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네는 야망도 없고 돈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예술을 느끼기에는 너무 철학적이야…”
“아무리 봐도 자네가 도서관 직원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포그.”
“저도 그게 이상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거기에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들은 결국 현실 세계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거기는 뚝 떨어진 곳, 순수한 생각의 지성소지요. 그런 식으로 저는 남은 삶을 계속 달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에핑에게 그것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폴 오스터는 포그가 맹인에게 사물을 보도록 시도하는 서술을 통해 작가의 기법과 독자의 즐거움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뛰어난 소설가들이 해야 할 일이자 진정한 독자들이 추구하는 것이며, 이 비범한 문학 작품의 작은 일부분입니다.
중요한 사항은 에핑의 눈이 멀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은 긴 설명으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결국 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이 할 일은 그가 사물을 가능한 한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말이 입밖에 나오는 순간 사라지게 해야 되었다. 내가 말하는 문장들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부수적인 것을 분리할 줄 알기 위해서는 몇 주일 동안의 힘든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어떤 사물 주위로 더 많은 여유를 남겨 두면 남겨 둘수록 그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에핑이 자기 스스로 결정적인 일, 즉 몇 가지 암시를 기초로 해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내가 그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사물을 향해 자신의 마음이 여행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조지프 퓰리처
이야기 속 작가 스스로의 말처럼 눈먼 사람도 스스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