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밥이다. 장석주.
책은 인간의 본향을 찾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항해 지도요, 나침판이고 별자리다.
험난한 바다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득한 모험길에 오른 아르고호 선원들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과 음식도 필요했겠지만, 항해 지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판과 별자리의 도움이 없다면 그들이 혼돈과 무질서의 바다에서 고향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나아갈 바와 행할 바를 가르쳐주는 책은 인간의 본향을 찾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항해 지도요, 나침판이고 별자리다. 책읽기는 어두운 근원을 밝게 보고 심지를 굳게 하는 배움의 한 과정인다. 책읽기가 끝이 없는 것은 배움의 길이 끝없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배움에도 요령이 있다고 일렀다. 그 요령의 하나가 제 안의 삿된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 텅 비어 있고 움직일 때 바르다. 고요할 때 텅 비어 있으면 밝고 밝으면 통한다. 움직일 때 바르면 공평하고 공평하면 두루 미친다. 밝고 통하며 공평하고 두루 미치면 거의 성인이 된 것이다.”
일찍이 영혼이 고매하였다면 책 따위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오름 오르다』, 『강석경의 경주산책』 풍경의 발견. 두 저자들은 외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외부에서 보는 것은 풍경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보고 싶어 하는 풍경, 실은 인식론적 풍경이다. 인식론적 풍경이란 외부의 풍경에 감응하는 마음의 풍경이다.
모든 바라봄은 주관적이며 임의적이다.
『일상 예찬』-츠베탕 토도로프 일상이란 회전대는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그 기계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사생활이란 걸 토해낸다. 우리는 뜻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걸 놓치면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걸 붙잡고 탐욕적이고 역동적으로 소비한다.
일상은 순환하는 체계 속에 놓여 있고, 그 반복 속에서 주체의 꿈과 상상을 갉아 먹는다. 속으로는 고갈되고, 겉으로는 반복의 포만감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왜 고결한 종교화와 역사화를 버리고 매일 마주치는 비루하고 하찮은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을까?…”회화는 본질적으로 그려진 것을 예찬하는 것이다.” 장르화의 화가들은 아름다움이 일상 저 너머가 아니라 속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물질적인 것에 가해졌던 저주를 풀어주고, 사물들의 존재 자체를 즐기게 해주고, 이상과 현실을 서로 침투시키는, 따라서 삶의 의미를 삶 그 자체 속에서 찾도록 해주는 은총이었다.”
음식은 음식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패스트푸드가 존립하고 번창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속도’에 있다.(생태학적 시간 개념을 뒤틀어버린 자본주의(자본 회전률!)
53 “고독 속에서 꿈이 피어나게 하는 대신에 우리는 고독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시시껄렁한 음악과 수다와 사교로 고독을 말살시켜 버린다.”